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4,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
이사야40:12-17절
“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뇨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
창조,
우리 피조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저 창조라는 인생의 언어를 보는 것으로 이 창조를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의미는 지극히 인생의 철학적 한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봅니다.
저는 이 창조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게 되고 난 후부터는 하나님에 대해서 감히 표현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말씀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창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제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인생의 철학적 한계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할 때는 너무도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인생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차이가 얼마나 큰 가에 대해서는 저 역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감히 표현조차 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그런데 종교입니다
인생들은 종교가 되고 그저 성경을 인생의 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그 단어를 아는 것으로 종교적인 삶에 빠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를 그저 성경에서 보고 아는 것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쉽게 말을 해서 종교의 포승에 묶여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입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일일이 우리에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 아주 조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영생을 얻는 일에서는 그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굳이 일일이 다 말씀을 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영생을 얻는 일에서만 우리 인생의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를 알아야 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왜 창조주이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기초도 모르면서 그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창조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종교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창조라는 기초적인 개념도 모르는 그들이 종교적인 샤머니즘에 빠져 인생의 철학적 한계 내에서 알고 있는 지식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모두가 멸망의 길로 가면서도 그저 종교인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창조입니다
다 이루어진 일을 창조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창조에서 어느 한 경점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니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시고 인생은 창조에서 보면 아주 지극히 짧은 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이사야40장을 인용을 해서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라고 그러니까 주의 말씀은 처음부터 있고 우리는 그 말씀에서 들의 풀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입니다
그러니까 창조를 하시기 전에 이미 주의 말씀은 있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에서 우리 인생이 무엇인가를 사도 베드로가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세토록 있는 말씀에서 우리 인생은 마치 들의 풀의 꽃과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인생이 창조에서 보면 어떤 존재인가를 아주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시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인생에 대해서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창조에서 보면 우리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이 살아가는 팔십년이라는 것이 밤의 한 경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년도 어느 한 경점인데 우리 인생 팔십년은 점으로도 찍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입니다
이런 인생을 너무도 과대 포장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생들은 종교가 되어서 노래를 만들어서 부르고 있고 이제는 기억에서도 거의 사라졌지만 종교인들이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만들어서 부르고 있고 저 역시 종교 안에 있을 때는 그 노래를 불렀습니다.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보실 때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을 들의 풀의 꽃과 같이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생을 사랑하신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모르니까 그저 인생의 철학으로 인생들은 종교가 되어서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 그리고 흙으로 돌아가는 그 인생을 과대포장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인생들이 종교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을 사단은 너무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아주 적절하게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인생을 과대포장을 하고 있고 인생들은 그 종교 안에서 감성에 젖어 종교에 의해서 가스라이팅을 당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창세전에 주님과 아버지가 가졌던 영화를 우리 피조물인 인생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일을 증거를 하고 있고 인생의 철학으로는 성경을 보아도 깨달을 수 없어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1장1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창조를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일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를 이 세상에 오셔서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우리 인생의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인생의 철학으로는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증거를 받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2,“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
이사야40장입니다
우리 인생에 대해서 6절부터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구속의 일을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나는 양의 목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양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오셔서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를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우리 인생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를 하셨습니다.
26절에서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도서12:1절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창조주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왜 우리를 창조를 하셨는가를 이사야40장9-11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창조를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인들은 주님을 창조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인생 예수 그리스도로 그리고 성자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전도서입니다
솔로몬이 우리에게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조주께서 왜 우리를 창조를 하셨는가를 알아야 인생의 본분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고 주님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영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우리 양들을 먹이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데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우리 인생들이 무엇인가를 너무도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창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창조를 하셨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겠느냐고 오직 하나님만이, 창조주만이 이렇게 하실 수 있고 그분이 이 모든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창조를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26절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까?
바닷물을 보고 하늘을 보고 있고 땅을 보고 있습니까? 그것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물론 이 시대는 과학이 발달을 해서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해서 이 지구가 어떻게 조성이 되었는가를 알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우리 인생이 있기까지의 모든 것을 인생으로는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그 가운에서 우리 인생들을 지으신 일을 15절부터 열방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입니다
이 모든 것을 창조를 하시고 여기서 우리 인생들이 있게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전도서에서는 솔로몬이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그러니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야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언어가 있고 지식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자기들이 대단한 존재나 되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인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 15절에서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만들었습니까?
땅의 티끌에서 만들었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티끌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아담이 죄를 짓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그러니까 티끌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티끌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을 창조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셔서 영생을 얻게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입니다
우리 인생에 어디서 나왔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느냐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창조를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티끌입니다
육의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나님께서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티끌에 대해서 다니엘이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창조주를 모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저 인생의 철학에 따르는 종교인으로 사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종교는 인생이 무엇인지를 모르니까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없게 하기 위해서 인생의 가치를 높이는 말을 하고 있고 인생들로 창조주를 기억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종교는 티끌을 보고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13,“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마치 그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자기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지금도 종교 안에서 열심을 내고 있고 자기들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이사야 선지자가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창조된 세상입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그러니까 창조 전에 계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은 창조를 하고 난 후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사야 선지자가 그것을 묻고 있고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자기가 무엇이라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티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에서도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티끌입니다
그런 인생들이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의 모사가 되는 것과 같이 종교 안에서 하나님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자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의 모세가 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저 은혜를 입은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종교인들을 보면 자기들이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4,“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뇨”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이루시는 일을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입니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교만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그들이 자기 존재를 모르고 창조주를 망각을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1: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입니다
그저 세상 책을 읽듯이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정말 놀라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시작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창조주입니다
우리는 창조 후에 있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만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우리는 창조하신 일에서 보면 티끌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도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창조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 정도밖에는 말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믿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들이 지혜와 지식이 있어서 그 일에 도움이 되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1절에서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창조를 하시고 우리를 인도를 하심으로 해서 우리 티끌과 같은 인생들이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5,“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새번역입니다
“그에게는 뭇 나라가, 고작해야, 두레박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 물이나, 저울 위의 티끌과 같을 뿐이다. 섬들도 먼지를 들어 올리듯 가볍게 들어 올리신다.”
열방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민족을 통틀어서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지구 안에 있는 우리 인생들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우리 인생 전체를 그러니까 아담부터 해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의 인생 전체를 하나님이 보실 때는 한 방울의 물과 같고 티끌과 같다는 것을 그리고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입니다
이 우주가 언제까지 있을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앞으로 200억년 정도가 더 있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고 창조에서 보면 우리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방울의 물입니다
그리고 티끌입니다. 또 먼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들이 종교가 되어서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마치 창조주와 같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면서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심으로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티끌과 같은 인생들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고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창조하신 일의 영광이라는 말씀입니다.
16,“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인생들입니다
그들이 종교가 되어 있습니다. 자기 존재를 모르니까 종교가 되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것을 비유로 해서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는데도 인생들은 이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10:8절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창조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을 모르니까 인생들은 종교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번제를 드린다고 하고 있고 그 제사에 열심을 내고 있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번제입니다
제사를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를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도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러한 일들이 다 율법의 행위고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티끌입니다
그리고 먼지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제사를 드린다고 해서 그것을 창조주께서 기뻐하시겠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종교가 되어서 안식일을 그리고 주일을 지킨다고 하면서 그 날에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헌금 십일조를 드린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레바논의 모든 것으로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기뻐하시지 않는가 하면 그것 역시 티끌에 불과하고 먼지에 불과하고 한 방울의 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제사에 열심을 내고 있고 그 티끌을 받으시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지구입니까?
창조주께서는 그저 티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안에 있는 천하만국의 영광을 다 하나님께 드린다 해도 그것은 역시 티끌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종교가 되어 그 티끌을 받으라고 강요를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일을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는 일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대표성입니다
레바논의 짐승들은 이 세상 전체를 가지고 대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헌금이라고 하고 있고 자기들의 소득의 십일조라고 하면서 티끌의 티끌도 되지 않는 그것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면서 스스로의 만족을 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입니다
18절 부터의 말씀을 통해서 우상을 섬기는 일이라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 안에서 하는 티끌들이 하는 행위를 우상을 섬긴다고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종교성이고 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사를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기뻐하시라 하고 있습니다.
17,“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
새번역입니다
“그 앞에서는 모든 민족이 아무것도 아니며, 그에게는 사람이란 전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인생입니다
성경에서 우리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인생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대단하다고 생각을 하지 마사기 바랍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우리 인생은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우리 인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기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앞에서는 모든 민족이 아무것도 아니며, 그에게는 사람이란 전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영광을 아는 성도만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없는 것과 같은 인생들에게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심으로 해서 영생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고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