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2:37절을 보겠습니다. (신 169쪽)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많은 표징을 그들 앞에 행하셨으나,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아니하였다.”
어두움에 붙잡히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두움에 붙잡혀 있는가를 주님께 물으시기 바랍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어두움에 붙잡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육체는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을 때 이미 어두움에 붙잡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자기가 어두움에 붙잡혀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으로 빛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빛을 믿고 있다고 하고 있고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우리 피조물들은 태생적으로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말씀을 보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스스로에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인생의 철학에 속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저 교회 안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자기들이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는 문법도 모르고 있고 문장의 독해력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주님께서 누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를 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우리의 비유와 예표가 되고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인생들이 다 어두움에 붙잡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어두움에 붙잡혀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셔도 그들의 교리가 도덕법은 살아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하며 어린 아이들에게 십계명의 의미도 모르고 문자적으로 외우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을 모릅니다.
그리고 빛을 모릅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그저 좋은 의미는 자기들이 하고 있는 것이고 나쁜 의미의 단어는 이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 어두움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고민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할 필요성도 없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 종교인들의 현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교리 안에서 철저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도 더 이상 성경으로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주님을 참으로 이상한 분으로 만들고 있고 주님을 믿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세상 사람들에게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고 말씀을 하신 것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합니까?
생각의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으면 아니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그가 아무리 세상에서 지식이 뛰어난 학자라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지식으로 성경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신학교입니다
심지어는 어떻습니까? 그들이 편입을 받아주고 있습니다. 특히 어느 대학은 일반 대학을 나온 것을 다 인정을 해 주고 있고 대학원만 공부를 하면 시험을 보고 안수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공부한 것과 성경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인데도 신학교부터가 한 사람이라도 더 모집을 해야 자기들에게 돈이 되니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점점 더 세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신학을 공부를 합니까?
솔직히 이 시대는 종교를 배우는 것이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 배우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그들이 신학교를 나와서 자기 종교를 위해서 그들이 세운 교리에 따라서 가르치고 있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불행한 일은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그들이 배우고 있는 교리서에서 이 생명에 대해서 언급조차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그들이 성경에서 문자로는 생명의 빛을 보고 있지만 그 생명이 무슨 생명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런 그들입니다
다 어두움이 붙잡혀 있습니다. 빛을 보아야 빛을 믿을 수 있는데 주님의 말씀과 같이 빛이 있을 동안이 그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이 생명의 빛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고 설교로 한 번도 들어 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에게는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빛이 아직 있을 동안에 이 빛을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빛의 아들들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빛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성경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받게 하고 있고 그 증거를 믿음으로 해서 그 믿음이 실상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증거를 받는 생명만이 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헛것입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 실상은 하나님의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생명을 얻는 말씀을 그러니까 주님께서 우리 양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신 모든 구속의 일을 빛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에게 이 빛을 믿음으로 해서 생명을 얻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것을 사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생명이 하는 사람의 이성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지 말고 미워하라고 하셨으면 우리는 반드시 그 생명을 사랑하지 말고 미워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그 구약만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인생으로는 도무지 안 되는 일입니다. 신약을 보고 있는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믿지를 못하고 있는데 그들은 더욱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표적을 보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앞에서도 말씀을 했지만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알고 자기들의 왕으로 주님을 맞이했지만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는다고 말씀을 하시니까 도무지 받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안 믿습니다.
유대인들이 저를 믿지 않았다고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성경을 보고 있는 이방의 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저를 믿지 아니하니 라고 말씀을 했으면 이 시대 역시 그렇다는 것을 하나님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성경을 본다고 해도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성경을 보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수 있고 성령을 구해서 보내심을 받음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 이 영의 일을 믿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입니다
유대교와 다르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2000년 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문명이 비약 적으로 발전을 했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 이 시대 사람들이 더 지적으로 우수하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믿지 않았으면 우리 역시 믿지 않는다는 것을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2:1절을 보겠습니다. (신 372쪽)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유대인들입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주님께서 아무리 많은 표적을 행하신다고 해서 그것을 보고 믿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물론 가나안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었으나 그들이 믿지 않고 가나안 땅을 정탐을 하겠다고 하고 나서 그들이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을 함으로 해서 하나님이 그들이 정탐한 일 수 대로 40년을 광야에서 살게 했고 애굽에서 나온 20세 이상의 모든 사람이 광야에서 죽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내리시는 징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고 자기들이 마른 땅에서 건넜습니다. 그리고 광야에 와서는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리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고 자기들이 목이 마를 때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습니다.
성경을 보았습니다.
제가 다 언급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에서 그들이 믿지 아니함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모형으로 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표적을 보려고 합니다.
이 시대도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많은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까? 기도를 하면서 자기 마음에서 성경말씀이 떠올랐다고 말을 하고 있고 심지어는 자기가 무엇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심으로서 자기가 이 세상에서 사는 일이 잘 해결이 되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만 표적입니까?
예배를 드리면서 자기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하고 있고 찬양을 부르면서 은혜를 받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표적을 보고 있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표적입니다.
곁으로 나타난 흔적이라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눈으로 보고 감정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감동을 받고 하는 모든 것이 다 표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표적을 보는 것으로 경험을 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까? 그리고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성경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고 믿음으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 것을 믿을 수 있고 그 믿음이 실상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너무 모릅니다.
아니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종교에 의해서 종교성에 의해서 자기들이 종교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서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지 믿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표적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눈으로 보이는 것은 다 표적입니다. 그리고 내 이성으로 알고 내 감성으로 느끼는 것 역시 표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표적으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주님에게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표적을 보여 주셨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으로 믿을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을 보았다고 해서 믿을 수 있습니까? 물론 그 중에서는 나중에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듣고 믿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표적을 보고 믿은 것이 아니라 사도들이 증거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성으로 믿는다고 하는 것이지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믿음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은 믿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야고보서는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그러니까 이방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야보고서는 너무도 중요한 행함이 있는 믿음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거꾸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는 행함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도리어 율법을 지키는 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하고 있고 그래서 루터는 이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복음이라고 하면서 성경으로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봅니다.
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정말 가끔 봅니다. 그러면 그에게 제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주일은 잘 지키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가 알고 있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것은 사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고는 안 됩니다. 우리 인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니 영의 일과 내세의 일 생명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우리 언어로 표현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믿어야 하고 그 믿음이 실상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 믿음이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서 실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적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냥 내가 믿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도 역시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다서에서도 주신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십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12장에서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이 믿음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진리로 인도하심으로 해서 믿음을 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은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야지 만 우리가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성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다 종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에 의지를 해서 자기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종교성을 가지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믿음과 같이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 역시 종교성은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고 하면서 살았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도 종교인들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했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성경은 내가 스스로 믿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종교성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드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서 듣고 믿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는 것을 믿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종교성을 가지고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종교성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이 믿지 않았다고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유대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성이나 이 시대 이방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성이 같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표적입니다
주님께서는 실제 당신 스스로가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표적을 보고도 유대인들은 믿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종교성으로 자기들 스스로가 표적을 나타내고 있고 그것을 보면서 자기들이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으면 우리 이방인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다면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는 마음부터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믿지 않았어도 자기들은 믿는다고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셔야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성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믿고 있습니다. 믿음, 성령세례, 의롭다 하심 등 이런 모든 것은 우리가 유월절을 먹었을 때 단번에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도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믿음은 종교성을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음으로 믿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2:38절을 보겠습니다. (신 169쪽)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언자 이사야가 한 말이 이루어졌다. "주님,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으며, 주님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유대인들입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말씀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믿는다고 했지만 그것을 사도 요한은 믿음으로 말씀을 하지 않고 믿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우리 이방인들의 예표와 경계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에 따라 우리가 그렇게 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지를 않습니다.
인생입니다
다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이라고 해서 다르고 이방인들이라고 해서 다르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대 항해 시대를 거치면서 흑인들을 노예로 삼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종입니다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더라도 주님이 오셨을 때 유대인들이 같은 이스라엘의 자손이지만 혼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섞여 있다는 것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로 취급을 했습니다. 당시에 그 정도로 차별이 심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들이 생각입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자기는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인간적으로는 약간의 철학적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똑같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셔서 예배를 하셨고 또 가장 가난하고 죄인으로 취급을 받았던 베다니 마을도 찾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자기들만은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르긴 뭐가 다릅니까? 인생은 다 똑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인생들이 철학적으로 판단하면서 다르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인생은 다 같다는 것을 인정을 하고 보아야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 믿지 않았습니까?
그럼 우리 이방인 역시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사도 요한이 성경을 하나님의 감동으로 그렇게 기록했는데 유대인들은 믿지 않았어도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더 이상 성경을 볼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존감을 갖은 것 좋습니다.
인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존감이 영의 일에 있어서는 자기를 망하게 하는 길로 가게 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특히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성도들이라고 하고 있고 존귀케 여긴다고 하니까 더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것은 예수의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그저 인생의 철학으로 표적을 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언제 하나님을 믿은 적이 있었습니까? 성경을 보면 그들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믿은 적이 없다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그들의 자손들이 그렇게 했다면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초기 교회를 지나면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믿지 않았는가를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지 않은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그대로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유대인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만 해당이 됩니까? 우리 이방인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신약성경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방에 전파가 되고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서 정경으로 66권을 채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신약성경을 성경으로 취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만이 이 신약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럼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시 주님이 오셨을 때 유대인들을 통해서도 이 말씀이 이루어 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성경을 우리 이방인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누구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우리 이방인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수천 년 전에 이스라엘이 그렇게 했다면 이 시대 역시 우리 이방인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유대인들이 자기 조상들이 선지자를 죽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말을 하고 있는가를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다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이 이사야서를 기록한 이사야 선지자가 어떻게 죽었는가 하면 전승에 의하면 선지자의 몸을 두 토막을 냈다는 말이 있기도 하고 톱으로 두 토막을 내서 잘랐다는 말이 있기도 합니다. 선지자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들이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더하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유대인들만의 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가 되어 있는 모든 종교는 다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초기 교회입니다
로마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에 의해서 종교가 세워지고 난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에 의해서 죽은 사람들이 로마에 의해서 죽은 사람보다 더 많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종교이고 인생들은 다 똑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이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하면서 유대인들을 보면서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선지자를 죽이고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자기 땅에 오셨지만 죽이는 악을 더했습니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 역시 자기들의 교리에 따라 종교 재판이라는 미명 아래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을 역사가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창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영광을 받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 이미 영광을 받으신 그 일을 우리 인생들이 보고 알 수 있게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 인생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 일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모세의 율법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을 했고 그리고 많은 표적들을 나타내주셨지만 유대인들이 믿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믿지 않는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 피조물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일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으로 전했지만 사도 요한이 선지자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로마서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이 철학적으로 성경을 보고 믿는다고 하는 것이 이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세의 율법을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을 완전케 하시는 일을 지금 사도 요한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2:7-8절을 보겠습니다. (신 265쪽)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냥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요한복음12장을 말씀을 하면서 가장 중심이 되는 말씀이 바로 28절의 말씀이라는 것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들이 알고 있고 창조의 일을 이루시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피조물과 같은 형상을 입고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2절의 말씀입니다.
모세의 율법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말씀을 나누었지만 주님께서 먼저 땅에서 들리는 것은 유월절의 곡물의 첫 이삭의 한 단으로 여호와께 요제로 드려지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맥추절입니다.
떡 두 개를 누룩을 넣고 구어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요제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많은 열매가 되어 모든 사람들을 주님께로 이끌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 안에 거듭나는 예수의 생명이 거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모세의 율법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창조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입니다.
그 일을 성경을 통해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 인생들이 듣지를 않는다는 것을 그러니까 영의 일을 인생의 철학으로는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여 우리의 전한 말을 누가 듣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창조의 일을 보여 주고 있지만 믿지를 않고 있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듣지를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을 듣지를 않았는가 하면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믿는 그들이 창조하시고 이미 영광을 받으신 일에 대해서 듣지를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보면 뭐 합니까?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을 보면 뭐 합니까? 그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들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언어를 아는 것으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그들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제사는 열심히 드렸지만 하나님께 요제로 드리는 곡물의 첫 이삭의 한 단이 영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듣지를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의 종교인들이라고 다르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유대인들과 같이 이 세상의 지혜로 성경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모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도 창세전에 미리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이 응하는 일이라는 것을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유대인들을 탓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 이방인들 역시 창조하신 일을 모르기 때문에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알지 못해서 주님을 십자가에서 죽였지만 이방인들은 믿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들음에서 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을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듣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유대인들은 우리 이방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성경을 자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듣지 않습니다.
유대인들만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을 한 것과 같이 듣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이방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며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빛의 아들들이 되라고 말씀을 하지만 빛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next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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