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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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윤주만목사 2016. 8. 27. 22:02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창세기26:1-5절을 보면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성경에는 모든 답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모든 뜻이 담겨져 있고 그것을 아는 성도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지만 인생의 지식으로는 이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고 연구를 한다 해도 영생을 얻을 수 없는 것이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내가 지적인 수준이 높아서 이 성경을 보고 구원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참 좋은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이 이 성경을 어려서부터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행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들은 성경을 보아도 알 수 없었습니다. 성경이라는 것이 바로 이렇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신학을 공부했다고 해서 그리고 성경을 백번 정도 읽었다 해서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천국에 가고 싶다 해서 이 성경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주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내 진심입니다

그리고 내 노력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그렇게 하는 것으로 성경의 모든 비밀을 알 수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그렇게 하면 하늘도 움직일 수 있다는 샤머니즘적인 생각이 팽배해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사상이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는 사실 진리를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성경을 보는 마음부터가 바뀌지 않고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도 없고 또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진심이면 상대도 진심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은 모순이 되는 말인데도 우리나라의 오래된 생각에서 비롯된 그런 생각들이 사람들의 사고를 깨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경은 지식입니다

그리고 냉정합니다. 좋은 것이 좋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샤머니즘에 오래 동안 젖어 있었기 때문에 아니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그런 사상으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교회에 나와서도 그런 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으려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생각하시고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그리고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보면서 자기가 믿음이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생각 때문에 교회는 더욱 더 행위를 잘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그것이 심각한 율법주의로 빠지고 있는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종교입니다

이미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올 때부터 잘못 들어왔고 그것이 우리나라에 있던 샤머니즘과 맞물리면서 종교화 되었습니다. 그것이 지금 이 시대 교회의 모습이라고 보며 맞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새벽같이 일어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디서부터 출발을 한 것입니까? 우리 옛 어머니들이 새벽에 일어나 정화수를 떠 놓고 빌던 그 모습이 그대로 재현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 새벽기도가 있습니까?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시작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미 불교에서 늘 하고 있었던 참 불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산사를 가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새벽 4시도 안 되어서 일어나 불경을 외우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 불교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나라는 종교는 이렇다는 것을 천년 이상을 그렇게 생각하고 내려왔습니다. 그런 것을 종교의 기준으로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누군가 새벽 기도를 제안을 했고 그것이 이 시대 복을 받는 기도로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뭐가 다릅니까?

어머니들이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를 하던 것과 지금 이 시대 교회에 새벽같이 나와서 기도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어머니들은 자기들의 신을 찾았고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 다릅니까? 그런 무지에서 새벽 기도가 지금까지 시행이 되고 있고 그것을 아주 정당한 예배가 되어 지키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입니다.

 

빌던 내용이 똑같습니다.

다만 찾던 신이 다를 뿐이지 그들이 빌고 있는 기도의 내용은 같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고 있을 뿐이지 옛 어머니들이 정한수를 떠 놓고 하던 기도의 내용과 다를 것이 없다면 그것은 한 마디로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입니다

과연 그 안에서 그렇게 새벽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샤머니즘적인 것을 그대로 끌고 들어와 하나님을 찾는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용납이 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새벽기도를 하고 있는 그것으로 망하는 길로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별 새벽기도 입학시험 새벽기도 이런 것이 사실은 다 정화수를 떠 놓고 하던 기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런 일을 합니까?

다 무지에서 나오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행위들을 하면서도 오히려 그 새벽기도를 하는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생각입니다. 정말 그런 것에서 여러분이 벗어나지 못한다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 어디에 새벽기도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시편에서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라는 그 말씀 때문에 사람들이 새벽기도의 타당성을 이야기 하는데 정말로 무지한 생각입니다.

 

이사야6:9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보면 뭐 합니까?

들으면 뭐 합니까? 그것이 아무리 내 진심이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듣는 것을 포기하고 보는 것을 포기하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내가 듣고 있고 보고 있다면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다 깨닫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벽기도 한 가지만 보아도 그들은 이미 깊은 샤머니즘에 빠져 있고 그 안에서 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행위들을 보면 그들은 듣는 사람도 아니고 깨닫고 있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들으면 뭐합니까?

그리고 그리스도편지에 올려 진 설교를 보면 뭐 합니까? 제가 진리에 대해서 전한다고 해서 이 말씀을 보고 있다고 해서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지식적인 것으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편지를 보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그저 이 편지에서 진리를 보는 것으로 여러분이 구원을 받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새벽기도를 하는 교회에 나가고 있고 그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하고 있는 율법적인 행위를 하면서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성경을 많이 아는 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차라리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더 유익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분명히 의인과 악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이 있는 곳에서 아니 악인이 왕이 되어 있는 곳에서는 의인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의인이 있는 곳에서도 의인이 나온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악인이 왕이 되어서 치리하고 있는 교회에서 자기가 그리스도편지에 올려 있는 설교를 보면서 조금 안다고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제가 그리스도편지 아카데미를 꼭 들으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안 들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악한 일들을 행하고 있는 그곳에서 자기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자체가 너무도 어리석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듣기는 들어도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새벽기도를 하면서 샤머니즘에 빠져 있는 그 교회에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불쌍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악인이 가장 불상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는 구원 받을 것이라고 열심을 내서 새벽기도를 하고 있고 또 여러 가지 행위들을 하면서 악을 행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니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다 해도 그것의 뜻을 모른다면 그는 결국에는 악인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그저 소가 푸주로 끌려 들어가는 것 같이 들어가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진심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해 왔던 행위들입니다 그런 것에서 깨어나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그리스도편지에서 설교를 보아도 그것을 행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지식으로 쌓고 있는 것이지 이 지식이 그의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000년을 해왔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성경에서 아니면 아닌 것입니다 특히 성경에 없는 것을 교회 안에 끌고 들어오지를 마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미혹을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이 얼마나 지혜롭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성경말씀으로 미혹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사망으로 가면서도 그저 감각이 없이 끌려가고 있습니다.

 

시편에 새벽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진짜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하루의 새벽입니까? 사단은 그렇게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타당성이 있게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봐라 하나님께서 새벽에 도우신다고 하신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새벽에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 어머니들이 했던 정화수를 떠 놓고 했던 기도를 그대로 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단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오히려 제가 드리는 말씀이 이상하다고 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새벽에 도우시리라는 것은 그렇게 빨리 일찍 도우신다는 의미지 마치 하루의 시작 새벽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단은 그렇게 그런 말씀들을 이용해서 사람들이 새벽기도를 하게 만들고 있고 그러면서 그 새벽에 어떤 기도를 하게 하는가 하면 바로 정화수를 떠 놓고 했던 기도를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기도를 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께 기도를 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신에게 우상에게 기도를 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모르다 보니까 사람들이 자꾸 종교적인 행위에 빠지게 되어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그 영혼이 망하는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성경을 모르니까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정말 문자적으로 보지마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뜻을 모르면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육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육체가 되었습니다.

노아 때의 모든 사람이 다 육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다 육체가 되었습니다. 이방의 교회 역시 육체가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 주님의 은혜를 입고 있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구원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그것을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아무리 들어도 보아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노아의 홍수가 있었습니다.

이 땅에 흉년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흉년이라는 말씀이 처음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어떠했는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지구를 만드셨을 때 모든 사람이 먹을 수 있게 이 땅에 복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이 범죄를 하고 난 후에 땅이 저주를 받아 사람이 수고의 땀을 흘려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먹는 것에 있어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을 하고 또 기후가 변하면서 땅에 흉년이 시작이 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성경에서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지구의 비밀은 아무도 모릅니다.

이 시대 진화론이 팽배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사람들이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이 맞는지 지구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왜 기록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지구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록했다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하고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과학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순수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국에 대한 소망과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기록했다는 것을 알고 그대로 보면 됩니다. 이것을 과학과 매치 시키면서 보려고 하는 자체가 모순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때 첫 흉년입니다

그러면 그 이전에 흉년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따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령 흉년이 있었다 해도 아무 의미가 없고 또 없었다 해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중요하지 않은 것을 보면서 마치 대단하게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심지어는 정말 그 이전에 흉년이 없었는가 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왜 그런 것이 중요합니까? 하늘의 일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대해서 믿게 하시기 위해서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을 믿으면 되지 왜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까? 인생들이 조금 가지고 있는 지적인 능력을 가지고 마치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아 구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려고 하지는 않고 말씀을 가지고 이것이 맞는 가 틀린가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깨달아야 하는데 인생들이 그저 확인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것은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의 선진들을 세워 예표로 보여 주신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다는 것을 깨달으면 됩니다. 가능한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라니다.

 

6000년입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을 했다 해도 지금 문서로 남겨져 있는 글이 불과 삼천년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역사만 해도 2000년도 안 되는 것입니다 아니 불과 1000년 정도일 것입니다 그때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가지고 추정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 다시 흉년이 들었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흉년이 있었고 이삭 때에 다시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이삭이 가나안에서 그랄로 가서 거기 거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도 유목을 했기 때문에 흉년이 들면 초지가 많은 곳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지금과 같이 누구 땅이라는 것이 명확하던 때가 아니기 때문에 쉽게 이동을 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애굽입니다.

나일 강이 흐르고 있어서 아마도 애굽은 농사가 잘 되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육적으로 볼 때도 그렇지만 영적으로는 이 애굽은 풍족한 세상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애굽으로 내려갔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이삭도 자기 아버지가 흉년이 들었을 때 애굽으로 갔던 것을 생각하고 그곳으로 가려고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에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어떤 환경의 변화가 오면 편한 곳을 찾아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에굽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애굽을 의지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의미하고 있고 자기들에게 조금 어려움이 있으면 그렇게 세상으로 가려고 하는 것을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삭도 흉년이 들자 사람의 이성에 따라 애굽으로 가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가지 말고 내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애굽은 구약에서 세상에 되었지만 지금은 보이는 교회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는 너무도 의지하고 쉽고 편안한 것으로 변해 있습니다. 교인들에게는 이 애굽만큼 편하고 좋은 곳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그 교회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 같이 평안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평안하게 느끼는 곳이 애굽입니다.

이 시대 교회가 교인들에게는 그렇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굽으로 한 번 내려가면 다시 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통해서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반드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에서 있어야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네가 이 땅에서 살아야, 내가 너를 보살피고, 너에게 복을 주겠다.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내가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약속을 이루어서,"

 

땅입니다

사실 땅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러나 이 땅은 그냥 땅이 아니라 천국을 예표하는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가나안 땅에 아브라함이 거하게 하시고 또 이삭을 통해서 그곳에 거하게 하심으로 천국을 어떻게 주시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 이 땅에 거하라고 하십니까?

 

레위기25:23절을 보면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이 땅이 누구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땅은 우리가 사모하고 있는 천국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그 땅이 아니라 천국을 예표하기 위해서 이 땅은 내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이 누구 것인 줄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천국은 은혜로 들어가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 땅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 땅의 주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고 싶은 자에게 주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제주도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살고 싶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내 것이면 내가 살게 해 주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가 착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가 의로워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가 부자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내 땅이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거지에게 주는 것도 내 마음이고 살인자에게 주는 것도 내 마음입니다 그것을 불의하다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불의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천국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것을 예표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의 모든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것이 불의하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선하고 의롭게 행한 그것을 통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천국을 받으려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들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명세를 하셨습니다.

이 시대 주님께서 우리에게 언약을 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다 지금 이 구약을 통해서 예표로 보여 주시는 말씀들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을 먼저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 시대는 천국을 자기들의 의지로 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서 이 모든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똑같은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그 언약을 지금 이삭을 통해서도 똑같이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언약은 또 야곱에게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 예표입니다 이 이삭은 약속을 받은 자라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약속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이삭과 같은 성도가 이 시대 그 자손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삭과 같이 약속을 받은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다는 것을 언약해 주시고 있습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약속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된 영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하늘의 성도가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약속을 안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약속에 의해서 그 땅을 주시겠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약속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행위를 선하고 의롭게 해서 자기들의 의지로 천국에 들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악한 일인가를 모르고 종교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믿음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면서 행위에 빠져 종교가 되고 있습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약속을 받은 성도들에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 민족이 그렇게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사랑하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믿지 않고 행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새변역입니다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게 하고, 그들에게 이 땅을 다 주겠다. 이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씨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하겠다"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씨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겠다고 말씀합니다.

네 씨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해서 이 세상 모든 천하 만민이 천국의 복을 받을 것을 예언을 하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해서 이방에 빛을 보여 주셨고 지금 우리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께서 소요하신 기업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를 믿지 않고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복이 아니라 천국의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서 꿩 먹고 알 먹으려고 이 세상의 복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스스로를 망하게 하는 줄을 모르고 자기들이 어떤 복을 받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이 세상의 복을 구하고 있습니다.

 

복을 받습니다.

이생의 복이 아닙니다. 이생의 복을 누가 줍니까? 바로 사단이 줍니다, 어머니들이 정화수를 떠 놓고 빌면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사단이 그것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똑같은 행위를 하면서 자기가 무슨 복을 구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사단에게 그 복을 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우리가 천국의 복을 누리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어떤 복을 받는 줄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기들이 빌고 있는 복을 누가 주는 줄을 모르고 성경에 복이라는 말씀이 있으니까 무조건 복을 받기 위해서 정화수를 떠 놓고 새벽마다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천하 만민이 네 씨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에 순종을 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성경에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 언제입니까?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반포하기 최소한 400년 이전입니다. 이제 막 야곱과 에서가 태어났으니까 500년 이전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그런데 율법이 있기도 전에 아브라함이 내 말에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순종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명령도 모르고 계명도 모르고 율례도 모르고 법도도 모르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1:22절을 보면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진리의 하나님입니다. 이 시대는 순종을 이야기 하면 무엇에 순종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진리에 순종하는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순종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진리에 순종하지 않고 율법에 순종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때입니다.

아직 율법이 반포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무엇에 순종했는가 하면 진리의 하나님께 순종했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율법을 지켜서 순종한 것이 아니라 진리에 순종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순종하면 자기 행위로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순종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명령이 무엇입니까?

그의 명령은 영생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으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명령을 모르고 있고 지키지도 않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것은 생명을 얻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의 명령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 했어도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계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계명을 모르고 그저 율법의 계명을 지키는데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율법이 세워지기 600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율례를 지켰습니다.

훈계를 따랐다는 말씀입니다 진리를 받아들이라는 하나님의 율례를 지켰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율법 이전에 아브라함이 지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으면 그저 율법을 더 잘 지키려고 하다가 다 악에 빠지고 있습니다.

 

법도가 무엇입니까?

믿음의 법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이 시대는 믿음의 법을 따르기 보다는 율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믿음의 법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이 모든 것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지도 모르고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는 자신을 보면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가 어떤 율법의 행위를 잘 해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었기 때문에 믿음이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어서 우리에게도 그 동일한 믿음으로 천국의 기업을 주시겠다고 지금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약속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약속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약속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리고 오직 믿음입니다. 또한 오직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부터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언약을 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을 기업으로 받는 성도가 되어 주님께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