요한복음13:19절을 보겠습니다. (신 171쪽)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 양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은 종교에서 말을 하는 그런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이 이 생명을 얻어서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얻을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빛으로 비춰주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나는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을 하면서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고 말씀을 하시고 운명을 하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시고 제자들에게 보이시다가 하늘에 올라가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앞두고 저녁을 드시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을 이사야 선지자는 복된 소식을 가지고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산을 넘는 아름다운 발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요한복음을 이제까지 보아서 알겠지만 생명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시면서 구원을 해 주시겠다는 구속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일을 제자들에게 부탁을 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시면 제자들이 이 세상에 나가서 주님께 들은 말씀을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생각이 나고 그것을 유대와 사마리아와 온 세상에 전파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안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믿는다고 해야 합니다. 알지도 못하는데 거대한 종교 안에 들어가서 남들이 믿는다고 하니까 자기도 그들이 하는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유대인들이 유대교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어떻게 했는가를 우리는 성경을 보고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예표로 해서 다 보여 주셨는데 사도들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지만 이방인들 역시 종교를 만들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않고 있고 그저 자기들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고 있고 이 세상초등학문으로 아는 것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알고 행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발을 씻겨 주시고 나서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주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시고 난 후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그들이 주님께서 행하신 표적의 의미를 알고 또 말씀이 생각이 났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이 이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았고 그들이 기록한 성경을 우리가 지금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들이 죽고 난 후에 아니 사도들이 있을 때부터 교회 안에는 계속해서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문자를 보고 이 세상초등학문으로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안다고 생각을 하고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했습니다.
문자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 문자를 보고 그 안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것도 주님께서는 직접 실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지만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내가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과 같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의미에서 발을 씻겨 주고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알고 행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있지만 이 시대 종교에서 행하고 있는 것과 같이 어느 누구도 의식에 따라 성찬식을 행하지도 않았고 세족이라고 하는 것을 행하지도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행하신 일의 의미를 알고 복음을 전했지 행위로 그것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입니다.
이방인들은 종교가 되었고 그들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자기들이 안다고 하면서 예배를 드리는 의식을 만들었고 성찬식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있고 세족식이라는 것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성찬식을 마치 실제 주님의 살을 먹는 것과 같이 그리고 주님의 피를 마시는 것과 같이 거룩하게 의식화해서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세족식입니다.
종교에서 겸손의 모양을 나타내기 위해서 선생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교인들의 발을 씻겨 주는 의식을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행위를 보고 성경의 문자를 아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알고 행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들은 절대로 실제 행위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아니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기들이 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행위로 하고 있고 교인들은 그것을 보고 성경대로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알고 행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어느 복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요한계시록에서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하면 이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본성이 율법주의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이런 말씀의 단어가 있으면 무조건 자기들의 육체로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지혜로 깨달아서 아는 것도 행하는 것이고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 것도 행하는 것이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는 일 역시 행하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자기 육체로만 행하고 있고 그것이 다 죄악이 된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십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열두 제자가 있지만 택한 자가 있어서 생명을 얻는 자가 있고 성경에 있는 예언의 말씀을 응하게 하는 자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택함입니다.
주님께서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도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택함은 제자로서의 택함도 있고 제자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려면 그는 반드시 생명을 얻은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예수의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입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파는 것을 시편에서 예언을 하고 있고 성경대로 주님이 오셨을 때 가룟 유다가 주님을 팔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예언을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믿을 수 있게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말씀의 의미를 알아야 우리가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내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하여금 '내가 곧 나'임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하나님께서 감동을 해 주심으로 해서 선지자들이 기록을 했고 그것은 곧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시대가 흐를수록 성경의 권위는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무시를 합니다.
특히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 성경을 무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가끔 미디어를 통해서 신학자들이 성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저들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 신학을 공부를 했나 아니면 그저 이 세상에서 종교인으로 존경을 받기 위해서 신학을 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했다고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고 있지만 성경에 있는 말씀을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종교에서 만든 신학교라는 곳에서 배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부정을 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신학교에서 교리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베뢰아 사람들과 같이 자기가 들은 말씀이 성경과 맞는가 하여 성경을 상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배운 교리가 이미 지식적으로 자기를 지배를 하고 있어서 거기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는데 그 십자가를 지실 때 주님이 구원을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9:30절을 보겠습니다. (신 182쪽)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하나님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흙으로 지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창세기를 보고 있고 왜 하나님께서 굳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는가 하면 우리가 성경 마지막에서 보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우주는 실제가 아니라 사라지는 것임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으로는 알 수 없지만 실제인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고 우리에게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창조를 하셨습니다. 어느 정도로 사랑하시는가 하면 당신이 만든 피조물들에게 창조주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사랑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말로 하고 있지만 사실 상상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조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과학에서도 차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우주가 11차원이라고 말을 하고 있고 하위 차원에서는 상위 차원을 도저히 알 수 없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3차원입니까?
4차원을 도저히 깨달을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는 것을 과학에서도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우리 인생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알게 하셨습니다.
아니 믿을 수 있게 하시고 그 믿음으로 우리에게 창조주의 생명을 얻게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지만 비유와 예표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깨달을 수 있게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셔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꿈틀거리고 있는 벌레가 제 마음을 아는 것보다 더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피조물과 창조주의 관계인데 인생들은 자기들이 아주 적은 그러니까 삼차원에서 알고 있는 지식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것과 같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안 된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알 수 있게 아니 믿을 수 있게 선지자들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직접적인 언어로는 알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비유와 예표를 통해서 기록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을 선지자들로 기록하게 하셨지만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알 수 있게 하시고 그 아는 것이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놀라운 일을 믿게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일입니다.
우리 인생은 창조주를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창조주께서 하시는 일을 알 수 없습니다. 인생이 아이큐가 인공지능화 되어서 그보다 더 높다고 해도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과학에서 말을 하는 차원에 대한 정의이고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과 우리 피조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입니다
그들이 자기들이 지식이 있다고 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고 그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고 이 세상초등학문으로 보면서 그러니까 하위 차원의 언어로 보면서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종교입니다
그들은 신학교를 만들어서 학문을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알 수 있는 피조물의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서 그것을 교리로 만들어서 성경을 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신학으로는 우리가 아무리 공부를 해도 안 된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창조주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은 피조물입니다. 사람들이 그저 문자적으로 창조주라고 하고 있고 피조물이라고 하니까 너무 쉽게 생각을 하는데 피조물은 창조주의 그림자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또 그것으로도 안 되니까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을 해도 자기들은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말씀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난 후에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이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모른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제자들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주님의 말씀을 전혀 무시를 하고 있습니다.
알고 행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 누가 알고 행하고 있습니까?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종교를 만들고 교리로 만들어서 의식화를 해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고 있고 성찬식이라는 것을 행위로 하고 있고 세족이라는 것을 행위로 하면서 자기들의 겸손의 모양을 나타내는 외식에 빠져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자세입니다
저는 정말 성경을 볼 때마다 먼저 내가 이 말씀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성경을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 마음이 아니고는 성경을 풀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세상에서 초등학문으로 신학을 공부를 하고 종교인으로 안수를 받으면 자기가 성경을 다 아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그들이 그저 종교의 교리를 배운 것으로 성경을 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성경에도 없는 말을 너무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알고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어떻게 해도 알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그가 신학을 공부를 하고 평생을 성경만 보고 연구를 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이 너무도 교만해서 자기들이 배운 초등학문을 가지고 성경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 이루었습니다.
무엇을 다 이루셨는가 하면 창조 하신 일이 다 이루어짐으로 해서 우리 인생들에게 나타내 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시간적 개념으로는 아직 다 이루시지 않았지만 주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우리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다 이루실 줄을 아시고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그 일을 보고 제자들이 믿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는가 하면 주님께서 오셔서 창조하신 일을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심으로 해서 모세의 율법을 그리고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믿을 수 있기 때문이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이루어졌습니다.
언제 다 이루어졌는가 하면 창조하실 때 이미 다 이루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고 있지만 이 창조에 대해서 믿지를 않고 있는 것이 인생들입니다. 창조라는 단어는 보고 있고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안다고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창조가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도 없고 그 일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창세전입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000년 전에 오셨다는 것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창조하실 때 다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우리 인생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 말세에 나타내신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간입니다.
인생은 이 시간적 개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과학이 많이 발달을 해서 시간적 개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지만 사실 100여 년 전만 해도 시간이 없다고 하면 받아들이지를 못했고 더구나 종교에서 샤머니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도 베드로의 말씀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창조입니다.
이미 그때 모든 일은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하시고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인생들로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고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신 일을 나타내 주심으로 해서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그것이 실상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이미 창조하신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것을 이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는 일을 다 이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종교는 과학이 발달을 하기 전에 이미 성경을 자의적으로 보았고 그래서 억지로 풀다가 사망의 길로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리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창조가 먼저라는 것을 우리 성도는 늘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19절의 말씀을 보고도 인생들은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일은 창조하신 일을 이루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창조주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 말씀을 하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창조를 하셨고 이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창조하신 일을 나타내 주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일을 12장에서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성경을 너무 쉽게 그저 자기들의 지식으로 보고 모든 것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루기 전입니다.
그리고 이룰 때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성경이 다 기록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는 창조하신 일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 일을 다 나타내 보여 주시고 있지만 인생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들이 아는 지식의 한계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정말 겸손한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볼 때는 더욱 더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 학문적으로 아무리 많이 배운 사람이라고 해도 인생은 그 지식의 한계 안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인생의 지식의 한계를 초월하는 상상 이상의 말씀이라는 것을 늘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일을 이루십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단정적으로 일을 이루신다고 말씀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루시기 전과 이룰 때를 말씀을 하는 것은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가 이렇게 말씀을 할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말씀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 주신 성도들만이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종교가 거대하다고 하고 모든 사람이 그들의 교리를 따라간다고 해도 주님의 말씀과 같이 생명을 얻는 길은 좁고 협착하다는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얼마나 귀한 생명인가를 깨닫는 성도가 지혜롭다고 믿고 있습니다.
히브리서4:3절을 보겠습니다. (신 356쪽)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영생입니다.
주님께서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해서 계속해서 이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아무 것도 모르는 그들이 영생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압니까?
예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생명으로 부활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아니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 신 줄을 알고 있습니까?
그저 종교입니다.
그들이 가르쳐 주고 있는 교리를 아는 것으로 마치 모든 것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교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들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은 전혀 모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아주 자신 만만하게 천국에 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죽어도 걱정이 없다고 하면서 천국은 따 놓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이 있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듣지도 못한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마태복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날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주여 주여 합니까?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신체가 주여 주여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들을 보고 내가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인생을 알고 계십니까?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 사람을 주님께서 왜 알고 계시겠습니까? 주님께서 그 헛것을 알아서 무엇 하겠다고 아시겠습니까? 그런데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인들은 자기들의 신체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입니다.
그들은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보다 자기들의 교리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신체가 부활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지식으로 형상으로 만들어서 삼위일체라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있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혜가 없으면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삼위일체를 근거할 수 있는 말씀이 성경에 어디 있습니까? 자기들이 충분히 감동을 받고 있다는 무당과 같은 말로 사람들을 미혹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입니다.
그렇게 감동을 받아서 이야기를 할 것 같으면 우리는 성경을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점점 빠르게 흐르면서 사람들은 이제 성경 보는 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할 것 같으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선지자들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을 폄하를 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는 것인지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이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라는 말씀을 똑똑히 보면서도 자기들의 지식으로 형상을 만들어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로 우리가 보는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또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은사자들에 의해서 번역이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기초적인 말씀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다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저 우리 죄를 지고 가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십자가는 상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더 중요한 일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일이 없으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과정입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일은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지금부터 일을 이루기 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마치 십자가가 전부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심지어는 그 십자가도 우상과 같이 만들어서 이방의 종교는 자기들이 지은 건물마다 더 높이 세우는 것을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일이라는 것을 저 역시 성경을 보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일을 이루시기 전에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13장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십자가는 창조하신 일을 이루시기 전에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막입니다.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창조하신 일을 이루시는 것을 성막이라는 모형으로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번제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번제단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모형과 그림자로서 나타내 주시는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는 마치 그 번제단이 전부인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고 십자가를 형상으로 만들어서 여러 가지로 형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 번제단에서 드려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가 있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가 있는데 그 모든 제사가 이미 다 드려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입니다.
5대 제사를 하나씩 드려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제사 역시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이 냄새가 지금 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요한복음13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일이 이루기 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이 이루기 전이지만 창조로 볼 때는 이미 모세가 율법을 반포를 하고 있고 5대 제사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고 과거형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모세가 율법을 반포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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