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요한복음13:14절을 보겠습니다. (신 170쪽)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저녁을 드시고 난 후에 이제 십자가를 지실 것을 아시고 계십니다. 이제 바로 뒤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가룟 유다에게 마귀가 벌써 예수를 팔 생각을 넣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가룟 유다는 주님을 대제사장들에게 은 삼십을 받고 팔아서 주님께서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성경대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운명하십니다.
그 저녁입니다.
다른 성경은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먹이는 것을 기념을 해서 떡을 떼어주시면서 이것은 생명을 위한 내 살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잔을 주시면서 언약의 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제자들이 유월절을 다 먹은 것을 주님께서 보여주시면서 우리에게도 이것을 행하여 기념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선생으로 오셨습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는 선지자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유대인이 있는 대중 가운데서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특히 사도 요한은 이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거의 직접 기록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을 시편에서는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해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영의 일을 우리 인생들이 알 수 없으니까 선생으로서 재자들에게 이 영의 일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령을 받지 않은 제자들은 그저 주님의 말씀만 듣고 있지 깨닫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지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선지자의 말씀을 전혀 듣지를 않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피조물과 같은 육신을 입고 오셔서 구약은 거의 비유의 말씀이라면 이제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영의 생명에 대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복된 좋은 소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복된 좋은 소식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선생이 되셔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후에 제자들이 그 일을 할 것을 아시고 아름다운 발을 일일이 씻겨 주셨습니다.
발을 씻겨 주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의 생명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창조주의 생명을 얻게 하시는 일을 이루시는 구원의 주로서 모든 일을 이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입니다
시편에서는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라고 말씀을 하면서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구원을 바라는 성도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을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 역시 이런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종일입니다.
영생을 위해서 주를 바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우리 성도님들이 이 세상에서 육체를 입고 살아가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육체를 입고 있는 이상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는 일이 어떠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이런 마음입니다.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라고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치열하게 삶의 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때에 이질감을 느낄 수 있는 말씀이지만 우리 성도는 시편의 말씀과 같이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는 것을 알고 믿는다면 충분히 이렇게 살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세상사는 것입니까?
그대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조금 잘 살면 감사한 것이고 조금 못 산다고 해도 우리가 보는 것은 다 헛것이고 그림자라는 것을 생각을 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도 이 시대는 잠잘 곳이 있고 세끼 먹을 수 있고 입을 옷이 있지 않습니까?
욕심입니다.
헛것을 더 바란다는 것은 탐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인생이기 때문에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인간적으로 바라는 마음까지는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는 것은 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더구나 다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는 성경말씀을 보고도 그렇게 한다는 것은 믿음과 연결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명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까? 그래서 이 시대 우리가 주님이 오신 목적대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믿음으로 해서 얻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이 요한복음을 보면서 다시 말씀을 하지만 주님께서 직접 제 얼굴을 보고 하시는 말씀과 같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치열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인 영생을 얻기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는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혈과 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주님의 말씀과 같이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영생을 얻는 것을 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로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그저 교회 안에서 아들을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아들을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입니다.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알아야 하고 우리를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믿을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이지 알지 못하고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알고도 믿지를 못하고 어두움에 거하고 있다면 그는 더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듣고도 어두움에 거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렇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서 너희 발을 씻겨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말씀 그대로 구약에 예언이 되어 있는 그대로 제자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제자들을 구원해 주시는 주와 그리고 영의 일을 가르쳐 주는 선생으로 발을 씻겨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주님이 어떻게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는가를 이 시대는 전혀 모르고 있고 사도 요한이 주님의 말씀을 성경에 문자로 기록을 한 것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주님께서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고 말씀을 하니까 이것을 종교는 의식화해서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의미를 모릅니다.
그런 그들이 행위로 만들어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종교라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우리가 종교가 되어서는 안 되는가 하면 종교는 이렇게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것을 인생의 이성으로 보고 의식화를 만들어서 행위로 하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죄악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깨달을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의 말씀과 같이 주의 진리로 지도하시고 교훈을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주라는 말씀은 시편의 말씀과 같이 내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이며 이렇게 주님께서 구원을 해 주시는 것을 성도들은 종일 주를 바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8절을 보겠습니다. (신 187쪽)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양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는 일을, 구원을 얻게 하시는 일을 구약에서는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말씀에서 증거를 하고 있고 우리는 그 말씀을 보고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그 모든 일을 다 이루신 것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해서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믿는다고 시인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행위로는 부인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행위로 부인을 하고 있는가 하면 주님께서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을 하면서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어두움에 거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어두움에 거하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사도 바울이 그들이 말로는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가증한 자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로만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 하면 어두움에 다님으로 해서 그러니까 성전에서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보고 주님께서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합니다.
이 어두움에 대해서 빛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악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죄악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많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보고 있고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생각입니다.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데 있어서는 체질적으로 뛰어납니다. 성경을 보지도 않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지도 않은 그들에게 자기 자녀도 아닌 그들에게 무엇 하러 그런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우리 인생도 남의 자식이 무엇을 하든지 상관을 하지 않은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부지런히 보내셨습니다. 그 선지자를 누구에게 보내셨습니까? 이방의 어떤 나라에 뜬금없이 보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에게 보내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성경을 보면서 마치 이방에 어떤 나라에 보낸 것과 같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이스라엘은 우리 이방인을 위한 예표와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방인들 역시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잘못하는 것을 보고 그 일을 그들의 일로만 치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경을 아무리 보면 무엇 하겠습니까?
성경입니다.
거의 모든 말씀은 비유와 예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우리 인생들에게 약속을 하신 것이 바로 이 생명입니다. 그런데 이 영의 생명은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우리 인생의 언어로는 표현 할 수 없고 그리고 설령 한다고 해도 인생들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다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이스라엘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지킬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입니다. 분명히 히브리서를 통해서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 역시 로마서에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1장입니다.
얼마나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빌립과 나다나엘이 모세의 율법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그 이를 우리가 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이방인들 역시 성전이 없으니까 자기들의 이성으로 율법을 구별을 해서 제사법이라고 하고 있고 시민법이라고 하고 있고 도덕법이라고 하면서 제사법과 시민법이 폐하여졌고 도덕법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는 그들이 그대로 하고 있습니까? 십일조를 드리고 있고 제사법이라고 할 수 있는 각종 절기를 지키고 있고 성경에도 없는 절기를 자기들의 열심으로 만들어서 교회 안에서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어서 그렇게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하는데도 사람들은 그 안에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데도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이 세상에도 자기가 아는 사람이 말을 하는 것과 행동을 하는 것이 다르면 가식적이라고 하면서 상대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상하게도 종교에만 들어가면 이성을 상실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도덕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들은 문자적으로도 도덕법을 지킨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했지만 내 부모를 공경하라는 그 말씀에 기준을 어떻게 잡을 것입니까? 그저 자기가 공경을 했다고 하면 자기 이성의 생각에 따라 공경을 했으면 십계명을 지킨 것이 된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고 자기 생각대로 살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는 그들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행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기준이 자기들의 생각에서 나오고 있다면 무엇 하러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을 믿는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을 하는 그대로 우리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믿을 수 있는 것이지 말 따로 행동 따로 하면서 어떻게 믿는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홀로 한분이신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시고 예정을 하신 그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모든 일을 이루셨고 우리가 그 일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해서 창조주의 생명을 얻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십니다. 하늘에 올라 가셨다는 말씀은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더 이상 주님을 우리 인생들은 볼 수 없고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희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주신 주로 그리고 이 영의 생명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는 선생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씻겨 주셨습니까?
그것을 사도행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시기 바로 전입니다. 하늘에 올라가시는 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쉽게 말씀을 하면 주님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의 말씀과 같이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모든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고 부활을 하셔서 하늘에 올라가신다는 말씀은 다시 하나님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이 표현이 이상하더라도 우리 성도님들은 알아듣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더 이상 우리 인생들에게 보이실 수 없고 직접 가르쳐 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제 제자들이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 세상에서 하셨던 그러니까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산을 넘는 아름다운 발이 될 것을 아시고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의미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복된 좋은 소식을 가지고 산을 넘으면서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그 발이 아름다워서 주님께서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실제 주님께서 발을 씻겨 주신 그대로 주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시고 난 후에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 제자들이 기록한 성경을 우리가 보고 있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고 우리는 그 증거를 받고 믿음으로 해서 생명을 얻는 자가 되어 주님이 오실 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이성으로는 주님의 말씀을 아직까지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말씀 그대로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다가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영생입니다.
우리 성도는 종일 하나님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 영생을 바라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너무 강조를 하고 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우리 인생은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이 생명이 실상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인생 팔십년을 위해 살겠습니까?
과학자들이 말을 하는 것과 같이 빅뱅이 138억년 되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가 138억년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138억년 가운데 우리 인생은 점으로 찍어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끝이 없습니다.
우리가 얻는 생명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생명에 대해서 우리에게 선생이 되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마치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같이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정말 그렇습니다.
이 요한복음을 보면 마치 주님의 말씀을 지금 듣고 있는 것과 같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면서도 주님께서 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는지도 모르고 교회 안에서 겸손의 모양을 나타내기 위해서 교인들의 발을 씻겨 주면서 세족식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얼마나 명확하게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까?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이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증거를 받고 있기 때문에 믿기 싫어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정말 성경을 볼 때마다 그렇게 느끼면서 성경을 보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확실하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입니다.
그들은 막연함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하나님 나라를 간다고 하고 있고 영생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도 자기들의 인생의 이성으로 마음대로 상상을 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우리가 이 복된 소식을 듣고 믿을 수 있는 것을 네가 원 돌 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는 것을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습니까?
인생의 본성을 거스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의 소욕을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을 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우리 인생의 본성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철학으로 알고 있는 모든 지식입니다. 그것이 성령을 거스리면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못하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나는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을 하면서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제 주님은 세상에 계시지 않고 제자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그 아름다운 발을 씻겨 주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말씀과 같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5: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40쪽)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 영의 일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받아 믿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빛으로 오셨다는 말씀은 영의 일을 하신다는 말씀이고 우리 성도들에게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입니다.
육십 세 이상의 과부로서 한 번밖에 결혼하지 않았던 여자는 교회의 과부 명단에 따로 올리도록 하시오. 이 경우 그 과부는 착한 행실로써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여자이어야 합니다. 자녀를 잘 기르고 나그네를 후대하고 성도들의 발을 씻어주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온갖 선행에 몸을 바친 여자라야 합니다. 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교회를 비유로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5절에서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과부로 비유로 해서 교회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과부는 착한 행실로써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여자이어야 합니다. 자녀를 잘 기르고 나그네를 후대하고 성도들의 발을 씻어주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온갖 선행에 몸을 바친 여자라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여자는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우리 성도는 교회라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교회입니다.
성도들의 발을 씻겨 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문자 그대로 교회가 성도들의 발을 씻겨 주라고 하는 말씀입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제가 일일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이 발을 씻는 의미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초기 교회에는 복음을 듣고 믿은 성도들이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습니다.
주님께서는 지난 삼년 반 동안 제자들과 함께 다니시면서 유월절을 먹이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에서는 떡을 떼어 주시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제자들에게 이 일을 알고 기념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듣습니다.
그러니까 유월절을 먹었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는 사도행전1장의 말씀과 같이 성령이 오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성입니다.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우리 역시 성령을 받은 모든 성도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교회가 하는 일에 대해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십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발을 씻겨 주는 일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주님께서 대야에 불을 떠다 씻기는 것과 같이 한다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일을 영의 일을 깨달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아름다운 발로 이 세상에 나가서 산을 넘고 복음을 전하게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늘 말씀을 하지만 그들은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그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을 자기들이 의식을 만들어서 그대로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보고 그대로 지키다가 결국에는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었습니다.
이방의 종교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떡을 때어 주시고 또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것을 행하여 기념하라고 말씀을 하니까 성찬식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그대로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그 행위를 얼마나 거룩하게 하는지 그것이 진짜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는 것과 같이 교인들을 세뇌를 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념입니다.
그것을 종교는 의식으로 만들어서 기념을 하고 있고 마치 자기들이 성찬식을 하는 것으로 실제 주님의 육체와 같이 연합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발을 씻기는 일을 성경에서 보고 역시 똑같이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세족식을 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모르니까 그저 문자를 아는 것으로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아느냐?
우리 인생들이 이 말씀을 보고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영의 일을 알 것 같으면 이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했지만 우리 인생은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르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너희가 아느냐고 묻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하는데 이방의 종교인들은 이 말씀을 보고 그저 안다고 하고 있습니다.
압니까?
이 시대 누가 알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의미를 누가 알고 있습니까? 그러고 나서 주님께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고 말씀을 하니까 인생들은 이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 말씀 그대로 문자 그대로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도도 행위로 하지 않는 것을 종교인들은 의식을 만들어서 거룩하게 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까?
그렇게 발을 씻겨 주는 행위가 알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초등학생이 성경을 보고 문자를 알고 발을 씻겨 주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정도를 가지고 안다고 하는 것은 영의 일에 있어서 무지하고 어두움에 다니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주님께서 떡을 떼어 주시고 잔을 가지사 포도주를 주신 일의 의미를 알고 주의 만찬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말씀을 보았으면 그것이 이사야 52장7절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발입니다.
실제 발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알고 있는 발을 의미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하게 하는 발을 교회에서 이제 씻어 주고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착한 행실로써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여자이어야 합니다. 자녀를 잘 기르고 나그네를 후대하고 성도들의 발을 씻어주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온갖 선행에 몸을 바친 여자라야 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서 성도가 이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발을 씻겨 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발을 씻겨 주는 영적인 의미를 충분히 말씀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대표로 해서 이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을 씻겨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영의 일을 믿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음1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