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요한복음13:11절을 보겠습니다. (신 170쪽)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는 깨끗하지 않다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제자들의 육체를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3장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이 있고 그럼으로 해서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나고 그런 제자들을 깨끗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아닙니다.
종교 안에서 외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자기는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간음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마치 깨끗한 것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살인한 자를 간음한 자를 판단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지한 자들입니다.
그들이 바리새인들과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지금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다는 깨끗하지 않다고 말씀을 하는데 마치 제자들의 육체를 보고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철학으로 생각을 하면서 영이니, 혼이니, 영혼이니 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성경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영원한 생명을 얻는 자를 말씀을 하는 것이지 그저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생명을 얻는 자를 말씀을 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깨끗한 자를 말씀을 하니까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 자기들은 깨끗하고 세상 사람들은 깨끗하지 않은 것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다는 깨끗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정말 이상하게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주님을 이상한 분으로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창조주께서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지도 모르고 말씀을 하고 있다면 굳이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빛입니다.
주님께서는 생명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2장에서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의 아들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분명하게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성경을 자기들의 철학으로 보고 있고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자기 영혼이, 영이, 혼이 깨끗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절대로 깨끗하게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들이라고 하는 사람들 역시 죽으니까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고 하지 않고 죽어서 흙으로 돌아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마치 죽으면 그 신체가 영이나, 혼으로 변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내가 아는 그대로 믿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다면 그의 믿음이라는 것은 거짓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믿습니까?
생명도 모르면서 믿습니까? 깨끗하게 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믿습니까?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그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믿음이 역사를 하고 있고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13:12절을 보겠습니다. (신 170쪽)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뒤에, 옷을 입으시고 식탁에 다시 앉으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알겠느냐?”
영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이 생명에 대해서 약속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고 느끼고 하는 이 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창조를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명령이라는 말씀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들이 이 영생을 얻는 것이 쉬울 것 같으면 주님께서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명령이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냥 영생을 얻으라고 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분명히 명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명령이라고 하시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이 영생을 주시기를 약속을 하시고 창조를 하셨기 때문에 명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해서 다 이루시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주님께서는 하늘에 올라가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이 생명에 대해서 전할 사람이 없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셨고 이제 그 명령의 일을 다 이루시고 제자들에게 그것을 전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의 약속을 이 세상에 다 이루시고 하늘에 올라가시고 이제 제자들이 세상에서 그 일을 하라는 의미에서 발을 씻겨 주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주님께서는 죄인 하나가 회개를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시면서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이 진리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을 얻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일입니다.
이제 제자들이 하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너무 종교화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에 대해서 아는 사람도 없고 전하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사실 그런 생각을 하면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상고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보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이미 거대한 종교의 교리에 포승으로 묶여 있는 상태에서 성경을 본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어서 더 이상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자기들의 종교에서 배운 교리를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기 때문에 깨달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픕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께서 우리 피조물들에게 창조주의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유대교의 바리새인들과 같이 그들의 교리만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거대합니다.
그러나 그 종교 안에는 생명을 얻는 자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자기들의 이성으로는 영생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는 것이 인생들이 이성적 지식이라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뒤에서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합니다.
성경에서 왜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인생이 아무리 지식이 있다고 해도 이 성경을 보고 영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야지 만 이 영의 생명을 믿을 수 있고 그 믿음으로 생명을 얻은 자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방인들의 종교는 첫 단추부터가 잘못 끼워져 있습니다. 그들이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종교를 만들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피조물이 창조주를 자기들의 이성으로 정의를 내려서 자기들의 지식으로 형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70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한번 정한 교리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령을 어떻게 받는 줄도 모르고 있고 성령이 오신 성도가 어떻게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저희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이제까지 왜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는가를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는가에 대한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가 되어 있는 그들은 이것을 교회 안에서 자기들도 그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 행위입니다.
죄악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뒤에서 말씀을 하겠지만 더구나 주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다고 말씀을 하니까 이 문자를 보고 교회 안에서 세족식이라고 하면서 당연하게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어떻습니까?
안 하면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는 사람들은 세족식을 하지 않으면 우리 종교인은 섬기지 않는다고 말을 하게 되어 있고 그리고 종교인들은 자기들이 선생이 되어 섬기는 것을 보이려고 세족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10:15절을 보겠습니다. (신 253쪽)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이 시대는 이것을 마치 선생이 겸손의 모양을 나태나기 위해서 그러니까 자기가 섬기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의식화를 해서 하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분명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실 때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몇 가지를 말씀을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사야52장7절의 말씀을 앞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그대로 인용을 해서 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0장에서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좇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면서 교회 안에서 인생들이 본성에 따라 율법을 지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못해서 인생의 본성에 따라 성경을 보고 그 이성적 지식으로 문자를 아는 것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들의 본성이라는 것을 이제 로마서11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발을 씻어 주는 의미입니다
물론 앞에서 여러 가지를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가 바로 이사야52장7절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먼저 이 세상에 오셔서 좋은 소식을 가져오시고 평화를 공포하시고 구원을 공포하시고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을 선포하시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산을 넘으시면서 복음을 전하신 발이 아름답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의 아름다운 발을 씻겨 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시면 제자들이 그렇게 복음을 전할 것을 아시고 그 아름다운 발을 하나님께서 친히 씻어 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얼마나 좋은 소식입니까? 우리 인생들에게 우리 피조물에게는 그보다 더 좋은 소식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은 진토라서 죄를 짓고 죽어야 합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에게 가장 좋은 소식은 그 인생의 신체로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에 모든 종교에서 말을 하는 내세와 우리가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믿는 내세는 전혀 다릅니다. 이제까지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었지만 그들은 내세의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거의 비슷합니다.
종교만 다를 뿐이지 그들이 말을 하는 내세는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영생에 대해서 깨닫게 하시고 있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복된 좋은 소식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언어적인 말씀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복된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이 말씀을 단어로 아는 것으로는 전혀 실감이 나지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 양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고 창조주의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은 정말 저도 수십 년을 교회에 다녔지만 들어보지도 못한 말씀입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이 복된 좋은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지만 인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을 하신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 소식을 듣고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믿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믿지 않고 있는가 하면 이 복된 소식을 전할 사람을 보내심을 받아서 그가 와서 전파를 해 주어야 하는데 듣지를 못하니까 믿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습니다.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지금 로마서에서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된 소식을 알고 있는 자를 보내서 듣게 해야 그들이 듣고 믿을 수 있는데 듣지도 못한 이를 어떻게 믿을 수 있으며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을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삼년 반 동안 유월절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유월절을 먹이셨지만 그들은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는 일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보내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하늘에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제자들만이 남게 되는데 그들을 보내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있습니다. 왜 씻겨 주시는가 하면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보내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종교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종교에서는 자기들의 교리에 따라 내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창조주의 생명을 얻게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 다는 복된 소식을 전하는 자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도 놀랍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의 말씀과 같이 은혜 위에 은혜라고 믿고 있습니다. 은혜라는 단 한 마디로 말을 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 피조물이 창조주의 생명을 얻어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일이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말씀을 하면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된 소식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름다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아름다운 소식을 이 세상에 오셔서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을 그대로 보여 주시면서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이제 그 일을 제자들이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아름다운 발을 씻어 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영생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명령은 영생이라는 말씀을 성경에서 단어로 보고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영생을 얻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바로 뒤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보내심을 받아 전하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창조주의 생명을 얻음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소식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성경을 본다고 하는 그들이 종교에 빠져 다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제자들의 발이 아름다운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발을 씻어 주시고 제자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있는데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전혀 다르게 성경을 보면서 섬기는 것을 외식으로 보이기 위해서 의식화를 해서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잠언30:2-3절을 보겠습니다. (구 944쪽)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을 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인생의 이성으로 생각을 하면서 주님께서 자기 발을 씻겨 주시는 것을 주께서 내 발을 씻기 시나이까 라고 하면서 절대로 씻기지 못하리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인생의 이성으로 생각을 하는 그런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사도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또 뒤에서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고 말씀을 하시면 종교가 되어 있는 이방인들이 그대로 행위로 따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성경입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우리에게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모든 일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하신 놀라운 일들입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그 일을 보고 자기들도 그대로 따라서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그 하나님의 일을 성경에서 보고 사람의 일로 생각을 하고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면 종교가 얼마나 의식화가 되어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고 그들이 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사람의 생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인정입니까?
그리고 사람의 이성입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런 것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생각을 한다면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만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그가 복음을 전하니까 자기 부인이 떠나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가 인정에 매였다면 과연 이방에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우리가 지금 이 시대 성경을 볼 수 있겠습니까?
부인입니다.
그리고 자식입니다. 저 역시도 사람입니다. 왜 인정이 없고 혈육에 대한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것에 매여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면 그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더구나 복음을 듣고 있으면서도 그렇다면 그는 너무도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다른 것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생명이 끊어진다 해도 아무 미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만큼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고 제가 앞에 있는 즐거움을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고 지금 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헛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내 자식입니까?
그리고 내 아내와 남편입니까? 그리고 내 부모 형제입니까? 다 헛것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 역시 헛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는 복음을 믿을 수 없고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주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우리에게 믿음으로 창조주의 생명을 얻게 하시고 그 믿음이 실상이 되어 우리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제가 구더기가 되는 것보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생을 생각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을 하지 않고 인간의 이성적 생각으로 예의를 말하고 도리를 말한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저는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베소에서 삼년을 밤낮으로 눈물로 훈계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생명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믿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자는 눈물로 훈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듣는 자는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내가 가면 이리가 와서 너희를 아끼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의 일이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다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이 너무 약해서 인정에 매여 믿음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고 나서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은 제자들은 모릅니다. 그리고 또 이 성경을 보는 사람들 역시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세족식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할 줄을 아시기 때문에 묻고 있습니다.
너희가 아느냐?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세상에서 지혜가 있다 해도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도 않은 사람들이 사람의 이성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면서 자기들이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압니까?
이 시대 종교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을 알았다면 교회 안에서 세족식이라는 것을 의식화해서 행위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자기들이 할 수 있는 행위를 다 하고 있습니다.
아굴의 잠언입니다.
우리 인생이 어떠한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어떻게 말 합니까?
짐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짐승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적인 능력이 있고 문명을 발전시키고 하니까 인생들이 대단한 것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영생에 있어서는 우리는 짐승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굴의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아느냐.
우리 인생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쁜 것은 나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아굴의 잠언의 말씀과 같이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성경을 보면 그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혜를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자기 생명을 걸고 그렇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겨우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그리고 조금 더 지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언어적인 능력이 있다고 하면서 히브리어를 이야기를 하고 있고 헬라어를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 생명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고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시면 제자들이 모르고 있다는 말씀이며 제자들이 모르고 있으면 우리는 더욱 더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성경을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은 몰랐어도 자기들은 안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겸손의 모양을 나타내기 위해서 세족식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하고 있습니다.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볼 때마다 저는 정말 두려운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도무지 성경을 풀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굴의 잠언에서 나는 짐승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30장4절에서는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압니까?
인생의 지식이라는 것은 구더기의 지식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와 무엇이 다릅니까? 그 세계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지한 일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지식이 있다고 하면서 너무 교만해져 있습니다.
구더기입니다.
그리고 벌레입니다. 그 미물들이 다 본성에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우리가 볼 때 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역시 우리 인생들도 인생의 본능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겸손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구더기가 그 본성에 따라 살아가는 것과 우리 인생이 그 본성에 따라 살아가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깨닫고 우리는 한없는 은혜를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자기들이 조금 무엇을 하면 미물들과 다르다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을 아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욥기38:33절을 보겠습니다. (구 800쪽)
“네가 하늘의 법도를 아느냐 하늘로 그 권능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욥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성경이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인생들의 이성으로 욥을 볼 때 어떤가 하면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없다고 할 정도로 욥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율법을 잘 지키고 산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고난을 당합니다.
자기 자식들이 죽고 부인이 하나님을 저주를 하라고 하면서 떠나가 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는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욥기입니다
누구나 다 읽어 보았습니다.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욥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욥보다 더 하나님을 잘 믿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이성으로 볼 때는 욥보다 더 잘 믿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욥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그렇게 믿는다고 했지만 어떻게 믿었는가 하면 인생의 이성으로 생각을 하면서 사람의 철학으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그리고 욥 스스로가 생각을 할 때도 자기보다 하나님을 잘 믿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산 사람입니다.
그런 그에게 고난이 옵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찾아와서 생각해 보라고 하면서 네가 무엇인가 잘못한 것이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고난을 주시는 것이지 라고 말을 하고 있고 그런데도 욥이 끝까지 자기가 죄가 없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나중에는 교만하다고까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욥입니다.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 보겠다고 하는 욥입니다. 그런 욥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아느냐, 이 아느냐는 말씀을 욥에게 다섯 번을 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욥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서 그때 자기 입을 스스로 손으로 막는다고 하면서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라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 한 일입니까? 성경이 이렇게 우리 인생들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인생들이 너무 교만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next 1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