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강,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창세기39:7-10절을 보면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너무 잘 아는 말씀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셉과 같이 우리는 아무리 예쁜 여자가 설득을 해도 거기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마치 요셉이 대단한 사람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성경을 기록했을 때는 다 의미가 있습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이 겨우 한 여자가 미혹을 하는 일에 있어서 그것을 이긴 것을 가지고 성경에 기록을 했다고 생각을 하면 그는 성경을 너무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물론 요셉이 주인의 부인과 통정을 하지 않은 것은 너무도 잘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솔직히 요셉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아니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요셉이 이 여자와 통정을 했다 해도 그의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육적인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너무도 모르고 있고 요셉이 육적으로 보디발의 부인의 유혹을 이겨낸 것이 마치 대단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분명히 이성을 가지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부인이 아무리 유혹을 해도 넘어가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신분이 노예입니다 만약에 그 일이 주인에게 발각이 될 때에는 어떻게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노예는 주인이 죽인다 해도 아무도 법적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더구나 자기 부인과 간통을 했다고 하면 아마 모든 사람이 잘 죽였다고 말할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지금 보디발의 부인과 통정을 해도 좋다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도덕적으로 성경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더 깊은 의미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요셉이 그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을 해도 넘어가지 않았다고 하면서 너희도 요셉과 같이 육적으로 그렇게 누가 유혹을 해도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이 도덕책입니까?
이 보디발의 아내 사건은 이 세상 책에서도 나오는 그런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 이치로 생각을 해도 자기 주인의 아내가 아무리 유혹을 한다 해도 그와 통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설령 그 유혹을 자기가 이겨 냈다고 해서 그것이 마치 대단한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요셉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이것은 요셉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 그렇게 할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예쁜 여자가 미혹을 해도 지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넘어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넘어가기 때문에 요셉의 일이 대단하게 느껴지겠지만 실제 세상에는 지성이 있어 죄라고 생각을 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차이입니다
누구는 그 부분에 약하고 누구는 그 부분에 아주 강합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을 보면 알겠지만 요셉은 별로 그 부분에 생각에 없었던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너무 단순하게 보고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진리가 가려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거의 모두가 시적인 언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는 겉으로 보여 지는 문자를 보아서는 안 됩니다. 작가가 의도하고 있는 그 문자의 뜻을 모르고 시를 보고 그 시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다면 그는 작가에 대해서 모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그 말씀의 뜻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시편39:4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성경을 봅니다.
그런데 자기가 누구인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자기의 종말이 어떻고 자기가 얼마나 연약한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는 요셉과 같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을 보면서 마치 자기가 대단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자기의 연약함을 모르고 있습니다.
요셉,
과연 하나님께서 요셉의 일을 통해서 요셉이 도덕적으로 보디발의 아내와 통정을 하지 않은 것을 높이 생각을 해서 성경에 기록을 했습니까? 만약 그렇다고 생각을 한다면 여러분은 성경을 아예 안 보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라고요.
제가 그런 유혹이 육체적으로 넘어가도 좋다고 하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도 역시 요셉과 같이 그런 유혹이 넘어가지 말라고 이 말씀을 기록한 것이 절대로 아니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줘야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성경을 통해서 나도 그렇게 안 하겠다고 하지 마시고 또 자기도 안 하는 그런 것을 가지고 마음에 부자가 되지 마시고 정말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연약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그에게 가슴 깊이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성경을 왜 기록했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교회 안에 들어왔는데 구원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구원을 방해를 하는 사람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고 또 종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방해하는 것을 다 비유로 기록을 해 놓으셨습니다. 그런 것을 모르고 성경을 본다는 것은 거의 맹목적으로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물론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못 믿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바로 알아야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나를 미혹하고 있는 세력이 누구고 또 거짓 선지자가 누구고 또 나를 넘어뜨리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 맹목적이고 그런 구원을 방해를 하는 영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다 비유입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은 거의 비유로 감추어 두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오히려 그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성경이 참으로 오묘한 것은 문자적으로 해도 되는 그 일이 영적으로는 간음을 행하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보디발의 아내와 통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 육체가 통정을 안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기도 요셉과 같이 여자가 유혹을 해도 통정을 안 하고 있어서 요셉과 같이 믿음이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초보입니다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다면 그는 아직 초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고 신앙생활을 오래 했으면 이제 초보를 버리고 영의 일로 성숙해 져야 하는데 지금 한국 교회의 교인들을 보면 수십 년을 신앙생활을 했어도 초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7절,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보디발의 아내입니다
이방 여인이고 또 음녀입니다. 구약은 우리 육을 통해서 우리의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단지 보디발의 아내가 지금 요셉에게 통정을 하자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문자적으로는 분명히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육적인 동침이 아닙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단지 어떤 여자와 동침을 하는 것을 성경에 기록을 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누가 요셉을 유혹을 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음녀가 요셉을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보디발의 아내는 음녀도 되고 이방 여인도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아내는 주인의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입니다
우리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이제 영적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는 다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디발이 누구고 또 그 아내가 누구인가를 먼저 우리가 영적으로 이해를 하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25:21절을 보겠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주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주인입니다 이 보디발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방 사람이라도 왕으로 표현을 했을 때는 하나님을 상징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스더에 나오는 아하스에로 왕은 하나님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성경은 그때마다 상징적으로 그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보디발입니다
그 집 주인은 보디발이고 요셉은 종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주인이고 요셉은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주인이라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주인을 잘 섬겨야 합니다.
주인을 화가 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또 주인이 질투를 하게 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너무도 큰 죄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도덕적으로 짓는 죄는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주인을 질투하게 하거나 화를 나게 해서는 절대로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깊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늘 강조를 드리지만 성경은 이 세상의 도덕책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그런 도덕은 굳이 성경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나면서부터 배우고 있고 무엇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와 통정을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이 세상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도 아는 도덕적인 것을 성경에 기록하겠습니까? 그것도 성경 몇 장을 이 사건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상징을 보시기 바랍니다.
인물이 나왔을 때는 그가 누구를 상징하고 있는 가를 바로 알아야 성경을 보는 눈이 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도덕적인 것을 보면서 자기도 요셉과 같이 통정을 안 한 것으로 마치 자기가 요셉이 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오해를 하다가는 결국 자기 영혼이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인을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만약에 요셉이 그 주인집에 있는 무엇인가를 가졌다고 하면 주인이 화를 내겠습니까? 더구나 주인이 그 집의 모든 소유를 다 맡겼을 때는 절대로 화를 안 냅니다. 또 요셉이 그것을 가지고 싶다 할 때는 웬만한 것은 주인도 요셉으로 인하여 부자가 되고 있기 때문에 줄 수 있습니다.
8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집 모든 소유를 다 자기 손에 위임을 했다고 말 합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사람이 없어서 주인이 아무 것도 나에게 금하지 않았으나 당신은 금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라 해도 자기 아내를 취하려고 하면 가만히 있지를 않을 것입니다 그가 설령 아무리 떼 부자가 되게 해 준다 해도 자기 아내를 취한다면 그것은 참지 못할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보디발의 아내입니다
이 집에 있는 모든 것은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지만 당신만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이치로 따져도 만약에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와 통정을 했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살아남지를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아내를 건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아내에게 마음을 주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아무리 예뻐도 그녀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여러분이 그 아내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에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물론 요셉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너무도 예쁜 아내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통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망합니다.
그 안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뜻을 모르면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는 정말로 안타깝게도 보디발의 아내와 아주 즐겁게 통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고 죄를 짓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오히려 더욱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만약에 보디발의 아내와 통정을 하면 누구에게 득죄를 하는 것이 맞습니까? 물론 하나님에게도 득죄를 하는 것이 맞겠지만 우선은 보디발에게 득죄를 하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와 통정을 했으니까 보디발에게 득죄를 하는 것이 되는데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한 일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를 하리이까 말하고 있습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와 통정을 하면 보디발에게 득죄를 하는 것이지 왜 하나님께 득죄를 하는 것입니까? 바로 보디발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에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에게 지금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그렇게 득죄를 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거의 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통정을 합니다.
아주 마음껏 통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주인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통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은 그 통정을 하는 것을 보면서 주인에게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없어 미련하면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구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신약은 그래도 어느 정도 우리가 볼 수 있지만 구약은 정말 그 의미를 안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내가 잘못 보고 있는 성경 하나가 내 영혼을 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이웃에게도 망하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치 물귀신 같이 자기 혼자 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함께 끌고 가서 죽이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인의 아내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감추어 두셨습니다. 그러면 주인의 아내는 누구입니까? 이 시대 이 주인의 아내에게 거의 다 미혹이 되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아니 이 아내가 시키는 대로 그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와 같이 방향을 모르고 따라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에베소서5:32절을 보면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주님과 교회는 남편과 아내입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한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면서 그 아내를 위해 목숨까지도 버린다고 하면서 이 비밀이 무엇이냐면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의 아내입니다
물론 우리가 주인의 아내에게 잘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주인의 아내가 통정을 하게 되는 순간에는 주인이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정말 헌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인 몰래 그 아내와 통정을 하게 되는 순간에 주인은 진노를 하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창세기에서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다른 것은 다 주관을 합니다.
그런데 그 주인의 아내인 당신과 통정을 하면 내가 하나님께 득죄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정말 소중합니다. 성도는 당연히 그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데 있어 힘써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교회와 통정을 하는 순간에는 진노가 따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그 교회와 통정을 하는 순간에는 주님이 진노를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주인의 아내와 통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이 있는 가를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주인을 위하는 일이 아니라 주인을 욕보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는 여자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아내라고 사도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그 아내를 잘 보살펴야 하는 책임은 있지만 그 아내와 통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가 우상이 되어 음녀가 되어서 그 음녀와 통정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믿고 있습니까?
누구를 섬기고 있습니까? 말로는 주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아름다운 주인의 아내를 섬기는 일에 모두가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근사한 교회를 지어 놓고 그 교회를 유지하느라 정신이 다 팔려 있습니다. 영적으로 교회와 통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중요합니까?
주인을 위해서 교회가 중요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주인에게 충성을 하려면 교회라도 내 마음에서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불행하게도 교회를 너무도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영적인 범죄인지도 모르고 교회와 그렇게 통정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교회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 교회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것을 유지하느라 진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교회를 짓기 위해서 빚을 내고 있고 또 그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면서 헌금을 내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런 행위들이 다 영적으로 통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더욱 열심을 내고 있고 그것을 반대를 하면 교회에 해를 끼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인이 계속해서 요셉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여인이 통정을 하자고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가 되어 있는 여인이 요셉에게 통정을 하자고 계속해서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요구를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해 주고 있지만 이 말씀을 그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통정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것을 안 하는 자기가 믿음이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견디지를 못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교회가 그렇게 성도들을 못 견디게 만들고 있습니다. 통정을 하게 만들려고 요셉을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요셉이 그냥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지 육체의 통정을 이긴 것을 성경에 기록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육은 우리의 영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있습니까?
요셉과 같이 주인의 아내가 통정을 하자고 할 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까? 영적인 의미조차 모르기 때문에 제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지금도 종교화 되어서 보디발의 아내와 같이 통정을 하자고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거의 다 넘어 가고 있습니다.
이 음녀에게 넘어가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이 시대 음녀에게 유혹을 당해서 다 통정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인 보다 주인의 아내를 더 사랑하고 그에게 충성을 하게 되는 순간에 그것이 통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교회를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교회와 통정을 하는 순간에 그는 사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교회 그리고 우리가 다니고 있는 교회는 언제든지 이렇게 통정을 하자고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무서운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뛰쳐나갈 수도 없습니다. 주인이 그 집을 맡겼으니까 싫다고 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 주인의 종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나는 종을 안 하겠다고 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내가 유혹을 하면 정말로 꼼짝도 못하고 통정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가 그렇게 통정을 하자고 할 때 그것을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넘어갑니다.
요셉을 통해서 너무도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여인에게 한번 붙들리면 어떻게 되는 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여인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다 이 여인으로 인하여 옥에 갇히게 되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전도서7:26절을 보면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
바로 이 여인입니다.
주인의 아내가 이렇게 돌변을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주 정상적이라고 보는 교회가 그렇게 요셉과 통정을 하자고 못 빠져 나가게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올무와 같고 손이 포승과 같은 여인은 사망 보다 더 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주님의 아내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언제든지 음녀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음녀에게 한번 붙들리게 되면 반드시 사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음녀와 한번이라도 통정을 하는 순간에는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음녀는 절대로 놓아 주지를 않고 포승으로 묶어 버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왜 개인의 통정 관계를 성경에 기록을 했겠습니까? 이것은 요셉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이 아내가 되는 교회라는 여인과의 관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예표로 보여주고 있고 그 여인이 요셉에게 아무리 간청을 해도 요셉을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무섭습니다.
거기에 한번 걸려들면 어느 누구도 빠져 나오지를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을 보면 교회를 너무 좋게만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세우신 바른 교회라 해도 우리는 늘 그 교회로 인하여 타락을 할 것을 경계를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 여인의 함정에 걸려들면 어느 누구도 빠져 나오지 못하고 결국에는 사망에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창세기39:12절을 보면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그가 요셉이 그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옷을 붙잡습니다.
이 옷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이사야에서 그가 구원의 옷으로 입혀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요셉의 옷을 붙잡아서 빼앗은 것 같이 우리의 구원의 옷을 빼앗고 있다는 것을 정말로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다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는 언제든지 종교화 되면서 타락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주님만을 바라보고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내가 되는 교회가 성도들의 구원의 옷을 빼앗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교회는 그렇게 사람들을 포승으로 묶어 버리고 있습니다.
종교화 됩니다.
그리스도의 아내가 되는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워지면 아주 빨리 그것이 종교로 변하고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 사도들이 있을 때 벌써 교회는 율법주의 은사주의 경건주의 그리고 영지주의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교회에 들어가면 구원을 방해를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교회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교인들이 통정을 하게 부추기고 있고 아주 아름다운 모습으로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거기에 안 넘어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보면 맞습니다. 100명이 있으면 거의 100명이 다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10절,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이 연인이 얼마나 지독합니까?
날마다 통정을 하자고 요셉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의 교회도 역시 이 연인과 같이 날마다 통정을 하게 만들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이 여인과 아주 깊은 통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주인께 충성을 하고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그것에 우리는 충성을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섬겨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충성해야 하는 대상은 오직 주님 한분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교회라 해도 그것을 위해서 주님의 복음이 가려지고 있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기가 결국에 어떻게 될지를 모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통정을 하자고 합니다.
무엇으로 통정을 하자고 합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고 또 은사 주의로 빠지게 하고 있고 교회라는 그것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반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 연인에게 취해서 그것이 하나님을 위해는 일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교회를 섬기고 있고 이 교회와 통정을 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옷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옷을 벗는 순간에 구원은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연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을 방해를 하고 있고 종교화 되어서 자기를 섬기게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시대 교인들이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고 그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열심을 있습니까? 그것이 통정이라는 것을 모르고 주인을 멸시하는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창세기39:20절을 보면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요셉은 무고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연인과 통정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여인과 통정을 하는 교인들은 모두가 옥에 갇히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지옥에 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이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을 보면 이 여인과 너무도 가까이 하고 있고 너무도 친숙하게 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인과 가까이 하는 교인들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무고로 옥에 갇혔지만 이 여인과 가까이 하여 통정을 하는 교인들은 결국에는 옥에 갇혀서 지옥에 간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교회를 외면하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는 주인에게 충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여인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 여인을 위해서 교인들이 수고를 하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교회가 주님의 아내가 된다 해도 그 교회를 지나치게 섬기는 일을 해서는 결국 그것이 우상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큰 음녀의 받을 심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보이는 교회를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그 교회가 종교가 되는 순간에 거기서 빠져 나오지를 못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여인으로 인하여 옥에 갇히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입니다
그 외에 모든 것은 우리가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라 해도 그것과 통정을 하는 순간 그 영혼은 옥에 갇히게 됩니다. 깨어 있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되어서 자기 영혼을 보존하고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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