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30-1,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윤주만목사 2025. 6. 11. 06:14

로마서12:14절을 보겠습니다. (256)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은사입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고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지적인 능력이 있다 해도 아니 이 세상에서 지성이라고 부른다 해도 정말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시지 않으면 성경은 한 말씀도 바로 해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복음을 깨달은 후에 실감을 하면서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 로마서의 말씀을 보고 과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아니 성도들의 쓸 것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로마서를 강해를 했다고 하는 그 유명한 신학자들 역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지도 못하는 그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설령 안다고 해도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을 우리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목사들은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무익한 것을 공급하는데 힘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무익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의가 있어야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고 그 의는 우리 성도가 반드시 써야 하는 의라는 것을 구약의 율법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까지의 기독교는 어느 누구도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했던 사람이 없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그들을 대접해야 합니다. 무엇으로 대접을 해야 하는가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주의 만찬을 통해서 대접을 해야 합니다. 그들이 영생을 사모해서 교회에 들어오면 이런 은사를 가지고 있는 성도들은 힘써 그들을 대접해서 그들이 주의 살과 주의 피를 마시게 해야 합니다.

성도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누가 이 복음을 알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 복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지금 우리 그리스도 편지에서 교제를 하고 있는 성도가 몇이나 됩니까?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듣고 있다면 힘쓰지 않아도 할 사람이 하면 됩니다.

그러나 적습니다.

아주 적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 성도님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손님 대접하기를 더욱 힘써야 합니다. 육적으로 힘쓰라는 것이 아니라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본향을 찾고자 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큰일입니까?

그래서 주님께서 그 집 주인의 종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의 종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없다는 말씀입니까?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종이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반문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이 은사를 가지고 손 대접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이 유대교에 빠져 있던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많습니까?

목사가 많이 있습니까? 그런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은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성도에게 쓸 것을 공급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손 대접하기를 힘쓸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힘써야 합니다.

복음이 있는 성도가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이 없는 사람이 이 일에 힘쓰면 그것은 재앙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복음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에 대해서 알고 있는 성도가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은사대로 교회 안에서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고린도후서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힘써야 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의 은혜를 주시고 구원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먼저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주시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적은 성도들에게 이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교제를 하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이 부탁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도들의 쓸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입니다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사도들도 많았고 또 복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때보다 더 형편이 나쁘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손님 대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이 있습니다.

이 세상 기독교인들과는 전혀 다른 성도들입니다 우리가 이 일에 힘쓰지 않으면 복음이 전파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일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고 있다면 그것 또한 손 대접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로마서의 시작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복음에 대해서 먼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어 구원을 받는 그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있는 성도만이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할 수 있고 손님을 대접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축복을 하고, 저주를 하지 마십시오.”

성도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제까지 여러분이 복음을 전해 보아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사람들이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듣는 것은 고사하고 도리어 핍박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선지자가 이스라엘로부터 환영을 받았습니까? 환영을 받은 선지자는 거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도리어 그들을 핍박을 하고 심지어는 죽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을 가진 자의 삶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까지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은사를 말씀을 하면서 129-13절까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그렇게 은사를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성도를 누가 환영을 해 주고 누가 영접을 하겠습니까? 저는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제목이 달려 있습니다. 누군가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이라고 제목을 달아 놓았습니다. 이 제목을 달 정도의 사람이면 그래도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 종교인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제목이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의 생활 규범이 맞습니까?

성경에 자기 생각을 함부로 첨삭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목사들부터가 이 첨삭이 되어 있는 제목을 보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이 제목을 보는 사람이 과연 성경을 바로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첨삭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으로는 사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과는 전혀 다른 제목으로 첨삭을 해 놓고 있고 그것을 보는 사람은 성경을 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이 정말 잘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첨삭으로 인하여 복음을 볼 수 없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도덕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모두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2장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는 이 말씀만 깨달아도 절대로 이런 제목을 첨삭하지 않습니다.

성경만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할 수 있다면 제목을 지우시기 바랍니다. 제목이 있는 성경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제목부터 보게 되고 그러면 성경을 전혀 다르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최소한 12장의 말씀만 바로 알아도 이런 제목을 달지 않을 수 있는데 성경학자라고 하는 그들이 복음도 모르고 편찬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입니다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진리를 누가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늘 말씀을 드리지만 지금 그리스도편지가 알려지지가 않아서 그렇지 만약에 그리스도편지가 기독교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면 아마도 분명히 핍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의 삶입니다.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로부터 핍박을 받게 되는가 하면 비 진리에 속해 있는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도 핍박을 하겠지만 그들보다 교회 안에서 복음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핍박이 더 크다는 것을 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5:9절을 보겠습니다. (282)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사도행전26:11절을 보겠습니다. (233)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핍박

누가 우리 성도들을 핍박을 합니까? 물론 초대 교회에는 로마라는 강대국이 핍박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도를 핍박하는 자는 물론 이 세상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더욱 핍박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사를 보더라도 로마 시대가 끝이 난 이후에는 교회가 성도들을 핍박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는 성도를 핍박하는 일에 앞장을 섰던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을 한 것은 그가 알지 못했을 때의 일입니다

알지 못 했습니다

무엇을 알지 못 했습니까?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던 그 때에 사도 바울은 교회를 핍박을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다 성도를 핍박을 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면 반드시 그 율법으로 핍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핍박하지 않고 있습니까?

성도가 없어서 핍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다니는 교회에 성도가 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악이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그 교회 안에서 얼마나 핍박을 많이 받는가는 굳이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까지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1장까지 계속해서 이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12장에서 은사를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과 복음입니다

교회 안에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많습니까?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까?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 시대를 보더라도 율법을 지키지 않고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는 거의 없습니다. 기독교인이 천만 명인데 불과 100명도 되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핍박을 받는가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다수입니다

그리고 소수입니다 100명이 검은 쥐를 휜 쥐라고 하면 아무리 한 명이 휜 쥐를 휜 쥐라고 해도 듣지를 않습니다. 아니 한 명이 휜 쥐라고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율법의 문제라면 더욱 더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사람의 이성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백번 생각해도 옳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옳고 십일조를 내는 것을 옳고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이 세상에 지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보라고 하면 100명이면 다 그렇게 대답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악한 일이라고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악한 일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이 악 합니다 그것을 악하다고 하는 사람이 30명만 되어도 100명에게 핍박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100명이 아니라 만 명 아니 10만 명 이상이 옳다고 하면 그것을 악하다고 하는 한 명은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핍박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종교의 힘이 세면 죽여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인이 1000만 명입니다.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 명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인이 핍박을 받습니까?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1000만 명이라는 세력이 있는데 어떻게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핍박을 받는다는 의미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1000만 명의 기독교인은 세상에서 핍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야기를 합니까?

자기들이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고 그런 사소한 일을 가지고 간증이라고 하면서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핍박은 불교인도 받고 있고 다른 종교인들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주의에 있을 때 교회를 핍박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교회가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다고 하니까 이 시대 교회가 마치 하나님의 교회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보면 알겠지만 율법을 지키는 예루살렘의 바리새인들도 교회로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도 율법을 지킵니다.

그리고 이 시대 기독교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이 시대 모든 종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기독교 안에 있는 이단이라고 하는 모든 교회도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을 지키는 일이 악하다고 하면 성도는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9-1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대로 행함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하는 일입니다 이 모든 일이 율법을 악으로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

우리 몸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입니다 이 예배를 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들로부터 핍박을 받는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자기가 알지 못했을 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면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 있습니다.

그 악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우리 성도가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우리가 받은 복음을 전하면 칭찬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칭찬합니까? 지금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합니까? 절대로 그런 일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받은 복음을 전하면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핍박을 받는가 하면 원수와 같이 생각을 하고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너무 좋은 시대입니다

예전에는 종교가 국가의 힘보다 더 강했습니다. 지금도 중동의 국가를 보면 종교가 국가의 법을 초월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가 더 강해지면 율법을 지키는 그들은 법대로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법을 지키지 않는 우리 성도는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 율법이 어떻다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국가의 법이 강하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언제라도 종교의 법이 더 강해지면 아니 강해지지 않더라도 율법의 문제로 우리 성도는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되어 있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사도행전에서 보았듯이 사도 바울과 같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행전7:52절을 보겠습니다. (199)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디모데후서3:12절을 보겠습니다. (346)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너희를 핍박하는 자입니다

누구입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핍박을 받는 자가 아니라 도리어 핍박을 하고 있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 우리나라만 보아도 기독교인들이 자기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을 핍박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핍박하는 자입니다

아니 세상의 종교라는 세력으로 뭉쳐 있는 모든 곳은 사실 핍박을 하는 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숫자가 늘고 종교의 권력이 강해지면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핍박을 했습니다. 왜 핍박을 했는가 하면 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따르지 않는 것을 보면 참지를 못하고 핍박을 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사는 자가 누구입니까?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성도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습니까?

반드시 본성에서 찍힘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의 본성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 사람이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고 그가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단 한 가지의 문제로 우리 성도는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에게 핍박을 받는가 하면 먼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미 초대 교회를 지나오면서부터 모두가 율법을 지켜왔기 때문에 핍박을 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서 정말 좋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우리를 핍박하지 않고 있다는 그 사실 만으로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가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 성도들이 너무 적은 숫자이기 때문에 목소리가 들려지지가 않아서 핍박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어떤 모양으로라도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꼭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입니다.

종교가 성도를 핍박하지 않은 시기가 얼마나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서로 교리가 조금만 달라도 다수의 종교에 있는 사람들이 핍박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설령 내 앞에 그런 핍박이 온다고 해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성령이 우리가 견딜 수 있게 인도하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사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것과 예수 안에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는 것으로 마치 예수 안에 사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입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은 두 가지 의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율법의 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 두 가지 의의 싸움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아니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반드시 이 두 가지 의의 싸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수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다수가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이 시대를 보더라도 천만 명이나 된다고 하는 기독교인들 중에서 율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정말 율법을 지키지 않고 악에서 떠나 선해 속해 있는 사람은 지금 우리 성도들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충돌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변론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핍박을 받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저는 굳이 기독교와 충돌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기에는 아직까지 성경을 해석해야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서 충돌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제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충돌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습니다. 이 복음을 글로 남기는 일이 더 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핍박을 피하기 위해서가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누군가 이 시대 복음을 글로 남겨 놓아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터넷입니다

이 시대는 sns를 통해서 수많은 글들이 넘쳐 나오고 있습니다. 정말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같이 많은 물 위에 않은 음녀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에 누군가는 진리를 전해야 하고 또 글로 남겨 놓아야 하나님께서 구원을 하시고자 하는 자가 그 글을 보고 복음을 깨달고 믿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영생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성령을 구하고 진리를 찾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잠시 한 눈을 파는 순간에 우리는 사단에게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단이 우리 인생보다 더 지혜롭고 강하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예수 안에 있기 위해서 믿음에 더욱 굳게 설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선지자를 핍박하지 않았습니까? 어느 시대에 이스라엘이 선지자를 핍박하지 않았습니까? 스데반집사가 순교를 하면서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핍박을 했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성경입니다

역시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을 핍박을 했습니까? 그러면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성도들을 핍박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핍박을 받는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데 순전히 억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을 핍박을 했다고 하면 이 시대 역시 기독교인들이 성도들을 핍박을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늘 세상은 다수가 소수를 핍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믿음이 있는 자는 아주 적은 소수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만 명입니다

그 중에 한 명이 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한명이 어떻게 핍박을 받을 것인가는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사람의 이성을 따라 백번을 생각해도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은데 그것을 악이라고 한다면 굳이 앞서서 핍박을 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저가 핍박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입니다

복음을 가진 자가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칭찬을 받는 자가 아니라 핍박을 받는 자라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하며 핍박이 오더라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지라도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어서 주님이 오시는 날에 하늘의 신령한 모든 복을 받는다고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시편142:6절을 보겠습니다. (906)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 저희는 나보다 강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입니다

다윗의 시입니다 그러나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구속의 일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 인생들이 얼마나 연약한가를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시입니다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 저희는 나보다 강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건져 주셔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사단이 얼마나 강한가를 알아야 하며 그 핍박하는 자는 나를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키려하고 있습니다. 나를 핍박하는 자가 육적으로도 강합니다. 그러나 나를 핍박하는 자를 감동하는 것이 사단이라는 것을 또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단이 얼마나 강합니까?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 전체를 율법주의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감동을 해서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지금 이 시대도 국가와 종교를 만들어서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제가 국가의 법을 지키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누가 법을 가지고 있는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사단입니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성경의 모든 비밀을 알았다 해도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국가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사실 국가가 우리 성도를 핍박하는 일보다는 종교가 되어 있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나보다 강합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의 숫자가 많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사단이 우리에게 지키라고 하는 그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저희는 우리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우리는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율법 그 자체를 우리가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강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모르고 성경을 깨닫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율법주의가 얼마나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거꾸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적입니까?

물론 당시 이방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전쟁에서 이겼는가를 문자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보고 영적인 비유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육적인 모습을 보면서 자기들이 세상에서 조금 어려워지면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 성도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내 육체가 조금 힘이 드는 것을 가지고 이 말씀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인생이 이 세상을 사는 것은 수고와 고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육체의 삶을 보고 저희가 나보다 더 강하다고 하면서 그것을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의 일입니다

우리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성경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누가 강한 자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육체적으로 아주 조금 이기는 그것을 보면서 마치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이긴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핍박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누구를 핍박했는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왜 그렇게 핍박을 받았는가 하면 저희가 강하기 때문에 핍박을 받습니다. 때로 그 핍박이 육체의 생명까지도 빼앗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의 성도입니다

이 영의 일이 믿어지지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핍박을 받지 못 합니다 물론 종교에 세뇌가 되면 핍박을 받기도 하고 자기 생명까지도 바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세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우리가 핍박을 받아야 하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핍박을 받습니까?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에 기독교인이 얼마나 됩니까? 그리고 선진국이라고 하는 거의 모든 나라는 그래도 기독교 국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도리어 핍박을 주는 자의 편에 있지 핍박을 받는 자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