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1,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요한복음19:27절을 보겠습니다. (신 182쪽)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성경의 중심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시라서 창조하신 목적대로 이미 하나님 나라를 다 이루셨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을 통해서 믿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분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까지 모든 것을 다 예정을 하시고 그분이 원하시고자 하는 뜻대로 다 이루신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우리 피조물과 같은 육체의 형상을 입고 오셨고 그분을 우리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믿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셨습니다.
왜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우리 인생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깨달을 수 없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은 다 영의 일이기 때문에 육체를 가지고 있는 우리 피조물은 그가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해도 성경을 보고 있지만 창세 전에 있던 주님과 아버지가 가지셨던 영화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이미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듯이 우리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 생명을 주님이 오셔서 이 세상에서 우리 피조물들이 생명을 얻게 하신 일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알고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죽으심으로 해서 우리가 의로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는 종교에 의해서 고소를 당하시고 세상의 가장 강대한 나라인 로마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입니다
당시 세상을 지배를 했던 최강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나라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창조주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시는 일이 이미 태초에 있는 말씀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우리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와 똑같이 고통을 당하십니다. 분명히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우리와 같은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시편22편에서 다윗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이미 시편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주님을 버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멀리하여 돕지 않으셨고 주님이 신음 소리를 듣지 않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대로 창조를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우리가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셔야 하고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시편22편에서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그리고 성취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지자들이 기록을 하고 그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 문자를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깨달음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개들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종교를 만들었고 그들은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대로 행위를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고 그런 그들이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행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겉옷입니다
네 깃으로 나누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속옷을 제비뽑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그 피조물로 오셔서 가지고 계셨던 모든 것이 다 버림을 받아서 로마의 병사들이 가져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이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우리 피조물의 모든 것을 다 버림을 받으심으로 해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사도 요한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겉옷입니다
로마의 병사들이 그것을 네 깃으로 나누어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그 의라도 어떻게 되는가를 십자가를 통해서 그리고 시편의 말씀을 이루심으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입니다.
우리 인생의 의를 재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의는 동록이 슬고 또 도적이 훔쳐 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지만 그 겉옷을 로마의 군병들이 나누어 가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의입니다
제가 주님의 의를 부정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이시라 해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있었던 의는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시편에서도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속옷입니다
수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십자가형은 시편의 말씀과 같이 그 형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옷을 벗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꼭 주님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곁에 있던 강도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피조물들은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에 힘쓰는 것보다는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자기들의 종교 안에서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것을 믿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어떻게 말씀이 응하게 되었는가를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이 세상초등학문으로 보고 있고 피조물이 성경을 보고 그 지식으로 만든 교리를 세우고 그것을 성경보다 더 권위를 가지고 지키고 있는 것이 종교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현대인의 성경을 보겠습니다.
“또 그 제자에게 '보라,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때부터 그 제자가 예수님의 어머니를 자기 집에 모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진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병정들 입장에서 보면 그저 종교에 의해서 고소를 당해서 죽는 사형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23절부터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피조물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하실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그렇게 된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상식적으로도 피조물이 어떻게 창조주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를 원하셨고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예정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버리셨습니다.
실제 이제 뒤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부활을 하시고 나서 그 육체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피조물의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장사 지낸 뒤에 다 사라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피조물이 어떻게 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교리서를 보면 생명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언급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생명을 모르는 그들이 피조물의 육체가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아들이니이다.
주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가르치면서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도 요한에게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도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하시는 말씀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3:33-35절을 보겠습니다. (신 58쪽)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성경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말씀들은 다 실제 있었던 사건이라는 것을 부정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들은 그 당시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보고 문자 그대로 아는 것으로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왜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과 같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이유입니다
다른 것을 위해서 성경을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반드시 이 말씀을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아니 기초로 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있지만 왜 성경을 보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과 종교의 교리서와 그리고 종교인들이 쓴 책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일반 교인들은 그런 책들을 보면서 마치 성경을 보듯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자기가 인간적으로 존경을 하는 사람들이 쓴 책을 볼 때는 성경보다 더 권위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그런 서적들이 인생의 철학으로는 감동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영생을 얻는 데는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9장도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가 문자적으로 보면 그렇게 중요한 말씀이 없는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냥 누구나 지적인 능력이 있으면 성경을 보고 아 이런 일이 있었구나 주님께서 이렇게 십자가를 지셨구나 하고 스쳐 지나가듯이 볼 수밖에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입니다
너무도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서 증거를 해 주고 있지만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에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저 자기들의 교회에 가면 십자가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합니다.
저 역시 부족한 사람입니다. 저는 정말 제가 이렇게까지 복음을 깨닫는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아니 어려서부터 다른 일은 다 하면서 살아도 종교인만은 안 하겠다고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신학교를 가라는 권유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가지 않고 버티다가 30대가 넘어서 가게 되었고 가서도 복음을 어느 정도 안다는 것에 대해서는 기쁘게 생각을 했지만 제가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성령을 받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솔직히 저는 제가 하는 일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것이 그저 세상의 일이라면 마음 편하게 하겠는데 생명이 죽고 사는 일이다보니까 때로는 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게 올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스스로가 경험을 해서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다가 조금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 더 그런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은 우리 성도님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정도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제자입니다
사도 요한이라는 것을 앞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이종사촌이기 때문에 가족의 일원으로서 사도 요한의 어머니와 같이 참석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성경에서 근거를 해서 말씀을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 요한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육체적인 동생들도 있다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후에 복음을 듣고 말씀을 전한 주의 형제 야고보는 주님과 육체적으로 형제입니다. 그러니까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인간적으로 태어난 형제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형제도 있습니다.
물론 정확하게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글들을 보면 6-7남매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 주의 형제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장로로서 일을 했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야고보서를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잘 알고 있지만 형제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한복음7장에서도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에 주님께서 갈릴리에 계시니까 그 형제들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이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라고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 믿지 않았는지 아니면 십자가에 달리시고 난 후에 믿었는지는 정확하게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형제들이기 때문에 비록 육신의 형제들이라고 해도 주님께서 후에 성령을 보내 주셨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형제들입니다
어찌 되었든 주님의 제자로서 살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다니실 때 같이 다님으로 해서 많은 말씀을 들었을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지만 주님께서 그 육신의 형제 그러니까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난 형제들 중에서는 제자를 삼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주의 형제 야고보는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에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그가 교회에서 장로로서 복음을 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입니다
주님께서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천사와 와서 전하여 준 말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그녀가 잉태를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아무리 주님을 육체적으로 낳은 어머니라고 해도 그녀 역시 피조물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비록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어도 그녀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일부 종교에서는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그리고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상을 만들어서 교회에서 오고가는 사람들이 보게 하고 있고 그런 형상을 봄으로 해서 사람들은 마리아가 마치 특별한 존재나 되는 것으로 오해를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십자가를 통해서 지금은 버림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오신 모든 것을 버림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주님께서는 그 육체가 운명하심으로 해서 마리아를 부르고 있고 사도 요한에게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입니다
주님의 제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언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는지는 정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십자가를 지시고 난 후에 주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시고 성령을 보내주실 때 마리아도 그리고 형제들도 같이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삼년 반 동안 함께 다니시면서 유월절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령이 오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는 것과 같이 제자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의미에서 사도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하시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나 요셉이나 그 형제들이나 다 주님과 육체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주님께서 버리신다는 것을 저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제 형제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지만 제자들은 또 다르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네 어머니라고 하시면서 그때부터 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 뜻대로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후에 주님을 믿고 마리아를 모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자 중에서 그리고 이종 사촌인 사도 요한에게 마리아를 네 어머니라고 하시면서 모시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마리아에게도 영생을 얻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는 삶을 산다는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사도 요한이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고 있으면 그가 복음을 전할 때 마리아도 듣게 될 것이고 또 주님께서도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영생을 얻게 하시고 사도 요한은 그 일만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마리아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살게 하기 위해서 네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시고 모시게 하셨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입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가 아닙니다. 2000년 전에 특히 유대교에서 여자를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아도 여자는 수에 계수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영적인 의미가 있지만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실제 여자를 그렇게 대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주님께서 이제 하늘에 올라가시고 난 후에는 사도들이 그렇게 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난 형제들이 있지만 사도 요한에게 부탁을 하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고 사도 요한도 그때부터 자기 집으로 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버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멸시를 받을 정도로 버리심을 받았지만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이 세상에 오셨고 그런 마리아를 주님의 제자인 사도 요한에게 부탁을 하고 모시게 함으로 해서 영생을 얻게 하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되지만 당시 여자의 신분이라는 것을 알면 우리가 충분히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는다고 말을 하니까 주님께서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면적 유대인입니다
우리 성도는 성경을 보면서 이면적 유대인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후에 마리아에게서 낳은 형제들에게도 성령을 보내주시지만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네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말씀을 듣고 사도 요한도 자기 집에 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도 요한에게 먼저 성령을 보내주시기 때문에 네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시고 있고 그래서 사도 요한은 자기 집에 모셨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의 집입니다
우리가 초기 교회를 보면 이렇게 집이 교회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사도 요한에게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물론 제자들이 함께 복음을 전했다는 사도행전의 말씀이 있지만 제자들이 또 따로 있을 때는 각자의 집에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사도 요한이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제 사도 요한에게 성령이 오시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제자에게 네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요한이 마리아를 집에 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9:28절을 보겠습니다. (신 182쪽)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뒤에 예수께서는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아시고, 성경 말씀을 이루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는 유대교인들의 고소에 의해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시고 성경의 말씀대로 그들의 무리에게 에워싸이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감성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 기록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영생을 위해서 기록하게 하셨고 우리는 신약 성경을 보면서 구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주님에 대한 말씀을 깨닫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성도가 되어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자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영생을 얻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피조물들로서는 아무리 보아도 깨달을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먼저 인정을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저 역시 지혜를 구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지만 성경을 푼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매번 느끼고 있습니다.
말씀드립니다.
제가 전할 수 있는 것은 겨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정도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만이라도 우리가 성경에서 복음을 볼 수 있고 믿음으로 역사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은 보면 볼수록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고 때로는 두려운 마음에 그만 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영생에 대해서 이 정도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의 종교인들과 저 역시 다를 수 없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늘 느끼고 있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시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믿어지는 역사가 제 안에서 있다는 것은 놀라운 기적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은 숫자이지만 우리 성도님들이 진리를 듣고 믿음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 역시 이 시대 놀라운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다른 것을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피조물들에게 창조주의 생명을 얻게 하신 일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태초에 있는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일을 우리가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과거가 아닙니다.
이미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과거형의 말씀을 보면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과거형이라는 것이 더 믿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요한계시록에서 환상으로 보여주시면서 이미 다 이루어진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창조주의 말씀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 피조물들이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으니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저 역시 종교에 있을 때는 제 육신에 영혼이 어떻게 결합을 해서 영화에서 보는 것과 같이 그런 형상으로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서 이제는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가 되어서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믿고 있습니다.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리고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아니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제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저 역시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믿어지고 있고 그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되어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참 놀라운 말씀이 이제는 보이고 있습니다.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말씀을 저 역시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에 대해서 이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운명을 하신다고 다음 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있지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고자 하는 목적도 모르고 그저 종교 안에서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들이 사는 세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들이 사는 세상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음으로 해서 다 죽은 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 피조물은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피조물은 어떻게 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피조물이 가진 그 어떤 것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 못 들어갑니까?
전혀 다른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들의 세상은 그것으로 끝이 난다는 것을 요한계시록에서도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일을 다 이루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고 그럼으로 우리 피조물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얻게 하시고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우리는 이 목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나에게 무엇을 얻게 하시는 줄도 모르고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방인들 역시 종교가 되어서 바리새인들이 이야기를 하는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것과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대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미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미 이루신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실제적으로는 성경에서 보는 그대로 2000년 전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이룬 줄을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에서는 예수께서는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아신다고 번역을 하고 있고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예수님은 이제 모든 일이 다 완성된 것을 아시고 라고 번역을 하고 있고 거의 모든 성경이 태초에 있는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2000년 전에 있었던 실제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는 그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그런 사건이 아니라 영적인 많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제까지 말씀을 했고 우리는 그 일이 이미 태초에 있는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을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 사건을 보고 믿는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그저 우리에게 표면적으로 나타내 보여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믿을 수 있게 단지 그때 나타내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실상은 이미 이 모든 말씀들은 태초에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next 2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