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진리의 말씀

1089,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윤주만목사 2024. 3. 16. 10:53

 마태복음5:4절을 보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복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리고 종교생활을 하는데 있어서의 복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는 일을 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팔복을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이런 자가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꿩 먹고 알 먹으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실제 성경을 보면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도 많이 말씀을 하고 있어서 마치 그런 것과 같이 보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은 이 세상의 복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는 일을 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너무 문자로만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거의 다 비유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비유라고 하면 부정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복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인생들이 추구를 하고 누리고 싶어 하는 복이라면 초기 교회의 성도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들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복을 받았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 세상에서 물질의 복을 누린 것으로 알고 있고 또 다윗과 솔로몬 왕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입니다 

절대 이 세상에서 복을 누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초기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이방의 종교가 탄생이 되고 난 후에 그 종교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행복입니다 

인생들은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종교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도 이 행복에 대해서는 불과 3-4번 말씀을 하고 있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행복은 인생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행복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삶을 사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늘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까를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쁨을 원합니다

슬퍼하기 보다는 기쁨이 넘치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기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온갖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자기들 스스로 기쁨에 만끽을 하려고 하고 있고 그것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기쁨을 위해서 찬송가만 소리 높여 부르다가 끝나는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습니다

 

천국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대해서 모르니까 이 세상에서 종교 안에서 그것을 나타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 세상에 살면서 천국을 누리려는 것과 같이 이 시대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의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이 되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 성도는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늘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과는 전혀 다르게 생활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믿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고 그리고 그 종교에서 기쁨을 누리려고 하다가 연락에 빠진다는 것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초기 교회입니다 

성도들이 과연 이 시대 종교인들과 같이 그런 육체적인 기쁨을 누렸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르고 마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이 그렇게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소리 높여서 주여 주여 외치면서 기도를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성도들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더라도 그들은 육체적으로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는 세상에서 누리지 못하는 육체의 기쁨과 즐거움을 교회 안에서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을 누리는 것 역시 영의 일입니다 그리고 기뻐하는 일 역시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육체적으로 누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종교는 세상의 즐거움과 기쁨을 교회 안으로 가져와서 자기들만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면서 그것을 마치 영의 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 안에 있는 행위입니다 

그것을 영의 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찬송가를 부르는 것도 내 육체가 하는 일이고 기도를 하는 것도 내 육체로 하고 있고 내 육체가 원하는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예배 역시 내 육체가 종교의 형식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팔복입니다 

그 두 번째 말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가난한 자가 누군가를 지난 시간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스도편지 설교나 강해 말씀에서 이 가난한 자에 대해서는 정말 많은 말씀을 했고 우리 성도들은 이 시대 가난한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는 가난한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성경도 우리에게 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율법에서도 그 의를 그러니까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주님께 꾸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손을 넉넉히 펴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꾸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의가 하나도 없는 가난한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난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부자로부터 핍박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도 개들이 나사로의 헌데를 핥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렇게 가난한 자가 되어야 천국에 저희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애통하다 

슬퍼하다. 라는 뜻도 있습니다. 누가 애통할 수 있습니까? 부자가 애통합니까? 가난한 자가 애통을 합니까? 그것은 말을 하나마나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서 부자도 애통할 일이 있겠지만 그러나 성경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애통합니까

부자는 스스로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가 있는 것으로 알기 때문에 굳이 애통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와 같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가 하나도 없는 사람은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천국을 생각을 하면 애통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저 종교 안에서 감성적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는 것으로 애통하는 자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런 감성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천국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영의 일에 있어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육체의 일에 있어서 애통하는 일이 생겨서 내가 애통하는 것은 지금 주님께서 말씀을 하는 애통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들입니다 

누구나 한 가지쯤은 애통할 만한 일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세월을 살다보면 온갖 일이 다 있고 그 중에서는 자기만의 슬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세상의 일로 애통하는 자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은 영의 일이라는 말씀에 대해서 이해조차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슬퍼했던 일이 있던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인생이라면 누구나 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서4:9절을 보면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찌어다

 

애통하는 자입니다 

누가 애통하는 자입니까? 그저 주님께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하니까 주여 주여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애통을 하는 것이 애통하는 자입니까? 주의 형제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씀입니까

야고보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방에 있는 열두 지파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러니까 앗수르나 바벨론에 의해서 포로로 갔던 사람들이 정착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각자 사는 곳에서 회당을 짓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고 그런 그들에게 사도들에 의해서 복음이 전파가 되었습니다

 

그들입니다 

유대인들은 다 율법주의자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와 잠시 율법에서 벗어난 적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포로에서 살던 사람들은 비록 성전은 없어서 제사를 드릴 수는 없었지만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가 되었고 주의 형제 야고보가 보낸 편지입니다

 

그들에게 말씀합니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들의 삶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성경은 다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모든 성경을 주셨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4:4절을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열두 지파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러니까 이방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주의 형제 야고보가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간음하는 여자입니다 

간음에 대해서는 이미 그리스도편지에서 너무도 많이 말씀을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간음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남의 아내입니다 율법에서 이웃의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간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간음입니다 

그것이 세상과 벗된 것임을 알지 못하느냐고 주의 형제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된 것임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라고 하니까 교회 밖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세상이라고 말씀할 때는 거의 교회 안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국가도 그렇고 모든 종교도 역시 다 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 법을 지키는 것을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는 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는 세상과 벗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간음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내 영적 상태를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의 형제가 지금 세상과 벗된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교회 안에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열두지파입니다 

그러니 이 시대 이방의 종교인들이 이 말씀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유대교인들만 남았고 그들도 이 신약 성경은 안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 성경이 누구에게 하는 말씀인가를 쉽게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간음하는 자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더 이상 말씀할 필요가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이 간음에 대해서는 너무도 많이 말씀을 했고 그것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과 같이 세상의 종교와 같이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간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로마서에서 두 남편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한 남편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또 한 남편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말씀을 하고 있고 음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음부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의 형제 야고보는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자기가 율법을 지키면서도 간음하는 여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그것이 간음하는 여자라고 하면서 그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을 하면서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웃음입니다

그리고 즐거움입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율법을 지키는 사람을 대표로 해서 한 부자로 말씀을 하면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호화로이 연락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는 너희 웃음이라고 그리고 너희 즐거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늘 말씀을 하지만 본성이 율법주의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성경을 보면 무조건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세상에서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역시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는 것을 여러 가지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간음, 음행, 행음 등으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본성이 그렇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그저 애통합니까

성경에서는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성이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고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는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간음을 하면서도 인생들이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에 비유의 말씀으로 세상과 벗된 것이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종교에서와 같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임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 인생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세상과 벗이 되어 간음을 하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과 벗이 되어 간음을 하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잠언4:19절을 보면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인생입니다 

창세기에서 인생에 대해서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노아 홍수전에 창세기5장에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고 난 후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율법주의에 빠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그리고 악입니다 성경에서 얼마나 많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성선설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성악설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전혀 다릅니다

아니 인생들의 생각은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가지고 죄냐 악이냐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대로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선이라고 그리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악이고 죄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삶입니까

성경은 그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유다가 자기 며느리와 관계를 가져 아이를 낳는 것을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와 간음을 하는 것도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말씀들도 다 영적인 의미가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인생들이 가지고 있는 선과 악의 개념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내가 지혜가 있습니까?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이 정의를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다 죄악이 관영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경말씀을 보면서도 자기는 다르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 것이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방에 복음이 전해지면서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도 복음이 전해졌는데 그들이 세상과 간음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야고보서를 보면서도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이방의 종교인들입니다 

 

세상과 간음입니다 

이 세상의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우리가 세상의 것을 좋아하는 것이 죄고 악한 일이 된다면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세상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교회가 세상과 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비유로 해서 세상과 벗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벗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율법을 지키면서도 성경을 보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잠언에서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깨닫지 못합니다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는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다는 말씀입니까? 알지 못한다는 말씀입니까? 이 말씀을 보는 이방인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인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 자기들이 아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됨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말씀을 알았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율법을 지킬 때입니다 

그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웃고 즐거워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세상과 벗된 것이고 하나님과 원수 됨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주의 형제 야고보의 말씀과 같이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입니다 

그저 내가 마음으로 아니 진심으로 애통한다고 해서 애통하는 자입니까? 아니 내 인생의 삶을 생각을 하면서 애통하던 일을 생각을 하면서 애통하는 것이 지금 주님께서 말씀을 하는 애통하는 자가 되어서 저희가 위로를 받는다는 말씀입니까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누가 애통하는 자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세상과 벗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을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악한 일이고 죄를 범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이제 그것으로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성도만이 자기가 전에 지은 죄로 인하여 그러니까 그 율법으로 진노를 받을 것을 알기 때문에 애통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애통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갓난아이가 애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영의 일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갓난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영적인 상태를 알지 못하면 그는 애통을 하고 싶어도 애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잠언에서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6:24-25절을 보면 

그러나 화 있을찐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너희 부요한 자여 

누가 부요한 자입니까? 주님께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율법의 의를 말씀을 하면서 그것이 많으면 부자라고 그리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거지라고 가난한 자라고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너희 부요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에 주의 형제 야고보가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의 이성으로는 어느 누구도 깨달을 수 없어서 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애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부요함을 보고 웃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 있을찐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웃고 즐기는 자들은 그러니까 세상과 같이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반드시 너희가 애통하며 운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의 본성이 율법주의고 성경에서 무엇을 말씀을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세상과 벗이 되어 있으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애통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저 세상에서 인간적인 삶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애통하는 일은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 것으로 내가 애통한다고 하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으로 애통해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어떻게 들어가는지도 모르면서 그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한 부자와 같이 벌써 천국을 얻은 자와 같이 연락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자입니다 

주님에게 청년이 와서 영생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자기가 율법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하면서 스스로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부자는 주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 주셨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재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분복이 있다면 얼마든지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에 비하면 부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화가 있다고 분명하게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애통하는 자입니까

그저 마음이 괴로워서 세상일을 생각하면서 애통하는 자가 주님께서 말씀을 하는 애통하는 자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천국에 가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는데 이제까지 내가 세상과 벗이 되어 간음을 하는 여자가 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성도만이 애통하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입니다 

단 한 가지라도 지키면 그것을 보고 나는 웃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시대 종교 안에 수많은 사람들은 온갖 율법을 지키면서도 유대인들보다 더 많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벗이 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역시 율법의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난한 자가 누군지를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 율법의 행위로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아는 성도만이 주님의 말씀과 같이 애통하는 자가 될 수 있는데도 인생으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21:4절을 보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위로입니다 

자기 곁으로 부른다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위로를 받는 것도 인간적으로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으로 살아가면서는 위로를 받기 보다는 고난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이 위로에 대해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위로입니다 

이 세상에서 받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도 지금 천국복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고난을 받으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입니다 이 믿음이 역사를 하는 성도는 마음에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end

 

마태복음5:4절을 보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복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리고 종교생활을 하는데 있어서의 복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는 일을 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팔복을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이런 자가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꿩 먹고 알 먹으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실제 성경을 보면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도 많이 말씀을 하고 있어서 마치 그런 것과 같이 보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은 이 세상의 복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는 일을 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너무 문자로만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거의 다 비유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비유라고 하면 부정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복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인생들이 추구를 하고 누리고 싶어 하는 복이라면 초기 교회의 성도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들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복을 받았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 세상에서 물질의 복을 누린 것으로 알고 있고 또 다윗과 솔로몬 왕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입니다 

절대 이 세상에서 복을 누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초기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이방의 종교가 탄생이 되고 난 후에 그 종교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행복입니다 

인생들은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종교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도 이 행복에 대해서는 불과 3-4번 말씀을 하고 있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행복은 인생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행복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삶을 사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늘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까를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쁨을 원합니다

슬퍼하기 보다는 기쁨이 넘치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기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온갖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자기들 스스로 기쁨에 만끽을 하려고 하고 있고 그것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기쁨을 위해서 찬송가만 소리 높여 부르다가 끝나는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습니다

 

천국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대해서 모르니까 이 세상에서 종교 안에서 그것을 나타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 세상에 살면서 천국을 누리려는 것과 같이 이 시대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의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이 되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 성도는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늘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과는 전혀 다르게 생활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믿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고 그리고 그 종교에서 기쁨을 누리려고 하다가 연락에 빠진다는 것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초기 교회입니다 

성도들이 과연 이 시대 종교인들과 같이 그런 육체적인 기쁨을 누렸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르고 마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이 그렇게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소리 높여서 주여 주여 외치면서 기도를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성도들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더라도 그들은 육체적으로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는 세상에서 누리지 못하는 육체의 기쁨과 즐거움을 교회 안에서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을 누리는 것 역시 영의 일입니다 그리고 기뻐하는 일 역시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육체적으로 누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종교는 세상의 즐거움과 기쁨을 교회 안으로 가져와서 자기들만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면서 그것을 마치 영의 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 안에 있는 행위입니다 

그것을 영의 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찬송가를 부르는 것도 내 육체가 하는 일이고 기도를 하는 것도 내 육체로 하고 있고 내 육체가 원하는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예배 역시 내 육체가 종교의 형식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팔복입니다 

그 두 번째 말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가난한 자가 누군가를 지난 시간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스도편지 설교나 강해 말씀에서 이 가난한 자에 대해서는 정말 많은 말씀을 했고 우리 성도들은 이 시대 가난한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는 가난한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성경도 우리에게 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율법에서도 그 의를 그러니까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주님께 꾸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손을 넉넉히 펴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꾸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의가 하나도 없는 가난한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난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부자로부터 핍박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도 개들이 나사로의 헌데를 핥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렇게 가난한 자가 되어야 천국에 저희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애통하다 

슬퍼하다. 라는 뜻도 있습니다. 누가 애통할 수 있습니까? 부자가 애통합니까? 가난한 자가 애통을 합니까? 그것은 말을 하나마나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서 부자도 애통할 일이 있겠지만 그러나 성경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애통합니까

부자는 스스로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가 있는 것으로 알기 때문에 굳이 애통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와 같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가 하나도 없는 사람은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천국을 생각을 하면 애통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저 종교 안에서 감성적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는 것으로 애통하는 자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런 감성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천국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영의 일에 있어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육체의 일에 있어서 애통하는 일이 생겨서 내가 애통하는 것은 지금 주님께서 말씀을 하는 애통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들입니다 

누구나 한 가지쯤은 애통할 만한 일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세월을 살다보면 온갖 일이 다 있고 그 중에서는 자기만의 슬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세상의 일로 애통하는 자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은 영의 일이라는 말씀에 대해서 이해조차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슬퍼했던 일이 있던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인생이라면 누구나 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서4:9절을 보면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찌어다

 

애통하는 자입니다 

누가 애통하는 자입니까? 그저 주님께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하니까 주여 주여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애통을 하는 것이 애통하는 자입니까? 주의 형제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씀입니까

야고보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방에 있는 열두 지파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러니까 앗수르나 바벨론에 의해서 포로로 갔던 사람들이 정착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각자 사는 곳에서 회당을 짓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고 그런 그들에게 사도들에 의해서 복음이 전파가 되었습니다

 

그들입니다 

유대인들은 다 율법주의자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와 잠시 율법에서 벗어난 적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포로에서 살던 사람들은 비록 성전은 없어서 제사를 드릴 수는 없었지만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가 되었고 주의 형제 야고보가 보낸 편지입니다

 

그들에게 말씀합니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들의 삶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성경은 다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모든 성경을 주셨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4:4절을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열두 지파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러니까 이방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주의 형제 야고보가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간음하는 여자입니다 

간음에 대해서는 이미 그리스도편지에서 너무도 많이 말씀을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간음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남의 아내입니다 율법에서 이웃의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간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간음입니다 

그것이 세상과 벗된 것임을 알지 못하느냐고 주의 형제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된 것임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라고 하니까 교회 밖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세상이라고 말씀할 때는 거의 교회 안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국가도 그렇고 모든 종교도 역시 다 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 법을 지키는 것을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는 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는 세상과 벗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간음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내 영적 상태를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의 형제가 지금 세상과 벗된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교회 안에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열두지파입니다 

그러니 이 시대 이방의 종교인들이 이 말씀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유대교인들만 남았고 그들도 이 신약 성경은 안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 성경이 누구에게 하는 말씀인가를 쉽게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간음하는 자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더 이상 말씀할 필요가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이 간음에 대해서는 너무도 많이 말씀을 했고 그것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과 같이 세상의 종교와 같이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간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로마서에서 두 남편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한 남편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또 한 남편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말씀을 하고 있고 음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음부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의 형제 야고보는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자기가 율법을 지키면서도 간음하는 여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그것이 간음하는 여자라고 하면서 그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을 하면서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웃음입니다

그리고 즐거움입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율법을 지키는 사람을 대표로 해서 한 부자로 말씀을 하면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호화로이 연락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는 너희 웃음이라고 그리고 너희 즐거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늘 말씀을 하지만 본성이 율법주의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성경을 보면 무조건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세상에서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역시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는 것을 여러 가지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간음, 음행, 행음 등으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본성이 그렇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그저 애통합니까

성경에서는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성이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고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는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간음을 하면서도 인생들이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에 비유의 말씀으로 세상과 벗된 것이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종교에서와 같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임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 인생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세상과 벗이 되어 간음을 하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과 벗이 되어 간음을 하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잠언4:19절을 보면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인생입니다 

창세기에서 인생에 대해서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노아 홍수전에 창세기5장에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고 난 후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율법주의에 빠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그리고 악입니다 성경에서 얼마나 많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성선설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성악설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전혀 다릅니다

아니 인생들의 생각은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가지고 죄냐 악이냐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대로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선이라고 그리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악이고 죄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삶입니까

성경은 그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유다가 자기 며느리와 관계를 가져 아이를 낳는 것을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와 간음을 하는 것도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말씀들도 다 영적인 의미가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인생들이 가지고 있는 선과 악의 개념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내가 지혜가 있습니까?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이 정의를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다 죄악이 관영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경말씀을 보면서도 자기는 다르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 것이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방에 복음이 전해지면서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도 복음이 전해졌는데 그들이 세상과 간음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야고보서를 보면서도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이방의 종교인들입니다 

 

세상과 간음입니다 

이 세상의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우리가 세상의 것을 좋아하는 것이 죄고 악한 일이 된다면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세상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교회가 세상과 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비유로 해서 세상과 벗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벗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율법을 지키면서도 성경을 보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잠언에서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깨닫지 못합니다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는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다는 말씀입니까? 알지 못한다는 말씀입니까? 이 말씀을 보는 이방인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인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 자기들이 아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됨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말씀을 알았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율법을 지킬 때입니다 

그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웃고 즐거워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세상과 벗된 것이고 하나님과 원수 됨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주의 형제 야고보의 말씀과 같이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입니다 

그저 내가 마음으로 아니 진심으로 애통한다고 해서 애통하는 자입니까? 아니 내 인생의 삶을 생각을 하면서 애통하던 일을 생각을 하면서 애통하는 것이 지금 주님께서 말씀을 하는 애통하는 자가 되어서 저희가 위로를 받는다는 말씀입니까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누가 애통하는 자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세상과 벗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을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악한 일이고 죄를 범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이제 그것으로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성도만이 자기가 전에 지은 죄로 인하여 그러니까 그 율법으로 진노를 받을 것을 알기 때문에 애통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애통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갓난아이가 애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영의 일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갓난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영적인 상태를 알지 못하면 그는 애통을 하고 싶어도 애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잠언에서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6:24-25절을 보면 

그러나 화 있을찐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너희 부요한 자여 

누가 부요한 자입니까? 주님께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율법의 의를 말씀을 하면서 그것이 많으면 부자라고 그리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거지라고 가난한 자라고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너희 부요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에 주의 형제 야고보가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의 이성으로는 어느 누구도 깨달을 수 없어서 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애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부요함을 보고 웃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 있을찐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웃고 즐기는 자들은 그러니까 세상과 같이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반드시 너희가 애통하며 운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의 본성이 율법주의고 성경에서 무엇을 말씀을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세상과 벗이 되어 있으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애통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저 세상에서 인간적인 삶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애통하는 일은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 것으로 내가 애통한다고 하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으로 애통해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어떻게 들어가는지도 모르면서 그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한 부자와 같이 벌써 천국을 얻은 자와 같이 연락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자입니다 

주님에게 청년이 와서 영생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자기가 율법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하면서 스스로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부자는 주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 주셨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재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분복이 있다면 얼마든지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에 비하면 부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화가 있다고 분명하게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애통하는 자입니까

그저 마음이 괴로워서 세상일을 생각하면서 애통하는 자가 주님께서 말씀을 하는 애통하는 자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천국에 가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는데 이제까지 내가 세상과 벗이 되어 간음을 하는 여자가 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성도만이 애통하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입니다 

단 한 가지라도 지키면 그것을 보고 나는 웃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시대 종교 안에 수많은 사람들은 온갖 율법을 지키면서도 유대인들보다 더 많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벗이 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역시 율법의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난한 자가 누군지를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 율법의 행위로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아는 성도만이 주님의 말씀과 같이 애통하는 자가 될 수 있는데도 인생으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21:4절을 보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위로입니다 

자기 곁으로 부른다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위로를 받는 것도 인간적으로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으로 살아가면서는 위로를 받기 보다는 고난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이 위로에 대해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위로입니다 

이 세상에서 받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도 지금 천국복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고난을 받으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입니다 이 믿음이 역사를 하는 성도는 마음에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