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34-1,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윤주만목사 2025. 6. 25. 06:23

로마서13:3절을 보겠습니다. (257)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권세가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왜 권세가 있는가 하면 권세에 굴복을 하게 함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을 하고 있습니다.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는데 믿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다 이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영생을 믿게 하기 위해서 권세에 굴복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권세는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께서 정하셨기 때문에 굴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께 로서 이 권세가 나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대로 은사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 은사자들에게 굴복을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권세들에게 굴복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권세들에게 굴복을 하지 않고 있고 도리어 사람에게 굴복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권세들을 성령을 통해서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해도 그에게 굴복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는 권세에 굴복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권세들입니다

그것을 로마서12장에서 은사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은사에 굴복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은사에 대해서 그리고 권세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알아야 권세에 굴복을 할 수 있는데 모르니까 굴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거스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권세에 굴복하는 것이 어렵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이 아주 쉽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우리 입에 있고 우리 마음에 있어서 누구나 다 권세에 굴복을 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를 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누구라도 할 수 있게 하나님께서는 재능을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그 재능을 모르기 때문에 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다보니까 권세에 굴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권세를 거스리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권세에 굴복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떠한 행위인가를 모르고 하나님의 명을 거스리면서 심판을 자취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얼마나 쉽습니까? 예언을 하는 자가 있어서 복음을 전하면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아서 믿는 것이 권세에 굴복을 하는 일입니다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권세에 굴복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굴복이라고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성경에 기록을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 말씀을 보고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믿지를 않고 육체의 소욕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거스립니까?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육체의 소욕을 행함으로 해서 위에 있는 권세를 거스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의 소욕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의 소욕을 거스리면서 이 둘이 서로 대적을 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에 굴복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이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고 있는 그 문장만 보다보니까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육체의 소욕을 행하면서 권세를 거스리고 있지만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권세를 정하셨는가 하면 권세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권세가 나타남으로 해서 그 말씀을 듣고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12장에서 말씀을 끝내고 다시 13장을 보면서 권세가 전혀 다른 말씀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장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 이 서신을 보냈을 때는 장절이 없었습니다. 장절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모든 첨삭이 되어 있는 것도 없었습니다. 후에 성경을 편찬하는 신학자들이 사람들이 편리하게 볼 수 있게 장절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12장에서 말씀이 끝나고 13장에서 새로운 말씀으로 시작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12장에서는 하나님이 은혜대로 은사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13장에서는 마치 뜬금이 없이 권세라는 단어가 나오다보니까 더욱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연결입니다

모든 성경은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성경은 성경이 서로 인용을 하면서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12장의 말씀을 연결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권세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고 우리는 그 권세에 굴복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권세에 굴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스리면서 하나님의 명을 거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것을 요한복음에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명령은 영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으려면 반드시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을 해야 합니다. 권세들에게 굴복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육체의 소욕에 빠져 하나님께서 정하신 권세를 거스리면서 하나님의 명을 거스리고 있습니다.

심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스리는 사람은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심판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남의 집에 불구경 하듯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시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릴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치안관들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에게만 두려움이 됩니다.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거든, 좋은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그에게서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비유입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말씀이 비유인가 문자 그대로인가를 먼저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분별이 안 되면 성경을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그렇게 다르게 해석을 함으로 해서 권세를 거스리게 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면서 심판을 자취하게 됩니다.

세상의 일입니다

세상에는 관원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관원이 있습니까? 세상에 이성으로 선한 사람들이 잘 살게 하고 있고 악한 사람들을 감시를 해서 그들도 하여금 세상에서 악하게 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관원이 있습니다. 지금 3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선한 일과 악한 일은 세상의 이성적인 판단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경찰관이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치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경찰관을 보아도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은 경찰관이 곁에 지나가기만 해도 왠지 모르게 불안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교회 안에도 관원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관원들은 선한 일에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해서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131절에서 각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각 사람이 권세를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교회 안에 있는 세상에 권원과 같은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하면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을 하면 두려움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권세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권세를 모르는 사람은 전혀 해당이 안 되는 말씀입니다 권세를 알아서 그 권세에 굴복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권세에 굴복을 하는 것은 선한 일을 하는 것이고 권세에 굴복을 하지 않는 것은 악한 일인데 세상에 이치로 따져도 악한 일은 두려움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골로새서1:16절을 보겠습니다. (324)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성경이 어렵습니다.

늘 성경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정말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그 말씀을 제 생각에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글로서 말로서 표현을 한다는 것이 때로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늘 느끼고 있습니다.

권세입니다

이 권세가 누구에게서 왔습니까? 그것을 골로새서에서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고 알 수 있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위에 있는 권세나 이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창조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관원이 누구입니까? 이 세상의 관원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관원이 있습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그 관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나를 치리하고 다스리는 자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선한 일을 하면 그 관원에게 두려움이 없지만 내가 악한 일을 하면 관원에게 두려움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일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영의 일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관원에 대해서 먼저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이성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내가 복음을 알고 있다고 해서 세상의 이성까지 무시해 버려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그 이치를 바로 알아야 성경에서 말씀을 볼 때 복음을 바로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습니다.

그가 누구든지 마찬가지입니다 경찰이냐 선생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관원이라고 하고 있고 선한 일을 하면 두려움이 되지 않지만 악한 일을 하면 두려움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먼저 알고 영의 일을 생각하면 됩니다.

권세들이 있습니다.

그 권세에 굴복을 하는 것은 선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권세에 굴복을 하지 않으면 악한 일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로 따져도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관원이 두려움이 되지 않고 있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관원이 두려움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그것을 골로새서에서는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권세가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선한 일을 하는 것은 권세들에게 굴복을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악한 일을 하는 것은 권세에 거스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권세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가 되고 있습니다. 그 복음에 굴복을 하는 것은 선한 일이고 거스리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권세를 압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내가 선한 일을 하는지 악한 일을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세상의 이치로 따져도 선한 일을 하면 관원에게 두려움이 되지 않고 있고 악한 일을 하면 관원에게 두려움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입니다

이 시대는 선한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권세들이 이 복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권세들에게 굴복을 하는 것이 선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이치를 따라 생각을 해도 두려움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한 일입니다

그것은 권세를 거스리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지를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이치로 따져서 그가 악한 일을 했으면 세상의 관원을 두려워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권세들입니다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권세들을 세우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세우셨는가 하면 예언으로, 섬기는 일로, 가르치는 일로,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일로, 다스리는 일로, 베푸는 일로 해서 각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각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권세에 굴복을 해야 합니다. 왜 굴복을 해야 하는가 하면 그 권세를 다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권세를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은혜대로 우리 성도들에게 은사로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을 통해서 나타남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악한 일을 하면 심판을 받습니다. 이것은 굳이 교회에 나오지 않더라도 이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권세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악한 일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세상의 이치를 따라 관원이 두려움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3장입니다

먼저 권세들을 알아야 합니다. 권세들을 모르면 이 말씀은 도무지 풀리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권세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까지 로마서를 강해를 한다고 하는 그 사람들의 글을 보아도 권세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앞에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깨달아야 뒤에 있는 말씀이 풀어질 수 있습니다. 앞에 있는 말씀을 모르는 상태에서 뒤에 있는 말씀을 보면 마치 소경과 같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앞에 있는 말씀을 모르니까 성경에 첨삭이 되어 있는 제목부터가 그리스도인과 세상 권세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 권세입니까?

지금 사도 바울이 세상 권세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분명히 성경에는 위에 있는 권세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신학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 권세라고 자기들의 이성으로 생각하면서 성경에 첨삭을 해서 모두가 성경을 그렇게 보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것이 풀리지 않으면 재앙입니다 자기 혼자만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자기들 마음대로 첨삭을 해 놓아서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눈을 소경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성경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첨삭이 되어 있는 그 제목을 먼저 보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것도 성경말씀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어느 한 사람의 열심이 성경을 첨삭함으로 해서 후에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눈을 소경이 되게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신학자라고 하는 그 유명한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도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성경을 알 수 있습니까?

사실 제목을 보는 순간 우리는 성경을 풀 수 없게 됩니다. 아니 더 이상 생각할 필요조차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 제목을 보면서 아주 쉽게 그리스도인과 세상 권세를 생각하면서 보면 성경이 문자 그대로 해석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권세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권세에 굴복을 하는 것을 선한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권세들을 거스리는 것을 악한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관원을 비유로 해서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두려움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권세들 자체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다보니까 선한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악한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한 일을 하면 그것을 알고 두려워해야 하는데 교회 안에서 권세들에게 굴복을 하지 않고 있으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상대를 알아야 그 상대를 보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또 만만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한 일을 하면서도 전혀 두려움이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악한 일을 하는 사람도 관원을 두려워하는데 교회 안에서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권세에 굴복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권세들에게 거스리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지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도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욥기42:3절을 보겠습니다. (80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이 세상에서 욥보다 더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산 사람이 없습니다. 욥기에서 그의 고백에서 보아서 알겠지만 그는 정말 자기가 왜 고난을 당해야 하는 줄을 전혀 몰랐습니다. 아니 도리어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정말 욥은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그 정도로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는 제가 굳이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욥기를 통해서 우리가 충분히 알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순전함입니다.

그리고 정직함입니다. 욥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자기보다 하나님을 잘 믿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고 욥을 책망하시자 그가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회개를 하고 있습니까? 자기가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욥은 무지한 자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기전에 욥과 같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욥이 왜 무지합니까? 그는 선한 일이 무엇인가 그리고 악한 일이 무엇인가를 전혀 몰랐습니다. 자기가 행한 악한 일을 가지고 선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겠다고 한 사람입니다

욥이 선한 일을 했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욥보다 더 선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선한 일이 무엇인가 악한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두려움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겠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입니다

그들도 선한 일을 하면 관원을 두려워하지 않고 악한 일을 하면 관원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선한 일이 무엇인가 악한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두려워하지도 않고 회개도 하지 않습니다.

무지합니다.

성경말씀에 대해서 무지한 자가 되면 어떻게 되는 가를 우리는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로마서를 보면서 권세를 세상 권세로 알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정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권세인데 그것을 세상 권세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선한 일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악한 일을 알고 있습니다. 관원의 두려움이 되지 않으려고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악하게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모르면 자기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이 주먹을 날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관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선하게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욥과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을 하면서 권세들에게 굴복을 하지 않고 도리어 거스리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기독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성경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의 육체의 일이 아닙니다. 육체의 일로 보는 순간 그는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13장도 육체의 일로 보느냐 영의 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성경이 풀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보는 성경부터가 첨삭이 되어서 육체의 일로 만들고 있습니다.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무지한 자입니까? 순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았다고 하는 욥이 무지한 자입니다 지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다 욥과 같이 살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선을 모르고 악을 모르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합니다.

모르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알면 자기가 권세들을 거스리면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13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권세들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면 권세를 거스리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권세들을 알고 있으면 세상에서 악을 행하면 관원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돈키호테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돈키호테가 되어 있습니까? 지금 사도 바울은 권세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관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가 선을 행한다고 하면서 세상의 관원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도입니다

이것이 금지가 되어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 가서도 자기가 선한 일을 한다고 하면서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권세에 굴복을 하는 일입니까? 전도는 권세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돈키호테와 같은 일을 하면서 두려워하지 않고 있고 객기를 부리고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있습니까?

영생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행위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무지한 생각인데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닌데도 자기들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면서 억지로 해석을 해서 망하는 길고 가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무지합니까?

사실 그들은 자기들이 선한 일을 한다고 하면서 거의 막무가내로 다른 나라에 가서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선한 일을 하니까 세상 관원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지에서 나온 객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선한 일인지 악한 일인지도 모르니까 그런 객기가 나오고 때로는 참혹한 일이 발생이 되는데도 그것을 도리어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욥과 같이 세상 말로 하나님과 맞장을 뜨자고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관원입니다

세상의 이치를 따라 우리는 그들이 생각하는 선한 일을 하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를 따라 아니 관원이 생각하는 것을 따라 악한 일을 했다면 우리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2:5절을 보겠습니다. (114)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권세입니다

다 하나님께서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권세들을 통해서 각 사람을 굴복하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권세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세를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세상 권세입니까?

우리가 세상 권세를 두려워해야 합니까? 물론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악하게 살지 말고 선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의 사람이 아니라 영의 사람이기 때문에 설령 그들이 우리의 믿음을 핍박을 한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관원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영의 사람이라고 해도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정한 법 안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고 우리가 천국을 사모하면서 살아가는 그것에 있어서는 세상 권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권세를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권세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세상 권세를 두려워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그들이 정해 놓은 법대로 살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이미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권세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왜 두려워해야 하는가 하면 그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육체를 죽이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고 내 영의 생명의 주권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권세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권세에 굴복을 하지 않고 거스리면 어떻게 됩니까?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옥에 던져 넣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권세를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는 권세를 거스리면 지옥에 던져 넣게 되기 때문에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이치입니다

관원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가 정해 놓은 선한 일이 있고 악한 일이 있습니다. 그가 정해 놓은 선한 일을 하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그가 정한 악한 일을 하면 두려워하기 마련입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권세를 하나님이 다 정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권세에 굴복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기 때문에 선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권세를 거스리면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거스리기 때문에 악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권세를 거스리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권세를 거스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을 주님께서 누가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옥에 던지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을 거스리면 당연히 지옥에 던지우는 것 아닙니까? 사도 바울이 지금 교회 안에 있는 각 사람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은사자들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스리면서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두려워합니까?

권세를 거스리면 지옥에 가기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권세를 거스리면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당연히 지옥에 가고 그러면 두려워해야 합니다. 두려워해야 하는데 이 시대는 권세를 모르다보니까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권세를 거스리면서도 자기가 두려워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내가 두려워해야 하는 일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권세를 거스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그것에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권세를 모르다보니까 두려워할 수 없습니다.

너무도 담대합니다.

권세를 거스리면서도 너무도 담대합니다. 악한 일을 하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마치 누구와 같습니까? 욥과 같이 회개를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니까 아니 자기가 권세를 거스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니까 회개를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입니까?

우리는 두려워할 일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죄를 안 짓고 산다면 두려워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성경은 그런 육체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권세를 거스리는 일로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는 그것으로 두려워해야 하는데 권세 자체를 모르다보니까 교회 안에서 객기를 부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옥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지옥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지옥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옥이 있다고 그렇게 강하게 말을 하고 있는 그들이 권세를 거스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옥이 있으면 두려워해야 하는데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그 지옥은 자기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 지옥에 갑니까?

권세를 거스리는 자들이 지옥에 갑니다. 권세를 거스리면서 악한 일을 하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지옥에 갑니다. 그런데도 권세를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말씀이 자기들과는 아무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