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1, 부활입니다
요한복음20:4절을 보겠습니다. (신 183쪽)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부활입니다
우리 성도는 주님께서 영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지만 우리 피조물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는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까지 모든 것을 예정을 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 졌다는 것을 사도 요한을 통해서 환상으로 보여주시고 우리 피조물들이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하고 있습니다.
예정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예정으로 우리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고 그 아들의 생명을 얻음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을 먼저 보여 주셨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믿음으로 그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구약 성경입니다
주님께서도 그렇고 사도들도 이스라엘이 보던 구약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대인들도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성경을 보았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유대인들과 똑같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입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그냥 부활을 하셨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그대로 부활을 하신 것이지 주님께서 오셔서 그냥 부활을 하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레위기의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첫 이삭의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어서 안식일 이튿날에 드리는 첫 이삭의 단을 드리는 율법 그대로 부활을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율법에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정한 그대로 이 세상에 주님이 오셔서 유월절 첫 이삭을 드리는 절기와 같이 안식일 이튿날에 그러니까 율법에 기록이 된 그대로 유대인들이 말을 하는 유월절과 안식일이 겹쳐서 있는 그 다음 날에 부활을 하셨다는 것을 율법에서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냥 정하셨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가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서 종교인으로서의 삶과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정하셨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모든 종교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과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미 우리가 요한복음1장에서 빌립과 나다나엘의 대화에서 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빌립과 나다나엘은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여러 선지지가 기록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기 때문에 주님을 만나자마자 제자가 될 수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증거입니다
우리 성도는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그 증거가 그대로 이루어진 일을 보고 그럼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을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종교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지만 우리는 이렇게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음으로 해서 더욱 믿음에 든든히 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입니다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주님을 따라 말씀을 듣던 모든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고 막달라 마리아 역시 새벽에 주님을 장사한 무덤에 온 것은 그들의 장례의식에 따라 향품을 뿌려 시체가 냄새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지난 시간입니다
시편의 말씀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썩지 않게
새 번역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죽음의 세상에 버림을 받지 않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조된 세상을 그렇게 번역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시체는 비록 창조된 세상에서 죽어 사라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다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생명으로 태초부터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입니다
인생들은 종교 안에서 신체의 부활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체의 부활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부활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우리 성도는 주님께서 어떻게 부활을 하셨는가를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있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철학입니다. 그들은 신체의 부활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우리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시편16편에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시체가 사라지는 일과 그리고 생명으로 부활을 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활입니다
우리는 이 부활에 대해서 확실하게 기초를 세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생들은 자기 철학적 사고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부활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부활을 이야기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되고 오직 주님께서 태초부터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로서 보여주신 일을 믿어야 합니다.
기초입니다
부활에 대해서 많은 말씀들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기초가 되는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르다가 마지막 날에 죽은 자기 오라비가 부활을 한다는 말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그것이 아니라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나를 믿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을 얻은 자만이 부활을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첫째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설령 주님께서 다른 말씀을 하셨다고 해도 우리는 이 첫째 부활에 참예를 하는 일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부활을 하고 더 이상의 부활이 없다는 성경말씀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부활입니다
제자들이 이제 후에 주님께서 부활을 하신 형상을 직접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를 못하는 것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 있고 주님께서 어떻게 부활을 하셨는가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모르는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신체의 부활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신체의 부활을 주장하는 것은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 인생의 철학을 따르는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의 교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둘이 함께 뛰었는데,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서, 먼저 무덤에 이르렀다.”
주님의 부활입니다.
그것은 곧 우리의 부활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주님의 부활과 자기의 부활은 전혀 다른 존재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같은 생명이고 하나님 아들들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우리의 맏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 마지막이 무엇인가 하면 태초부터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셔서 이제 하나님 나라로 올라가시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길입니다. 그래서 앞서 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서 가셨다면 우리가 그분을 믿고 그분의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다면 그분이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인들은 주님까지도 신체로 부활을 하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말이 됩니까?
그분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믿어도 하나님이고 종교인들이 주장하는 삼위일체라고 해도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신체로 부활을 하셨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모순이 되고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환상으로 본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은 무엇이 되는 것입니까?
베드로입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입니다. 이 다른 제자는 사도 요한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의 시체가 없어졌다고 하니까 부활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있고 그저 인간적인 생각으로 그 시체를 찾기 위해서 그리고 확인을 하기 위해서 무덤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시편78:39절을 보겠습니다. (구 860쪽)
“저희는 육체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신다. 사람은 다만 살덩어리, 한 번 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바람과 같은 존재임을 기억하신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피조물임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진화를 해서 탄생이 된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설령 과학자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이 지구에 있는 포유류들이 다 물고기에서 진화를 거듭해서 포유동물이 되고 그 중에서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창조된 세상입니다
저 역시도 이 진화론에 대해서는 딱히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짐승이나 그리고 사람이나 다 육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에 있어서는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설령 우리 인생들이 물고기에서 진화를 했다고 해도 그 역시 저는 창조의 대략이라고 말씀을 하고 싶습니다.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창조부터 이제까지의 이 지구 안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다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습니다. 물론 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설이지만 그것을 어느 정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저는 성경말씀에 모든 기초를 두고 있고 성경을 무시하는 말씀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창조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육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에 있어서는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없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창조에 속한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인 하나님 나라를 성경은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이 지구 안에 있는 생명체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분적인 진화는 있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저는 창조론을 믿고 있습니다.
피조물입니다
우리 인간이 보는 미물이라고 하는 것도 피조물이고 우리 역시 피조물이라는 것에 있어서는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실제 같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어느 종에 따라서는 유전자가 거의 비슷한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과학자들은 그것이 진화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고 도리어 그것으로 같은 피조물임을 증거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서는 지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 피조물이지만 우리 인생을 지으신 목적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지적인 능력을 주시고 우리로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지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우주입니다. 지구 안에 있는 원소가 그대로 우주에 다 있다는 것을 과학자들이 밝히고 있습니다. 지구에 있는 것 외에 다른 원소가 우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원소입니다. 다만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공기와 적정한 태양과 그 외 여러 가지가 오직 이 지구에서만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지렁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이 있습니다. 똑같은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인생의 입장에서는 같다고 하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피조물이라는 것에 있어서는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는 생명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요한복음에서 충분히 말씀을 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자기들이 어떤 존재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과학적인 다큐멘터리를 가끔 보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게 되면 더욱 더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들은 더욱 진화론에 빠지고 있을지라도 저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과 그 피조물을 지으심이 얼마나 오묘하신가를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봅니다.
저는 상식에 벗어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결국 샤머니즘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는 점점 더 그런 샤머니즘적인 것을 찾고 있고 그런 것에 빠져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있고 자기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십니다. 저는 이 성경을 볼 때마다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과학이 발달을 하면 할수록 저는 하나님을 더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도리어 그것을 반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이시지만 우리 피조물의 형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나태내신 주님입니다
우리 피조물과 같은 형체를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육체도 우리 피조물과 같은 육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분명히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의 철학적 지식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이지만 저는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어서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피조물의 형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이제 그 피조물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무덤에서 장사 되었습니다. 주님과 우리는 물론 다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예표라는 것을 말씀을 했고 주님이 앞서 가신 그대로 우리도 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 피조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말씀이 있지만 그 중에 한 말씀만 인용을 해서 하겠습니다. 시편에서 우리 피조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육체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 가장 잘 말씀을 하고 있는 성경말씀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인생의 육체가 어떻게 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에서는 우리가 조금 더 쉽게 알 수 있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다만 살덩어리, 한 번 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바람과 같은 존재임을 기억하신다. 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뭡니까?
살덩어리입니다.
그 살덩어리가 어떻게 됩니까? 죽으면 다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썩어 없어지면 우주의 138억년이라는 시간에서는 바람과 같은 존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 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바람과 같은 존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아담의 흔적이 있습니까? 아브라함의 흔적이 있습니까? 다윗의 흔적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의 흔적이 있습니까? 그 살덩어리들은 다 썩어서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한번 지나가고 나니까 이제 보이지도 않고 있고 그래서 시편에서는 바람임을 기억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피조물의 육체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어떻게 오셨습니까? 우리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분명히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창조된 세상에 오셨을 때는 우리 피조물과 같은 형체를 입고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입니다
주님도 피조물의 형체입니다. 그러면 그 전에 피조물들이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시편의 말씀과 같이 살덩어리는 다 썩어 없어지고 그렇게 썩어 없어진 살덩어리는 다시 돌아올 수 없고 바람과 같은 존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흔적도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의 형체입니다
주님께서도 이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그러면 이 종의 형체는 어떻게 되는가 하면 살덩어리가 되어서 썩어 없어지고 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체를 무덤에서 장사 지냈습니다. 그러면 이제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 살덩어리만 남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 살덩어리는 시편의 말씀과 같이 한번 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바람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부활을 하셨습니다.
이 시체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시체가 다시 살아나셔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이상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시체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제 하늘에 올라가십니다.
쉽게 말을 해서 창조된 세상에 오셨다가 이제 하나님이 되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로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창조된 세상에 오셨던 그 신체가 부활을 해서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정말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역사를 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습니까?
내가 믿는 것이 성경말씀과 같으면 그 사람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부활의 영광에 참예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믿는 것이 성경과 다르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그는 그저 살덩어리가 되어서 한번 갔기 때문에 되돌아오지 못하고 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우리 창조된 세상에 보이는 생명체는 다 그렇게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시체입니다
이미 성경에서 다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부활을 하신 말씀을 보아도 시체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주님께서도 역시 우리 피조물과 같이 창조된 세상에 오셨고 그 형체를 입고 오셨기 때문에 시편의 말씀과 같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입니다. 그 영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설명할 수 없고 사도 요한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주님의 부활입니다
이 부활을 믿기 전에 우리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나타내신 육체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먼저 육체가 어떻게 되는가를 알아야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육체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있고 그런 그들이 부활을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고 있습니다.
시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신다. 사람은 다만 살덩어리, 한 번 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바람과 같은 존재임을 기억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신체의 부활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살덩이가 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마는데 영혼으로 변해서 부활을 한다는 인생의 철학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무덤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고 주님의 시체를 찾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했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고 주님의 시체를 삼일 만에도 다 없애 버리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고 그것을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또 번제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행전13:36-37절을 보겠습니다. (신 210쪽)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고 그렇다보니까 그저 자기들의 종교에서 말을 하고 있는 부활절이라는 절기를 지키는 일에는 열심을 내고 있지만 자기들이 부활을 하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바라는 것이 거짓이라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실상이 아니라 거짓으로 변하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이렇게 바라고 있었는데 그것이 거짓이라면 그는 부활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종교 안에서 이 부활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절기를 지키는 일에만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내세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해서 다 종교 안에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들이 말을 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평생을 믿었습니다.
자기는 정말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고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모든 사람이 나를 보고 정말 믿음이 있는 성도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가 믿은 것이 거짓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불행한 일이 되고 그래서 주님께서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런 말씀을 보고도 그저 남의 집에 불구경을 하는 듯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인들입니다
물론 바알의 사상이 많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더 잘 살기를 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병이 안 들고 오래 장수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창조를 하셨고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부활을 하신 것도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부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방의 종교는 주님께서 부활을 하신 그 날을 자기들의 종교의 최고의 명절로 삼고 지키고 있습니다. 그 명절을 지키면서 자기들도 부활을 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들의 교리입니다
제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종교의 조직신학이라는 책을 보면 신체의 부활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이 되기 위해서 배우는 그들의 교리가 신체의 부활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신체의 부활이 아니라면 그들은 시편의 말씀과 같이 그들은 죽어서 고기 덩어리가 되어서 썩어 없어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이 요한복음에서만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하는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니까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가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사람이 두 번 날 수 있습니까? 모태에 들어갔다고 다시 나는 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두 번 나는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두 번 나는 생명에 대해서 그 생명이 무슨 생명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고 심지어는 종교인들이 배우는 조직신학이라고 하는 책에서 조차 이 태초부터 있는 생명에 대해서 언급조차 안 되어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우리는 이 생명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아는 일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부활의 영광에 참예를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종교는 성경과는 전혀 다르게 주님부터가 신체가 부활을 하셨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어떻게 이 세상에 피조물의 형체를 입고 오신 그 신체로 부활을 하실 수 있습니까? 우리가 논리적으로 조금만 깊이 상고를 해도 그것은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종교에서는 그것을 교리로 세워 놓으니까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고 자기들도 그렇게 신체가 부활을 한다고 하면서 그 신체로 주님을 만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에 대해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 아는 것으로 그들은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아는 부활이 성경과 다르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는가 하면 죽은 후에 고기 덩어리가 되어서 썩어 없어지고 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평생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정말 열심히 진실 되게 살았는데 그것이 다 거짓이라면 얼마나 허망한 일이 되겠습니까?
차라리 안 믿었으면 좋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남들은 못가도 자기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부활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너무도 자신 있게 말을 하고 있고 특히 사람이 죽어서 장례를 치르면서 그들은 교리대로 천국에서 만나보자 라고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세상입니다
대통령이 있습니다. 청와대에 들어가서 대통령을 만나는 일도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혹시 무슨 일이 있어서 초청을 받았다면 그 사람은 그 날에 입고 갈 옷부터 해서 아마도 그 통보를 받은 날부터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갔습니다.
그런데 내가 명단에 없어서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아니 얼마나 자기 신세가 처량하겠습니까? 남들은 다 들어갔는데 누군가의 실수로 인하여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면 아마도 낙담을 하고 돌아갈 것이 분명합니다. 더구나 내가 지지를 하고 존경을 하는 대통령이라면 그 사람의 마음은 참담함 그 자체일 것이 분명합니다.
세상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고 그것이 다시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청년의 때에 이 구원에 대해서 확신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어서 고기 덩어리로 변해서 썩어 없어져 바람과 같이 된다면 그것은 참 제가 말로 설명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부활이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부활이라는 단어를 보고 그저 막연하게 자기가 부활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고 매년 부활절이 오면 그 절기를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고 최근에는 완전히 세상이 되어서 칸타타를 한다고 하면서 한 달 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부활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잘못 알고 있다면 그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부활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우리가 시편을 보고 있습니다. 그가 기록한 성경을 보면 그만큼 하나님을 찬양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윗이 어떻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썩었습니다.
그가 부활을 했습니까? 그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습니까?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에 대한 모든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뜻을 좇아 섬겼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윗이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역시 시편16편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생명으로 부활을 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의 번역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썩음을 당하였다고 번역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는 썩음을 당하지 않았다고 번역을 하니까 주님께서 죽은 그 시체가 부활을 하신 것과 같이 인생들이 성경을 보고 있고 그것이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지금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바라던 다윗과 같은 왕을 말씀을 하면서 너희가 바라던 그 다윗도 인생이기 때문에 죽어 그의 조상들 곁에 묻혀서 썩고 말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죽어서 이 세상에서 버림을 받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살리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3장 말씀입니다
마치 다윗은 죽어서 그 시체가 썩었다는 것과 같이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그 시체가 썩지 않고 그것이 다시 살아나신 것과 같이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이 말씀 역시 지난 시간에 말씀을 했던 시편16편을 인용을 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상식입니다.
죽어 있던 시체가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다시 살아난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로 올라가시는 일이 성립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불가능한 일인데도 아니 받아들을 수 없는 말씀인데도 인생들은 성경의 문자를 보고 마치 그런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그저 신체가 부활을 하셨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덤입니다
다윗의 무덤에서는 죽은 다윗이 썩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무덤에서는 그 죽은 시체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말씀이 과연 성립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지를 저는 묻고 싶습니다. 성경에서 빈 무덤을 말씀을 한다고 해서 마치 주님의 시체가 썩지 않고 부활을 했다고 하는 것은 정말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지금 그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성도는 충분히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사시고 부활을 하신 것은 죽은 시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생명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니까 마치 주님의 시체가 썩지 않는 것으로 성경을 보고 있고 신체의 부활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부활입니다
그러면 다윗의 신체는 썩어 없어졌는데 그는 어떻게 됩니까?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다고 말씀을 하는데 그러면 다윗은 영생을 얻지 못한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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