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1,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로마서12:19절을 보겠습니다. (신 257쪽)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성경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성경을 오해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일에 대해서 단순히 오해를 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영생에 관한 말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해를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독교입니다
성경을 거의 거꾸로 보고 있습니다. 아니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같이 보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바리새인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은 것이고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지만 바리새인과 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실상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바리새인이나 이 시대 기독교인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율법을 지키고 있고 이 시대 기독교인들 역시도 율법을 지키면서 그것으로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똑같이 율법을 지키면서 그것으로 부자가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보고 그대로 육체의 행위로 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 역시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대로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행위에 빠져 있는가 하면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세상의 평화를 주장하면서 도리어 의를 쌓고 있습니다.
위선입니다
그리고 외식이라는 것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아니 성경에서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자기들이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오해를 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깨달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억지로 성경을 풀다가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행위입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행위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행위에 대한 기초를 모르다보니까 문자를 보면 자꾸 행위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행위가 저주를 받게 하고 있지만 사람의 이성에 그것이 좋게 보이니까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을 옳게 생각을 하고 있고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이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성경을 오해를 하면 모든 말씀을 다 행위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다 그렇게 성경이 보이고 그것을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이성입니다 하지만 그 행위로 인하여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진리를 추구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과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습니까? 그러나 이 시대는 전혀 그런 것이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좋은 것이 좋다고 하면서 아니 로마서의 말씀을 보면서 진리를 왜곡하면서까지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고 말씀을 하니까 교회 일치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진리에 반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육체의 생명보다 우리 영의 생명이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이 육체는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그림자지만 영은 우리의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이나 평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저 버리고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평화를 하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 육체적으로 아니 종교적으로 평화를 하라고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평화가 됩니까?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평화가 됩니까?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거든 이라는 강한 긍정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 수 없지만 그럴지라도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평화가 안 됩니다
평화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이상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도모를 하면서 복음을 전하면 어느 누구도 우리와 평화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평화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가 아니라 로마 시대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이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목사들입니다
말로는 무슨 말을 못 합니까? 그리고 이렇게 종교의 자유가 있는 국가에서 무엇을 못 하겠습니까? 그런 행위들을 하면서 자기들이 성경대로 산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내 육체의 생명이 걸려 있는 그 가운데서 정말 육체를 생각하면 할 수 없지만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종교의 자유가 있습니다. 국가의 권력이 강하다 보니까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중동이나 아프리카에 가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니 바로 위에 있는 북한만 해도 종교의 자유가 없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할 수 있다고 하니까 그 문자만 보고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 육체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합니다. 이런 문자를 보고 행위에 빠지면 사망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할 수 없습니다.
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생명이 있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를 원수와 같이 대하고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평화입니다 우리 성도는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도 아시지만 우리에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육체를 생각하면 할 수 없지만 그러나 영의 생명이 있는 성도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였습니다.”
할 수 있거든
복음을 가진 우리는 세상과 원수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복음을 가진 자가 지극히 적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교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와 같이 보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보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인들은 우리와 원수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특히 목회자들은 자기들의 직업입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교인들이 헌금을 해야 먹고 살 수 있고 또 교회도 근사하게 건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가진 우리가 그것을 반대를 하면 원수가 되는 것은 빤한 일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그 행위를 보고 분을 내셨습니다. 성전 앞에서 돈을 바꾸어 주는 자와 비둘기를 파는 자의 상을 엎어 버리실 정도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행위에 분을 내셨습니다. 아니 주님께서 그렇게 상을 엎어버리시자 이스라엘은 주님을 원수와 같이 대해면서 어떻게 하면 주님을 죽일 수 있을까를 생각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원수입니다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는 사람은 우리 성도와 원수가 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행하는 행위를 악이라고 하면 그들은 원수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분명히 옳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모를지라도 우리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참을 전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우리에게 악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아니 때로는 핍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정말 때로는 우리 역시 그들에게 원수와 같이 대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 우리 역시 육체를 가지고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육체를 따라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은 모를지라도 우리에게는 영의 생명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는 성도는 그 생명이 어떤 생명이라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육체로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2:19절을 보겠습니다. (신 330쪽)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기독교를 보면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기독교사를 보면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전쟁이 자기들의 내부 정치를 외부로 넘기기 위한 것임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영의 일을 알았다면 그런 전쟁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교리라고 하는 로마서에서 문자적으로도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십자군 원정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탄생이 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교리가 따른 차이 때문에 교회는 원수가 되었습니다. 천주교와 종교 개혁자들 사이에서 서로 알력이 생기니까 아니 그때는 서로가 옳다고 하면서 교리적 싸움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왜 전쟁을 했습니까?
기독교라는 종교가 생긴 것이 그냥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천주교와 기독교간에 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들이 이 로마서의 말씀만 알았다면 아니 영의 일을 알았다면 그런 종교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인정합니다.
천주교가 계속해서 교회를 장악하고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성경도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래도 우리를 구원하게 하시려고 기독교라는 종교를 통해서 성경을 번역하게 하시고 그들 가운데서 방언의 은사자를 세우셔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한글개역성경이 나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싸웠습니다.
아니 그들은 서로 원수를 친히 갚았습니다. 천주교 뿐 아닙니다. 종교 개혁자들 중에서도 칼뱅과 같은 사람 역시 종교 재판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했는가 하면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니 자기들만이 진리를 전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원수를 친히 갚으면서도 그것을 정당화 했습니다.
절대 안 됩니다.
설령 우리의 수가 많아진다고 해도 안 됩니다 사람들은 종교의 숫자가 많아지면 그것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숫자의 힘을 빌어서 종교재판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설령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 원수와 같이 대한다 해도 우리는 그들을 육적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안 됩니까?
우리는 영의 일을 믿고 있는 성도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입니다
주님께서 강림을 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누구입니까?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오해를 하고 있고 또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거의 문자적으로 보고 있고 너희라고 하니까 우리 신체가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희입니다
그것이 누구입니까? 초대 교회의 육체의 성도들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그들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셨습니다. 그 영을 생각하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는 신체가 아니라 의롭다 하심을 얻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왜 원수를 친히 갚지 말라고 말씀합니까?
바로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너희가 신체가 아니라 영이라는 것을 성도들은 알고 있기 때문에 원수를 친히 갚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영의 일을 알면 육체로 무엇을 한다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육체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강림 하실 때 주 예수 앞에 있는 우리가 누군가 하면 지금 있는 신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영입니다 이 영이 있는 성도는 설령 누군가 우리에게 원수와 같이 대한다 해도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갚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육체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핍박을 받습니다. 우리는 사실 우리 육체로는 원수를 갚을 수 없습니다. 실제 이 세상에는 복음이 있는 자보다는 없는 자가 많기 때문에 그들에 비해서 지극히 적은 숫자인 우리가 원수를 갚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교회가 어느 정도까지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안에는 반드시 반대를 하는 자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원수와 같은 자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원수를 갚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육체로 해결하려고 하는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구약을 보면 마치 육체로 이기는 것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지만 그것은 그림자와 예표를 가르쳐 주기 위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일을 알면 절대로 원수를 친히 갚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을 모르면 반드시 그것을 친히 갚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들의 이성을 따라 원수라고 생각을 하면 이기게 해 달라고 얼마나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아니 어떻게 하든지 이기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그리고 이긴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갚아 주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갚았습니까?
육체로 이기는 것은 자기들이 갚은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갚아 주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육체로 이기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이기면 뭐 합니까?
그의 강림 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서지 못한다면 그는 결국에는 진자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이기는 자가 아니라 그의 강림하실 때 주 예수 앞에 서는 것이 우리의 이김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5:19절을 보겠습니다. (신 291쪽)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은사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다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생각하면서 보시기 바랍니다. 이 은사를 기독교인들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은사를 알아야 지금 이 말씀이 깨달아질 수 있습니다.
성경이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앞에서 은사를 모르니까 뒤에서 하는 말씀을 전혀 모르고 자기들의 이성으로 아주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원수가 되어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고 있는 은사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를 먼저 알면 지금 로마서의 말씀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받은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부탁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은사를 주시고 이 복음을 전하라고 부탁을 하셔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내 의지로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의 은혜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 부탁하신 일을 하는데 있어서 원수가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종교에 빠지면 마치 이것이 자기 일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탁을 받은 자이지 이것이 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까지의 기독교를 보면 성경과 전혀 다르게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나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어느 사람이 나에게 짐을 맡기면서 이것을 자기가 올 때 까지 잘 맡아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사람이 와서 그것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론 가능한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해야 하겠지만 그가 강하다면 우리는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주인이 오면 그것을 사실 대로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짐의 주인이 강한 자면 어떻게 합니까? 설령 내가 빼앗겼다고 해도 그것을 나에게 가서 찾아오라고 하지 않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가 찾아오겠다고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부탁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면 부탁을 받은 자로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짐을 빼앗겼다고 해서 그것을 내가 찾아와야 할 이유까지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짐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주인이고 주인이 강하면 나에게서 짐을 빼앗아간 그 사람에게 가서 다시 찾아 올 것이 분명합니다.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탁을 받은 자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왜 부탁하셨습니까?
우리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이 이기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앞 절에서 할 수 있거든 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와 원수가 되기 때문에 우리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대로 은사를 주시고 이 복음을 전하기를 부탁하셨습니다.
우리는 부탁을 받은 자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부탁을 받은 자가 아니라 자기들의 일과 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일과 부탁을 받은 일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 일이라면 내 생명을 걸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을 걸고 해 보았지만 그 결국이 사망이라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을 해 주셨습니다.
성경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왜 우리에게 부탁을 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부탁을 받은 자는 그에 따르는 책임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부탁한 일에 대해서 원수가 생기면 그것은 부탁한 자가 해결을 하는 것이지 내가 나서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군가 나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로 말미암아 나에게 원수가 생겼습니다. 그러면 그 원수를 내가 갚아야 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나에게 부탁한 사람이 원수를 갚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사자입니다
어떤 은사자인가 하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 은사자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대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설령 이 일을 하면서 원수가 된다고 해도 우리가 스스로 그 원수를 갚을 일이 아닙니다.
누가 갚아야 합니까?
우리에게 부탁하신 분이 갚아야 합니다. 이것이 영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도 그것이 영의 일인지 육체의 일인지를 모르면서 자기들의 이성으로 생각하면서 육체의 일로 원수가 된 사람을 심지어는 자기들이 갚으려고 하고 있고 그 갚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갚아 주셨다고 까지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명기32:35절을 보겠습니다. (구 315쪽)
“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 때에 갚으리로다 그들의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당할 그 일이 속히 임하리로다”
나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너무 앞서 나가다가 스스로 사망의 길로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그것을 구분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내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 일에 대해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자기들과 교리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고 있고 마치 원수와 같이 대하고 자기가 갚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단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을 해서 이 시대는 이단이 아닌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성경적으로 볼 때 모두가 다 이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자기들보다 율법을 더 많이 지킨다 해서 그리고 덜 지킨다 해서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깨달은 것도 하나님께서 은혜대로 역사를 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인생의 지혜로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성경을 보고 복음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15:19절을 보겠습니다. (신 174쪽)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신약은 실체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구약도 모르고 신약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이 우리를 미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세상이 미워하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을 깨닫는 우리를 세상은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의 행사를 악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들의 행사가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입니다 우리가 보면 그들이 행하는 행위를 어떻게 말을 합니까? 역시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들의 행위를 보고 악하다고 하고 있고 그것을 들은 그들은 우리를 원수와 같이 대해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물론 육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에 속한 자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우리 성도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그렇게 말을 하고 행하고 있는가 하면 주님의 말씀과 같이 주님이 가시고 나서 보혜사를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이성입니다
누가 선하고 악합니까? 악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누가 선하게 보이고 있습니까? 당연히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더 선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우리 성도가 볼 때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악 합니다
이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영의 일을 믿고 있고 기독교인들은 육체를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주님이 오셔서 하신 일을 알고 있고 기독교인들은 주님이 하신 일을 모르고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면서 자기들의 이성을 따라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의 것인가 하면 우리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의 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육체적으로 은사를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사를 행하는 것이 내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해서 주님을 대신 해서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악하다고 했습니까?
우리 역시 세상에서 악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셔서 본성을 거스르는 참 감람나무에 접붙이셨습니다. 그 접붙임이 없다면 우리 역시 사람의 본성을 따라 율법을 지키면서 살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이 은혜를 주시고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 그러니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라고 말씀을 하면서 사실 세상에서 이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거든 이라는 말씀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라고 부탁하신 말씀을 하면서 세상이 원수가 되어도 그렇게 받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일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우리는 대신하고 있는 성도입니다 이제 주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누군가 복음을 전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하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고 또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마치 주인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과 같이 생각하니까 중세 시대에 수많은 종교 재판이 있었고 또 종교 개혁을 하면서도 자기들의 교리와 다르면 사람을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가 하면 자기가 누군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왜 종교재판을 합니까?
그리고 왜 사람을 죽입니까? 왜 자기들이 육체로 갚으려고 합니까? 그것은 자기가 청지기인가 아니면 주인인가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 시대도 얼마나 많은 이단의 정죄가 있습니까? 제가 그 이단들이 옳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립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을 아주 싫어합니다. 특히 그들이 자기들의 율법대로 행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비판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 십일조와 주일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교회에서 누군가 십일조와 주일이 율법이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행위가 악하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국가의 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육체적으로는 어떤 위해를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국가의 법보다 종교의 힘이 세진다면 기독교인들이 가만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 역시 이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들의 종교 내에서 판단을 하고 어떤 처벌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입니다
목사가 하는 일에 반대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신천지가 되고 맙니다. 그가 신천지를 한 번도 안 갔어도 목사가 신천지라고 하면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실제 교회 안에서 십일조를 반대하고 목사가 하는 어떤 일을 반대를 하면 분명히 어느 이단을 이야기를 하면서 저가 이단에 미혹이 되었다고 정죄를 하고 교회에서 쫓아 낼 것이 분명합니다.
종교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어느 종교라고 해서 다르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국가의 법이 강해서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자기들의 힘이 강해지면 자기들 스스로 판단을 하고 자기들이 원수라고 생각을 하면 그것을 친히 갚으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