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요한복음13:11절을 보겠습니다. (신 170쪽)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일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본다고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일은 전혀 모르고 그저 사람의 일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 보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서 믿는 것 아닙니까? 그 영생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는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알아야 믿을 수 있고 그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알지 못하고 있는 그들은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왜 오셨습니까?
창조주께서 왜 피조물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그 자체가 얼마나 놀라운 일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수태를 하시고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니까 너무도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일 년만 구더기로 살라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피조물과 같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가 구더기로 사는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은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왜 그렇게 오셨는가 하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예정을 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약속을 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고 그 약속이 바로 영원한 생명이고 이 영원한 생명이 있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저녁을 드시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에서는 떡을 떼어 주시고 포도주를 주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모든 구속의 일은 다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들입니다.
그것을 의식화를 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행위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이방의 교회가 다 성찬식이라고 하면서 하고 있고 또 발을 씻겨 주는 것을 세족식이라고 하면서 의식적으로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죄악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죄악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저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자기들이 해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아니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십니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 정도만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 의미를 알아야지 행위를 그대로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제자들은 삼년 반 동안 주님과 함께 다녔고 주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또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로 믿고 있습니다.
선생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니까 사도 베드로가 주께서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도 성경을 보았고 자기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천사 둘이 오시는 것을 보고 영접하여 발을 씻겨 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것을 보고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도 베드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내 발을 절대로 씻을 수 없다고 말을 하니까 주님께서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입니다.
이 세상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사도 요한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사도 베드로는 사람의 일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하늘에 올라가시면 제자들만 세상에 남게 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일을 깨닫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는 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지난 삼년 반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먹이셨습니다. 그렇게 준비를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있고 하나님께서 손수 피조물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것은 그 발로 산을 넘어 복음을 전할 것을 아시고 아름다운 발을 씻겨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입니다.
물론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제자라 해도 주님의 말씀을 삼년 반 동안 들었다 해도 하나님의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으로 주님께 말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발을 씻겨 주시는 의미를 알게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가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주님께서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을 하시니까 이제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는 모든 인생들이 성령을 받기 전에 사도 베드로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왜 오셨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영생을 주시기로 약속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우리 피조물들이 창조주의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다 이루셨습니다.
주님께서 이제 십자가를 지시고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운명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다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가 생명을 얻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부활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왕 노릇하면서 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고 말을 하니까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는 씻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미 목욕을 해서 깨끗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안에 있는 거룩하신 생명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깨끗하나.
이미 구원을 받은 과거형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조를 하실 때부터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신 것과 같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는 아니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주님의 제자 중에 가룟 유다가 주님을 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팔아 넘길 사람을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편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그 창조주의 광대하심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인생들의 생각에 갇혀 거기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인들의 생각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편협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를 조금이라도 생각을 바로 하고 있다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어느 정도라도 알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로만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정말 종교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청산유수가 따로 없습니다. 그 정도로 말은 잘하고 있고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사람의 이성에 갇혀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다 사단이 세운 짐승이라는 종교에 포승으로 묶여서 그들의 교리에 꼼짝을 못하기 때문에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그렇습니다.
아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종교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시대도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이 영의 놀라운 일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는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가룟 유다를 두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그대로 가룟 유다가 당신을 팔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목욕을 해서 깨끗하다고 말씀을 하시면서도 다는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1:15-17절을 보겠습니다. (신 324쪽)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시대는 자기가 믿는 구원하시는 분이 누구신지도 모르면서 그저 종교의 교리에 따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마치 북 이스라엘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기까지 그 죄에서 떠나지 않은 것과 같이 그러한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인생들의 철학적 지식이라는 것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고 어디로 가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우리의 예표와 비유가 되고 경계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선지자들로부터 책망을 받은 일이 그들만의 일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지만 성경이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는지를 모르니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입니다.
우리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어로 기록이 되었다면 우리는 성경을 볼 수도 없고 무슨 말씀인지를 전혀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피조물들이 아는 언어로 그러니까 피조물들의 지혜와 지식으로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언어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문자를 아는 것에 그치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성경을 아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렇게 철학적으로 이해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 그대로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생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그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성경을 보고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것이 사람의 생각이 되어 망하는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인생의 한계이기 때문에 그 이상 지혜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주님께서 발을 씻겨 주시니까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자기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천사 둘을 영접을 하면서 발을 씻겨 주셨던 말씀을 알고 말을 하는 사도 베드로에게 주님께서는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입니다.
자기 고집을 꺾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술 더 떠서 절대로 내 발을 씻기지 못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일에 대해서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더 강하게 반박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을 합니까?
자기가 성경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유대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일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것을 알고 사도 베드로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인생들의 안다고 하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이것이 성경만 그런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역시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계속해서 알고리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정치나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들은 자기가 아는 것이 마치 전부인 것으로 생각을 하면서 사도 베드로와 같이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싫은 것입니까?
그것이 그냥 싫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내 생각에서 사로 잡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정치나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하고 싶지 않지만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은 자기가 배운 그대로 알게 되고 있고 그것이 옳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마치 간음한 여자를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 것과 같은 일임에도 정작 본인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일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부탁드리지만 우리 가운데서도 그런 세상의 사상을 더 이상 이야기를 하는 것을 가급적 삼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내가 하는 한 마디 말이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하는 말이 옳은 것도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도 유대인입니다. 그가 성경을 이 시대 보통의 종교인보다는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 지금 절대로 내 발을 씻기지 못한다고 말을 하고 있고 그 말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되고 있지만 사도 베드로서는 성령이 오시기 전이기 때문에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성경에서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 지혜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수 있고 성령을 구할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먼저 나를 아는 성도만이 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방의 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종교의 교리에 따라 성자 하나님이라고 성경에도 없는 것을 주장하면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창조입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의 종교인들은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자기가 믿는 구원하시는 자가 누구신지도 모르면서 믿는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입니다.
이 창조에 대해서는 12장에서 많은 말씀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이 성경에서 창조에 대한 말씀을 보고 있지만 창조에 대해서 깨닫고 있는 사람이 지극히 적고 창조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신입니다.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창조주라는 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성경에서 창조에 대해서 말씀을 해도 창조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그런 그들이 성경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초입니다.
정말 성경을 보는데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인생의 언어로는 다 외우고 있지만 창조가 무엇이라는 것을 인생의 철학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어서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창조와 인생들의 철학적 지식의 창조는 괴리감이 너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창조주입니다.
제가 창조가 다 이루어졌다고 하면 인생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주를 보고 아니 이 지구만 보아도 창조가 다 이루어졌다는 말씀을 받아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 되었다고 과거형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창조 되었습니다.
창조를 하시고 계신 것이 아니라 창조가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창조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고 성경을 보면 아무리 그가 인생의 철학으로는 띠어난 지혜가 있다고 해도 성경은 절대로 풀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과거형입니다.
이미 창조가 다 마무리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주를 보더라도 창조는 다 끝이 났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말로는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들이 창조에 대해서는 전혀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과학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창조가 다 이루어졌다고 말씀을 하는 성경말씀이 깨달아 질 수 있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성령을 구할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경은 연결을 해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했고 13장을 보고 있지만 12장에서 말씀을 하는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시는 일을 우리는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합니다.
창조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팔 자가 누구신지를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선지자들이 예언을 했고 그가 누구신지를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000년 전에 선지자 다윗이 성경에 기록을 하고 있지만 이미 주님께서는 그가 가룟 유다라는 것을 아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팔자입니다
그가 가룟 유다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만 아시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자가 누군지 그리고 깨끗지 아니한 자가 누군지를 다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그냥 기록이 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창조하신 일을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시는 일을 기록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 시대는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있는 일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깨끗한 것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이 되었다는 것을 믿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지금 빛에 비췸을 받아 빛의 아들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생의 일을 말씀을 하기 때문에 자기를 팔 자가 누구신지를 아시고 있고 또 깨끗한 자가 누구신지를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으로는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해도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셨다고 해도 이 일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합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을 팔 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로마 시대도 그렇고 이방에 종교가 생기고 난 후에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던 사람들 중에서도 여러 가지 상황에 의해서 복음에서 떠나 주님을 파는 것과 같이 배반을 하고 또 그들을 고발을 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아무리 성령이 오셨다고 해도 그것 까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을 받은 것과 같이 교제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일까지는 다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내부에서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고발을 해서 많은 성도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팔 자입니다.
그리고 깨끗한 자입니다. 아무리 성도의 교제라 해도 이것을 다 알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 우리 성도가 적은 숫자가 교제를 하고 있지만 늘 조심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설교를 하는데 있어서 단어를 선택하는 것도 역시 혹시 모를 일을 대비를 하면서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저는 늘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요한복음의 말씀을 보고 우리도 주님과 같이 다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성령이 오시면 어느 정도는 분별이 가능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이라는 것을 늘 생각을 해야 하고 복음에 방해가 되지 않게 늘 지혜롭게 행동을 해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중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은 사람도 있었지만 한 사람으로 인하여 해를 받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해를 끼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해입니다.
당시는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면 당연히 다양한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도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오래 동안 잘 듣는 것 같다가도 가장 어려울 때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분은 창조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들을 다 알고 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그대로 이루어지는 일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고 있지만 누가 우리에게 해를 끼칠지를 모르기 때문에 더욱 조심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압니다.
지금은 민주주의국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우리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늘 조심을 해야 하고 주님께서는 창조주시기 때문에 다 알고 계시지만 우리는 인생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샤머니즘입니다.
우리 성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보고 마치 자기들도 다 아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종교는 서로를 보호해 주니까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우리 성도는 소수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서1:4-5절을 보겠습니다. (신 310쪽)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창조주시기 때문에 인생으로는 알 수 없는 일까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는 씻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 목욕한 자가 누군가를 말씀을 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을 했지만 성경에서 이 목욕을 하는 의미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씀을 하고 있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는 물로 씻어 예수의 생명을 얻는 자를 의미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실 때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예정이고 이미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정해져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성경을 보고 성령이 오시면 주님의 말씀과 같이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알지 못하지만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는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방의 종교는 진리의 영인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이 교리 하나로 인하여 모두가 사망의 길고 가고 있으면서도 어느 누구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이미 북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들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든 죄에서 떠나지 않은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본다고 하는 그들이 두려움이 없이 십계명의 제 일 계명을 어기면서도 전혀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왜 성경에서 다수를 따라 가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인생들은 다수가 가면 안심을 하기 때문입니다. 다수를 믿기 때문에 그렇게 따라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치 이 시대 민주주의가 만능인 것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좋습니다.
제가 공산주의가 옳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무조건 옳은 것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또한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지식도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인생들은 다수가 가면 안심을 하고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생들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백성이고 더구나 주님께서 제자로 부르시고 유월절을 먹이셨지만 주님께서 발을 씻겨 주시는 일을 자기가 성경을 보고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는 베드로에게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그리고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까?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그것을 보고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령이 오시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안다고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입니다.
종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거의 모든 종교가 성경의 언어를 보고 아는 것으로 성찬식이라는 의식을 만들어서 행하고 있고 세족식이라는 의식을 만들어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성경을 안다고 하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인생의 지식이지만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주님께서 발을 씻겨 주시는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토인 우리 인생의 생명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시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에 대해서 종교의 교리에서 조차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생명에 대해서 정말 많은 말씀을 하고 있는데 신체의 구원을 주장을 하다보니까 주님께서 깨끗하다고 하는 말씀도 자기들의 신체가 깨끗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입니다.
어떻게 해도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피조물이 거룩하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철학이 그렇고 모든 종교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도 너무도 당연하게 신체의 구원을 주장을 하고 있는데 성경은 전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인생의 언어입니다.
사도 바울이 영생을 얻는 일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2장입니다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장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에게서 난 자들과 하나님께로서 난 자를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교입니다.
우리 인생은 다 사람에게서 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을 해도 하나님께로서 나는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누군가 하면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이한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이한 일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인생의 철학에 따라 모든 종교에서 말을 하는 것과 같이 성경을 보면서도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다는 깨끗지 않습니다.
이 깨끗한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그 육체를 깨끗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가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next 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