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요한복음8:23절을 보겠습니다. (신 159쪽)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유대인들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고 말씀을 하니까 유대인들이 주님의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를 못하고 가로되 저가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저가 자결하려는가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 주님의 말씀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요한복음8장을 보고 이방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왜 유대인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그들은 알고 있습니까?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도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이방인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8장12절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연결입니다
지금 이 생명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생명의 빛을 얻는 일을 모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생명의 빛을 얻지 못하는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동문서답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입니다.
13장까지는 계속해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장을 시작하면서부터 사도 요한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를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입니다
제가 생명에 대해서 말씀할 때마다 인생들은 그저 언어를 아는 것으로 life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물론 단어는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저 역시 부정을 하지 않지만 그러나 예수의 생명에 대해서,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우리 인생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서 인생들이 알고 있는 생명이라는 단어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면 유대인들과 같이 동문서답을 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8장에서 이미 충분히 말씀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동문서답을 하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방인들이 이 말씀을 알고 있습니까? 그들은 어떻게 말을 하고 있습니까?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서 주님이 계신 곳에 가지도 못하고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어서 주님이 계신 곳에 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합니다.
이 성경을 보고 초등학생도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 신학박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생명을 얻지 못한 유대인들을 대표로 해서 우리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나의 가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앞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생명의 빛을 어떻게 얻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어두움에 다니지 않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에게 어두움에 다니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의 종교인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어두움에 다니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자기들의 종교 안에서 유대인들과는 다르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생명의 빛을 얻었다고 하면서 주님께서 가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빛입니다
그가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표면적으로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다 인생들의 철학이고 종교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생명의 빛을 얻지 못한다면 그는 주님께서 가시는 곳에 오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생명의 빛을 얻는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종교에 빠져 어두움의 일을 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어두움의 일이 인생들이 생각할 때는 종교에서 하는 옳은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도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이 옳기 때문에 주님을 대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너희입니다
우리 인생 전체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만 너희가 아니라 우리 인생은 주님께서 가신 곳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이제까지 주님께서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이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고 자기들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면서 종교에 빠져 어두움의 일을 하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생명이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제 14장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빛을 얻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만 입니까?
그 말씀이 아니라 인생 전체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자기들의 철학으로 생각을 하면서 그 신체가 부활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성경을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 보고 있습니다.
다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무도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8장에서 하신 말씀을 제자들에게 다시 상기를 시키고 있는 말씀입니다. 인생들이 알고 있는 철학적 지식은 소자의 생각과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니까 생명의 빛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있고 점점 더 종교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너희는 아래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위에서 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인생들에게는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왜 나 있는 곳에 오지 못합니까?
우리는 아래서 났고 이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가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마치 유대인들에게만 하는 말씀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인생 전체에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위에서 났습니까?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까? 정말 이상하게 성경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위에서 난 사람이 없고 그러면 주님이 계신 곳에 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으로는 안 되니까 예수의 생명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도 요한은 시작하면서 우리 성도가 예수의 생명을 얻는 일을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거듭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나야 합니다.
우리 인생으로는 안 됩니다. 그 일을 위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위에서 난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이 영의 일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고 증거를 받지 못하니까 믿음으로 역사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인생 전체를 대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요한복음을 유대인들은 아예 안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방의 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이 성경을 보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하신 것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나 있는 곳입니다.
유대인만 주님이 계신 곳에 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은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거룩한 생명을 얻게 하는 구속의 일을 이루셨지만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위에서 나는 일을 모르니까 유대인들과 같이 종교가 되어서 어두움의 일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자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 진토는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거듭나라고, 두 번 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바리새인들과 같은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부활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3:34절을 보겠습니다. (신 172쪽)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천지는 그림자와 모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과학에서도 가상현실 세계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직까지는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나 거의 정설화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너무도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인생에 대해서 인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왜 주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성경을 신뢰를 하고 있고 성경말씀에 대해서 그 의미를 깨닫고자 지혜를 구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성경을 주셨는지도 모르면서 성경을 본다고 하고 있습니다.
기본입니다.
우리는 기초가 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마태복음에서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 지혜롭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반석 위에 집을 짓지 않으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기초를 알아야 합니다.
종교에서 말을 하고 있는 교리가 아닙니다. 그들은 사람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사람들이 자기 지식으로 교리를 만든 종교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 우리는 모든 영의 일을 성경에서 기초를 세워야 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성경을 왜 봅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경을 왜 우리에게 주셨겠습니까? 그러나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성경을 너무 폄하를 하고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공부를 더 많이 한 사람일수록 성경을 무시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계속 말씀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있는 말씀만 가지고 나누어야 합니다. 성경에 없는 말씀을 자기가 감동을 받아서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그 자체가 성경을 무시를 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는 태동 자체가 당시 헬라 사상에 의해서 지식인들이 이 세상초등학문으로 성경을 보고 교리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 마지막에서 뭐라고 말씀을 합니까?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를 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전혀 두려움이 없습니다. 성경의 권위가 그만큼 추락을 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보고도 이 책에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이 시대 종교인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로 예정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은 자가 있어야 하고 그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모든 구속의 일을 다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가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도 생명을 얻을 수 없고 하나님 나라는 거짓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너무도 중요한데 이 시대는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을 그저 감성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반드시 우리는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체가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생명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주님과 같이 부활을 해서 하나님을 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하셨습니다. 그 나라를 이루시려면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을 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을 합니다.
이제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창조주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모든 일을 이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문자적으로 이것을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피조물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이성적 지혜가 있는 것으로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자기들 스스로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고 심지어는 하나님과 함께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는 교리까지 만들어서 믿는다고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구더기가 되어서 구더기를 우리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비교도 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주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창조주의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은 그런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신 이 처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고 세상 모든 종교에서 말을 하고 있는 신체의 구원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 성도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냥 말로 하니까 그것이 아무런 감각이 없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그 자체가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의 숫자가 20억 명이 넘습니다. 그러다보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고 당연하게 일상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아니 믿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피조물들을 사랑하시지 않았다면 아예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도 계실 수 있는 분이고 천천의 천사가 있고 만만의 천사가 영광을 돌리고 있고 하나님 곁에 있는 생물들에 대해서도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가 무엇입니까? 정말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까? 더구나 자기 땅에 오셨는데 그들은 영접을 하지 않고 도리어 시편의 말씀과 같이 나의 대적이 너무도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신 그 자체가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그 사랑을 받는 것을 거절을 하고 스스로가 구원을 받겠다고 하고 있고 알량한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굳이 더 이상 말씀을 하지 않아도 이제는 우리가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안다고 하는 그 사랑이 마치 청동거울을 보는 것과 같이 희미하지만 그것은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는 한계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피조물이면 피조물답게 행동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인들을 보면 자기들이 피조물이라는 것을 전혀 인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 수많은 악을 행하면서도 감각이 없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을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인생은 원 돌감람나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찍어 본성을 거스리는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구원을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있어서 생명을 얻는데 우리가 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까지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받게 하고 있고 그 생명을 얻는 믿음을 주시고 있습니다.
요한일서4:7절을 보겠습니다. (신 392쪽)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새 계명입니다
이제까지 사람들은 율법을 보고 그것을 계명으로 삼아서 자기 육체로 지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는 율법의 의를 주님께 꾸면 손을 펴서 넉넉히 주라고 율법에 정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이제까지 종교를 보면 이 사랑에 대해서도 너무 무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을 하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 육체로 사랑을 하는 것을 보면서 서로 사랑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고린도전서13장입니다
내가 네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네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네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보고도 사람들은 또 오해를 해서 자기들이 진심으로 사랑으로 한다고 하면서 자기 육체로 사랑을 하는 것을 인생의 이성으로 진심으로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기초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을 이제까지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 주님이 오셔서 이루신 모든 구속의 일을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이렇게 영생을 얻게 한 일이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을 하셨는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우리도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사랑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서로 사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사랑하는 자에게 생명을 얻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을 얻는 자만이 서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자입니다.
그가 사랑을 할 수 있습니까? 바리새인들이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사랑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와 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싶어도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방인들도 종교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그들이 서로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입니다.
외식을 하는 행위입니다. 그 행위를 보고 서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그런 사랑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생명을 얻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을 해서 생명을 얻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왜 창조하셨는가 하면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창조를 하셨습니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게 하신 일이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고 가난한 자를 도우라고 말씀을 하니까 긴 옷을 입고 구걸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의를 드러내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긴 옷에 구멍을 내고 지나가면서 동전을 떨어뜨리고 그것을 가난한 자들이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까?
인간적인 사랑은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간의 사랑을 말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사랑을 아무리 많이 하면 뭐합니까?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자기 몸을 불사를 정도로 내어 주면 뭐 합니까? 그렇게 사랑을 한 사람이 생명을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제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이제까지 생명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을 보내면서 새 계명을 주신다고 말씀을 하면서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사랑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라기서에서도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육체를 보고 언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면서 에서가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사랑입니다.
제가 그것을 무조건 반대를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랑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내가 사랑을 한다고 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런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하려면 반드시 내 안에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어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이 없는 자는 사랑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이루시는 것을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율법적으로 그리고 외식으로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 행위를 하고 있고 그것이 도리어 자기의 의가 되어서 악한 일이 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요한일서에서도 이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누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다.
반드시 주님의 말씀과 같이 거듭난 생명이 있는 성도만이 사랑을 한다는 것을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사랑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자는 자기가 어떠한 사랑을 받았는지도 모르고 있고 사랑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을 모르면서 이 세상 종교적인 행위로 사랑을 나타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내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알지도 못하고 있고 자기들의 종교에서 만든 교리를 따라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그 신체로 서로 사랑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입니다.
사도 요한이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은 하나님께 로서 어떻게 낳는지도 모르는 그들이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 교회마다 플래카드를 걸어 놓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럼으로 해서 그들은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주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시고 성령을 보내주시자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복음을 위해서 살았다는 것을 우리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3:35절을 보겠습니다. (신 172쪽)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인생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 이성적 생각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이지만 우리 인생이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하고 실상은 아직 우리가 보고 있지는 못하지만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가 부활을 하는 날에 본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사람입니다.
참 이런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정욕, 욕심과 육체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죽은 자입니다.
주님께서도 제자에게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죽은 자가 사랑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이제 십자가를 지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어떻게 사랑을 하셨는가를 우리 성도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 시대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을 얻는 자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게 하신 것이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사랑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인간적으로 사랑을 하는 것으로 마치 주님의 제자가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도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가 죽었다면 그것은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제자들에게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는 이 시대 복음을 아는 자로서 정말 이 생명에 대해서 할 수 있다면 전하는 것이 성도의 삶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빵 하나 더 주고 떡 하나 더 주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을 가지고 사랑을 한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도 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종교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마음이 선한 사람은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입니다
그들은 이 사랑도 거의 외식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차라리 다른 종교에 있는 사람들이 그래도 진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과 같이 외식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육체적으로 사랑을 하라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철학으로 알고 있는 것을 다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이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은 자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고 우리에게 그것을 부탁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도 인간이고 혈과 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 혈과 정 때문에 제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이 생명에 대해서 전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을 해서 이 생명에 아는 자가 얼마나 적습니까?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더라도 종교는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은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사실 이 생명에 대해서 전해서 내 가족이 내 이웃이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일은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세상의 것으로 인하여 내 형제가 내 가족이 영생을 얻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생명에 대해서 전함으로 해서 주님의 제자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제자가 누군가 하면 우리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남은 자인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생명을 얻게 하신 우리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단 한 가지 부탁의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 사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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