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8강,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마태복음18:23-35절을 보면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용서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을 주지 않고 너그럽게 보아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죄를 지을 수도 있고 또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용서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 세상의 일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고 마치 세상에서 그렇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는 것을 보고 자기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대로 했다고 하면서 자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데 성경은 우리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형제의 죄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다 듣고 나서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라고 말을 하니까 주님께서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하고 나신 후에 이제 일만 달란트 빚진 자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죄를 짓기도 하고 피해를 당하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 죄를 안 짓고 산다고 하는 사람은 다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그가 무지해서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고 또는 교만해서 자기 스스로를 깨닫지를 못해서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질문입니다
그것은 육의 일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영의 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것을 다 육의 일로 보거나 영의 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지금 베드로는 육의 일로 자기에게 사람이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를 해 주어야 하느냐고 묻고 있고 그 대답을 주님께서도 육의 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용서
사실 우리 인생들끼리 용서를 해 준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그 경중이 어떠한가가 다르고 누구는 죄를 지어서 다 밝혀지는 경우가 있고 누구는 죄의 지극히 일부부분만 밝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우리 인생은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본입니다.
우리 인생은 죄인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내가 죄를 안 지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사는 것이 죄입니다. 그 죄만으로 끝이 나면 좋은데 그 죄를 안 짓기 위해서 사람들은 자기 이성으로 잘 살아보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종교적인 행위가 도리어 다 악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죄입니다.
베드로가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를 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주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그렇게 용서를 해 주셨다는 것을 너희가 먼저 깨달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어느 정도로 지고 가셨는가 하면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를 해 주시기 위해서 지고 가셨습니다. 아니 그 이상의 죄를 용서를 해 주시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지고 가셨다는 것을 먼저 베드로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합니다.
자기가 어떤 죄를 진 사람을 용서를 해 주면 마치 이 말씀을 생각을 하면서 일흔번씩 일곱 번을 용서를 해 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아야 하고 저는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고 싶습니다.
누가 저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정말 주님의 말씀과 같이 일흔번씩 일곱 번을 용서를 해 준다고 해서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죄의 용서를 내가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일곱 번의 일곱 번을 용서해 주었다고 해서 내가 용서를 해 주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인생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인생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을 하고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서 자기가 부처나 되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그렇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가 되기 위해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3절,“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베드로의 질문입니다.
육적으로 용서에 대해서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서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볼 때는 왜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비유인지 실제인지를 알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 대로 자기들이 사람들을 용서를 해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죄를 진 사람을 용서해 주는 것을 나쁘다고 하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면 용서를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나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먼저 알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자기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이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의 질문에 그러니까 베드로가 사람이 자기에게 죄를 지면 몇 번을 용서해 주어야 하느냐고 묻고 있으니까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깨우치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주님의 말씀을 이해를 하지 못하고 베드로와 주님께서 하신 육적인 말씀을 보고 그 말씀 그대로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생각입니다.
베드로의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베드로가 누구와 같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습니다. 그런 그가 주님께 그런 질문을 한다는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시기 위해서 그러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진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는데 베드로는 생뚱 맞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이 말씀을 실제로 보지 마시고 비유로 보시기 바랍니다. 용서에 대해서 영의 말씀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실제적으로 이렇게 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범죄를 하게 되고 그것이 악한 일이 되어서 사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4절,“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죄입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죄를 짓습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사람이 나에게 죄를 지면 몇 번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라고 질문을 했고 그 질문을 먼저 주님께서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를 해 주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어떻게 용서를 해 주시는가를 알고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용서입니다.
사람은 모두가 죄를 짓습니다. 그 죄에 대한 용서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을 하면서 회계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만큼의 죄를 짓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대해서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습니다.
우리 인생은 죄를 안 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누구라도 다 죄를 짓습니다. 천국에 가려면 이 죄에 대해서 반드시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용서 받는 것을 주님께서는 회계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입니다.
죄가 있는 사람은 갈 수 없습니다. 아니 우리 인생 자체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죄가 없는 깨끗한 영혼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에 누가 천국에 들어가고 어떻게 용서를 받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입니다.
성경은 대표성을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를 지목해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한 사람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대표하고 있고 그 사람이 지은 죄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지은 죄와 같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용서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일만 달란트 빚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용서를 해 주시려고 회계를 하려고 대표성이 있는 한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대표성이 있는 사람이 일만 달란트 빚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일만 달란트 빚을 안 지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한 사람입니다.
우리 인생 전체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 모두는 이 한 사람과 같이 일만 달란트 빚진 자라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이런 비유의 말씀을 모르면 자기가 누군가를 모르게 되고 있고 그 사람은 결단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일만 달란트 빚진 자라는 것을 알아야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이 비유를 보고 사람들은 이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자기가 아닌 어떤 사람으로 알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입니다.
일만 달란트입니다. 그 값이 얼마나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금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그래서 약 20조가 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들이 짓는 죄를 돈으로 따질 수는 없지만 굳이 따지면 일만 달란트라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닙니까?
그는 성경도 모르고 율법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 인생은 율법에 있는 단 한 가지도 지키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가 어느 정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사무치도록 죄가 많다. 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치를 주님께서는 일만 달란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입니다.
우리 인생 전체를 대표하는 한 사람입니다. 거기에는 나도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비유의 말씀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은 결국에는 자기의 의로 인하여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는 그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지금 나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데 그것을 딴 사람의 이야기로 알고 있다면 그는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이고 그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악한 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5절,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 대”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돈으로 해도 일만 달란트라는 돈이 얼마나 큰 돈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갚을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진 죄에 대해서 돈으로 갚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모든 사람이 나를 성도라고 하고 있고 정말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다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일만 달란트를 빚진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욥기31:6절을 보면
“그리하였으면 내가 공평한 저울에 달려서 하나님이 나의 정직함을 아시게 되기를 원하노라”
죄입니다.
우리 인생은 죄악 중에서 출생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악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어떤가 하면 자기들이 조금 지키는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이 욥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이 세상에서 욥과 같이 산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죄가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을 했습니다. 그만 그렇게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그의 주변 사람들도 다 욥을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고난을 당하자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나중에는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자신 있습니까?
누가 감히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겠다고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욥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가 실제 욥기를 보면 얼마나 순전하고 정직하게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서 죄를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으니까 욥이 내가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런 욥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겠다고 호기를 부릴 정도로 이 세상에 이성으로는 죄가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고 그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자 그가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이 왜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를 하고 자기 입을 막고 있습니까?
욥입니다.
그도 일만 달란트 빚진 자입니다. 내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하는 사도 바울 역시 일만 달란트 빚진 자라는 것을 스스로가 나중에 깨닫고 난 후에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 모두는 이렇게 일만 달란트 빚진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까? 일만 달란트를 갚아야 합니다. 물론 욥은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자라 해도 우리가 진 죄의 값을 돈으로 값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비유로 우리가 갚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용서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회계를 합니다.
갚을 것이 없으니까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그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갚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갚을 수 없는 것을 지금 갚으라고 하고 있고 우리 인생은 그것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을 보면서 죄가 별로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이 일만 달란트를 빚진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떻습니까?
어느 목사는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는 죄를 거의 안 진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죄를 지어도 회개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그에게 가서 용서를 구한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죄의 문제를 다 해결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자기 생각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금 용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를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가 중요하지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은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아니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의미를 깨닫지를 못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살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왜, 성경을 봅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런 문제들이 목사들 스스로가 해결이 안 되니까 어떻게 이야기를 하느냐면 이제는 성경에 번역에 오류가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잘못 번역이 된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고 자기들의 생각을 교회 안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 시대 목사라고 하고 있고 교인들은 그저 그들의 말을 듣고 아멘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26절,“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이 종입니다.
자기 죄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가 진 죄의 값이 얼마나 되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리고 왔다고 하는데 내게 참으소서 내가 다 갚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성적 상식으로도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어떻게 그 돈을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다 갚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가 진 빚의 의미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이 진 빚을 어느 누구도 갚을 수 없는데도 이 사람은 갚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실제 교회 안에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합니까?
죄를 안 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더 많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갚으려고 하는 그들이 더욱 더 많이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이 죄의 빚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입니다.
지금 누구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가 진 빚의 의미를 모르고 회계를 하려고 하니까 자기가 벌어서 갚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27절,“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가 진토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지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이 종을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빚을 탕감하여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심으로 해서 이 사람의 죄를 탕감해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인데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심으로 해서 우리가 다 탕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불쌍해서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러니까 탕감을 다 해 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그런 은혜를 입은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 죄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입니다.
우리의 죄로 우리는 생명을 얻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죄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율법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성경을 보아도 소경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7절,“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일만 달란트 빚진 자입니다.
그를 하나님께서 용서를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잘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비유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실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비유로 보아야 하고 왜 이렇게 말씀을 하는가를 이 비유를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입니다.
그가 탕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비유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이 비유를 잘 생각을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백 데나리온입니다.
그 빚 진 자를 붙들고 빚을 갚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 빚을 다 탕감을 받았는데 그리고 주인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는데 그가 나와서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에게 빚을 진 동관 하나를 붙잡아서 그 빚을 갚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29절,“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우리 인생입니다.
아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일만 달란트를 빚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할 때 주인이 그를 용서를 해 주고 다 탕감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가서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을 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고 빚을 갚으라 하고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입니다.
이 사람은 탕감을 받은 것은 은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스스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것을 탕감을 받았다면 그는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이제 다시 말씀을 드리겠지만 이 동관이 탕감을 받은 것을 탕감을 해 주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된다면 성경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8:12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우리는 빚진 자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빚을 탕감을 받고 은혜를 받은 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일만 달란트를 탕감을 받은 것은 은혜를 받은 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이 일만 달란트를 빚진 자를 통해서 은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가 탕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은혜를 받은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탕감을 받았는데 나에게 빚진 자를 탕감 안 해 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면 그것은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일만 달란트를 빚진 자 인데 은혜로 그것을 탕감을 해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어떻습니까?
자기가 은혜를 받은 자이면 은혜를 받은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가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빚진 자이면 이제는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는데 이 사람은 육신대로 살면서 자기에게 빚진 사람을 옥에 가두고 있습니다.
어느 옥입니까?
정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이 탕감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인 그를 탕감해 주셨습니다. 왜 탕감해 주셨는가 하면 용서를 받지 못하면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용서를 해 주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옥에 가두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정죄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에서 탕감을 받았으면 다른 사람도 그 빚에서 탕감을 받아서 구원을 받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옥에 가두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1절,“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탕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탕감을 해 주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행위의 구원이 됩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그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이 종의 빚을 다 탕감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종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기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떤 은혜를 받았는가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정죄에 빠지지 않고 탕감을 받아서 의롭다 하심을 받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종은 동관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의 빚이 있는데 그 빚을 용서를 해 주지 않고 정죄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악한 자입니다.
왜 이 사람이 악한 자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한 사람이기 때문에 악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자기의 빚이 은혜로 탕감을 받았으면 다른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 사람을 정죄에 빠지게 옥에 가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종은 자기는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에 있어서 방해를 하고 옥에 가두어서 정죄에 빠지게 함으로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가장 악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이 악한 자가 누군가를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33절,“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잠언14:31절을 보면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 말씀을 많이 깨닫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누구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고 이 은혜를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쌍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받았다면 우리도 역시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것을 잠언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입니다.
그는 분명히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기에게 빚을 진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고 궁핍한 사람입니다. 그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악한 종입니다.
자기가 탕감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 세상에 죄를 다 지고 가셨는데 이 사람은 믿지를 않았습니다. 믿지를 않으니까 어떻게 하는가 하면 자기에게 빚을 지어서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옥에 가두는 악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일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죄를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용서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탕감을 받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악한 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를 않고 자기에게 빚을 진, 동관을 옥에 가두는 악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입니다.
물론 다 일만 달란트를 빚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또 이들과 같이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겨 주어서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악한 동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불쌍히 여기지를 않고 있습니다.
내 빚입니다.
우리는 다 탕감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빚을 진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있다면 그를 옥에 가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정죄에 빠져 사망에 이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악한 자가 그렇게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동관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빚을 탕감하고 안 하고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안 믿으니까 이 동관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그에게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주의자들이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같은 악한 자가 되어서 동관을 옥에 가두고 있습니다.
34절,“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비유입니다.
용서에 대해서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일만 달란트 빚진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다 탕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역시 이 세상에서 빚진 자를 불쌍히 여겨 주어야 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렇게 불쌍히 여겨주는 자가 주님을 존경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믿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은 용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옥에 가두고 있습니다. 어느 옥에 가두고 있는가 하면 마음의 옥에 가두어서 정죄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악한 종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이렇게 옥에 가두고 있습니다.
35절,“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의 빚을 탕감하여 주셨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을 믿으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있는 성도입니다.
우리가 감히 누구를 용서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 그는 주님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니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과 같이 백 데나리온 진 사람을 옥에 가두고 있습니다.
궁핍한 자입니다.
그를 불쌍히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를 불쌍히 여겨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불쌍히 여겨주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에게 꾸임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갚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의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은혜와 진리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760강, 네가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0) | 2020.12.25 |
|---|---|
| 759강,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0) | 2020.12.24 |
| 757강,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0) | 2020.12.22 |
| 756강, 너희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케 할까 함이니라 (0) | 2020.12.21 |
| 755강,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찌라도 좇지 말라 (0) | 2020.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