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윤주만목사 2023. 3. 28. 06:23

마태복음12 :22

"그 때에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을 앞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것을 육적으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지금 이시대도 분명히 성령께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나 보다 더 큰일을 행할 사람이 있으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그 심지를 끄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하시고 바로 벙어리 된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 당시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벙어리 된 자를 고쳐 주니까 그 곁에 있던 사람들이 다 놀라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말하고 있습니다.

 

표적을 보고 믿게 하신 일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그런 표적을 보고 믿게 하십니까?

이 시대는 성경의 텍스트를 누구나 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시대를 따라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타나시고 역사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 시대는 어떤 방법으로 역사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최근 교인들이 자성의 소리를 낸다고 하면서 논조나 평론이 나오는 것을 보는데 안타까움을 볼 수 있습니다.

 

맹목적인 믿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자성의 소리에는 그 맹목적인 믿음이 무엇이고 바른 믿음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하는 말이라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을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교인의 삶을 말한다면 그 삶이 나빠서 상한 갈대가 되고 꺼져가는 심지가 된 사람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그저 장애인 눈으로 보는 약한 사람을 돕는 것으로 그것을 행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영적인 성도가 아니라 육적인 종교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적인 종교인만이 이 시대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눈에 보이는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 그리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사람은 돌아 볼 수 있으면서도 그 영혼에 갈급함으로 마음이 상한 자에게 오히려 더 상처를 주고 갈대를 꺾어 버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육적인 병을 통해서 영적인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치 이런 일이 육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아니 거의 다 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시편51 : 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사람은 육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육적으로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영적인 깊이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은 성도라 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다면 육적으로도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도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병을 치료하고 자기 환경이 개선된다고 그것이 영원하게 지속이 되는 것입니까?

 

그런 보이는 것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 시대 육적인 병을 고친다고 하는 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병 고치는 은사를 모르고 하는 일입니다.

성도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영혼이 상한 갈대가 되어 꺾어져 가고 있고 꺼져 가는 심지처럼 죽어 가고 있는 생명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 이적이 일어나면 그때부터는 복음은 사라지고 오직 은사만이 복음을 대신하고 자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상한 심령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영성 수련회는 그 상한 심령을 끄집어내는 이상한 일을 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런 일들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육적인 일입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행하고 있는 일이며 치료하고 있는 일이며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영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세상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과 똑 같은 방법으로 다르다면 그들의 세상의 방법으로 교회는 예수의 이름을 빌린다는 것뿐입니다.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하고 어려운 자를 돕는 것을 마치 교회가 하는 일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해입니다.

하나님께서 썩어지는 우리 육체의 병을 고쳐 주시기 위해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영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지금도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시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영적인 뜻을 모르면 세상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불교에서고 천주교에서도 아니 세상 미신을 믿는 사람들도 기도하면서 그런 일을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복음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모르고 행하는 것은 무당이 굿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 시대는 은사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은사는 다 영적인 일을 위하는 것이지 그것을 문자 그대로 보는 사람은 반드시 사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능력 있는 엘리사도 죽을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도 감옥에서 그냥 죽도록 놓아두었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사자의 밥이 되고 화형을 당하는 죽임을 받고 돌에 쳐서 죽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그들을 돕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병을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부분 치료해 주셨다는 것을 바로 깨닫기 바랍니다.

그런데도 자기 병을 고치기 위해 이곳저곳 쫓아다니면서 더 피폐해 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도는 아픔도 참아야 합니다.

그리고 설령 죽음이 와도 담대하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은 나그네이고 성도의 본향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 보다 자기 육체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 더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에 대해 애착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혼에 대해서 정말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잠시 있다 사라질 것에 끈끈한 정을 두지 마시고 영원히 있을 것을 꼭 잡고 놓치지 않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의 감사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인 줄 알게 하시고 내 심령이 통회할 수 있게 감동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