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로마서12:1절을 보겠습니다. (신 256쪽)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하나님께서는 정말 우리를 시편의 말씀과 같이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사람은 율법의 수렁에서 스스로는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교회사를 보더라도 어느 누구도 율법의 행위에서 스스로 빠져 나온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더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입니까?
그 역시도 바리새인으로 살았을 때는 순종치 아니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이었기에 이 복음의 깊이를 알고 나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 어떠하다는 것을 자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기독교인이 천만 명입니다. 세계 전체를 한다면 수십억 명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이 거의 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정말 그 율법주의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찍어 좋은 열매 맺는 감람나무에 접붙이지 않고는 우리는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아니 누가 이 깊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해도 세상 사람의 지혜로는 받아들이지를 못 합니다. 우리가 전할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야 그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성경을 보고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우리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찍어서 좋은 열매를 맺는 감람나무에 접붙이셨습니다. 그 은혜가 이 시대 아주 적은 우리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의 길을 찾겠습니까?
문자적으로는 다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문자적으로는 잘 알고 있는 그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그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알며 지혜가 있다고 스스로 말하는 그들이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사람의 행위로 나타나는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믿어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그의 길을 왜 찾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마음으로 가는 길인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비밀을 모르니까 모두가 거치는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찾지 못 합니다
이제까지 그 유명하다고 하는 신학자들이 그의 길을 찾지 못 했습니다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던 루터입니다. 그 역시도 로마서의 말씀을 보고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에 감동을 받아서 종교개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이 율법을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길을 못 찾았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의 글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야고보서를 보면서 지푸라기복음이라고 하면서 강해를 하지 않았습니다. 야고보서의 행함이 있는 믿음이 무엇을 말씀하는가를 깨달을 수 없어서 지푸라기복음이라고까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우리는 야고보서가 복음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유명하다고 하는 루터도 행함이 있는 믿음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루터의 사상을 따른다고 하면서 루터교회까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루터가 깨닫지 못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루터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그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그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버리고 오직 믿음으로서 의롭다 하심을 받아 구원을 얻는 것이 그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이 길을 찾지 못해서 이 시대 역시 모든 교회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가지를 찍어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여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겠느냐
누가 주의 모사가 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지혜라는 것이 어떠하다는 것을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정말 짐승보다도 못한 그 지혜를 가지고 인격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격이 있습니까?
아니 성경에서 인격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이 시대는 기독교 조직신학에서 배운 그대로 인격을 운운하고 있습니다. 미물보다도 못한 지혜를 가지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고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인격이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자기들의 꽤나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물도 압니다.
자기가 사망의 그물에 걸려 있으면 거기서 어떻게 하든지 빠져 나가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사망의 포승에 묶여 있으면서도 거기서 빠져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물들도 자기가 걸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오직 사람만은 자기가 걸려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성경이 얼마나 깊고 오묘한가를 모르고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이 세상 초등학문에 빠져 정말 유치하게도 초등학생이 아는 정도의 지혜를 가지고 지혜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렸습니까?
그리고 그의 갚으심을 받았습니까? 이 시대는 너무 제사에 빠져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 있고 드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하나님께 드리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교회에다가 주면서 하나님께 드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배가 부르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스라엘보다 더 배가 부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억지로 드리면서 하나님께 받아 달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누구에게 말씀을 들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이 성경과 맞는가 하여 상고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영원한 생명이 걸린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의 생명이 걸렸어도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들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는 맹목적으로 사람을 의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사람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총기를 주시고 그것을 거두어 가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통해서 복음을 들었으면 그것이 성경과 맞는가 하여 늘 성경을 상고를 하면서 자기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늘 확증해 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11장까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 정말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만 보아도 율법에 대한 정의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이제까지 야고보서와 그리고 갈라디아서 강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로마서 강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성경은 모두가 율법에 대해서 우리에게 정확하게 정의를 해 주고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야고보서에서는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갈라디아에서는 다른 복음을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로마서에서는 그것이 사람의 본성이라고 하면서 그것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찍어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성경입니다.
정말 이 성경만 바로 알아도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모르고 있습니다. 눈에 감겨져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복음이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지식을 가지고 깨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식이 있다 해도 그것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찍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라는 종교는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율법주의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제 그 결론을 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권하고 있는가 하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에게 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4:31절을 보겠습니다. (구 268쪽)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은 자비하십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하나님은 가장 자비하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을 들었습니다. 누구의 예표를 들어서 말씀을 했습니까? 욥의 결말을 말씀을 하면서 주의 형제 야고보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하신 일 가운데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담이 범죄를 함으로 해서 죄악의 종자로 태어나서 죄를 지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어떤 죄인인가 하면 율법적으로 볼 때 다 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율법 중에 어느 한 가지도 지키지 못한 일만 달란트 빚진 죄인입니다 그 죄를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다 지고 가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더 이상 사단은 우리를 죄로 죽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보이신 사랑입니다 그 죄를 지고 가시고 우리가 이제 죄와 상관없이 구원을 받게 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신 율법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율법이 있음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고 우리에게 거룩하신 이의 영이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은 율법을 다 지키신 이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태생적으로 율법주의라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는 자비하십니다.
어떻게 자비하신가를 이 시대는 모르고 있습니다. 사전에서 크게 사랑하고 가엽게 여긴다는 그 뜻만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자비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자비에 대해서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죄인에게 주는 가장 자비하신 분이라는 말씀이 아니라 악인에게 주는 가장 자비하신 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십니다.
누구에게 자비하십니까? 욥과 같은 악인에게도 자비하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자비하신가 하면 악인을 사랑하고 가엽게 여기시기 때문에 자비하시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무엇인가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죄인이 있습니다.
그 죄인을 사랑하고 가엽게 여기는 것은 그래도 사랑이 있는 사람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죄인을 사랑하고 가엽게 여기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죄인의 죄를 다 지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악인을 사랑하고 가엽게 여기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악인입니다
세상에서 누가 악인을 사랑하고 가엽게 여길 수 있습니까? 죄인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어도 악인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악인들을 사랑하시고 가엽게 여기심으로 해서 우리가 율법주의에 있다가 긍휼히 여기심으로 말미암아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어 본성을 거스리는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이셨습니다.
신명기입니다
4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악을 행합니다. 그리고 목석의 신들을 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것을 악을 행함으로 해서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 흩어 버리시고 너희의 수가 얼마 남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합니다.
율법을 지킨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율법으로 진노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 멸하시지 않고 다 버리시지 않고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스라엘은 신명기의 말씀과 같이 그대로 행했던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입니다.
죄인을 긍휼히 여기는 것은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이 시대도 교도소에 수감이 되어 있는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을 사랑하고 가엽게 여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십니다.
그 악인을 사랑하시고 가엽게 여겨주셔서 구원을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신명기에서부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악을 행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율법주의에 빠질 것을 아시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방의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이 어떠한 자비하심을 입고 있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악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다 악인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평생을 교회 안에서 악만 행하다가 저주를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 시대도 절대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평생을 교회 안에서 악한 행하다가 저주를 받고 있지만 자기들이 어떤 악을 행하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을 행하는 것이 얼마나 큰 악이라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은 자입니다 그가 얼마나 지독한 율법주의였는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어떠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니 자기가 먼저 자비하심을 입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6:35-36절을 보겠습니다. (신 99쪽)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면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어떻게 입었는가를 알 수 없습니다. 이 시대는 거의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그 문자를 감성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문자를 압니다.
그리고 수사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 지식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이 그 세상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수사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것을 듣고 있는 교인들이 자기 마음에서 감동을 받으면 마치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말 잘하고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수사법을 쓰면 모두가 넘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목사를 합니까?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되고 있고 대학교수들이 신학을 공부를 해서 목사를 하고 있고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사람들이 공부를 해서 목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배운 지식으로 수사법을 사용하고 있고 거기에 모든 교인들이 세뇌를 당하면서 자기들이 성경을 많이 알고 믿음이 있는 것으로 착각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세상 지식으로 말 잘하는 사람들에게 속는 순간 그 영혼은 망하는 길로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목사들이 얼마나 수사법에 능한가를 교인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그런 자들을 교회에 세워 놓고 다수의 대중으로 그를 따르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자비로우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세상 사람은 절대로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자비로우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자입니다
누가 은혜를 모르는 자입니까? 그리고 누가 악한 자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몰라서 악한 일만 행했습니다. 그들이 성막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았다면 악을 행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감겨져 악만 행하고 있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입니다
죄인이 아니라 악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도 예전에는 악만 행하면서 교회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장 자비로우셔서 욥과 같은 율법주의자를 구원해 주신 것과 같이 우리 역시 율법주의에 있었지만 본성을 거스리는 복음을 듣게 하시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입니다.
죄인을 사랑하고 가엽게 여기는 것은 그래도 누군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을 사랑하고 가엽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대적하고 있는 악인들을 사랑하시고 가엽게 여기셔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있습니다.
가엽습니다.
사실 얼마나 가엽습니까? 아무 것도 모르고 자기가 하는 일이 잘한다고 생각하면서 마치 돈키호테와 같이 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악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원수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원수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고 율법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르고 열심을 내고 있는 우리 악한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자기들이 누군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죄인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죄인이 긍휼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죄인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모두가 다 악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인데 자기가 악한 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인정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자비하십니까?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 자비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부터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 모두가 악한 자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어떻게 악한 자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몸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려면 먼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받아야 하는데 그 자비하심을 누구에게 하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은혜를 모르는 자이며 또한 악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일부의 사람이 은혜를 모르고 악한 자라서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렇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왜 악한 자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율법주의입니다
우리 성도라 해도 율법주의에서 찍힘을 받아서 이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복음을 들은 것이 아니라 인생 모두는 다 율법주의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심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를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깊은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을 알고 있는 성도는 내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전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비를 아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지식이 아니라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자비를 하시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과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는 말씀을 알고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 이렇게 하시고 있습니까?
우리 인생 모두에게 하나님은 자비롭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은혜도 모르고 있고 악도 모르고 있다 보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자비하신 분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비하시다는 것을 모르면서도 성경의 문자를 보고 하나님은 가장 자비하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입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은 지혜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 인자로우시다고 말씀을 하면 그가 누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은혜를 모르는 자며 악한 자라는 것을 모르면 하나님은 가장 자비하시다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이 자비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얼마나 악한 자로 살았습니까? 그는 자기가 악한 자로 살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이 악한 자라는 것도 모르면서 성경의 문자를 알고 막연하게 하나님은 자비하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맹목적인 것을 요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반드시 그것에 대한 답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성경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자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은 자비하시다고 하면서 자기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은 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십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자비하시지 않았다면 우리 악인들은 벌써 멸망을 당했어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다 악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첫발을 내 딛는 순간에 그가 하는 행위가 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하나님이 누구에게 자비하신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요한일서3:22-23절을 보겠습니다. (신 391쪽)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우리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을 행하는 자에게 인자로우신 분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교회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장 자비로우셔서 우리를 율법의 수렁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안 됩니다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는 성도는 이제 사도 바울과 같이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본성을 따르는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찍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깨닫고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가장 자비하셔서 욥과 같은 율법주의자의 결말을 좋게 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깊은 지혜와 지식의 부요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서 우리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으로 이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우리 몸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은 성도입니다
어디에 있다가 자비하심을 입었는가 하면 은혜를 모르는 가운데 있었고 또 악을 행하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깊은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으로 우리가 이제 율법의 행위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자비하심을 입었습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도 바울부터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은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은 우리에게 권한다고 하면서 이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입니다
그것으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산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입니까? 이제 더 이상 악을 행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고도 악을 행하고 있다면 그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율법입니다
더 이상 율법을 지키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은 성도입니다 그런 성도가 율법을 지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드립니까?
그것을 사도 요한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가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으면 그가 가진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사도 요한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을 사도 바울은 거룩한 산 제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에는 반드시 율법을 버리는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몸입니다
거룩한 산 제사가 무엇입니까? 율법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거룩한 산 제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거의 모든 교회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모르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런 그들은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지 못하고 아직까지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