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2,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미가4:10절을 보겠습니다. (구 1294쪽)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갈라디아서4:5절을 보겠습니다. (신 306쪽)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입니다.
실제 있는 일을 통해서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요한복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일을 사도 요한이 이는 기록된바 시온 딸아 두려워 말라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만왕의 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왕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일을 보고 만왕의 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육의 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 유대인들도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실제 자기들의 육적인 왕으로 오시는 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렇게 외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입니다
성경에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이 응하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성도는 깨닫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다 영의 일을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하는데 인생들은 실제 그 사건을 보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는 말씀이 응한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아니 종교에서 각주로 달아 놓아서 그렇게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단지 그 말씀입니까?
이미 앞에서 스바냐 선지자의 말씀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누가 봐도 스바냐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이 응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고 저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가 인용을 하는 말씀 뿐 아니라 성경에서는 더 많은 말씀들이 예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는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미가 선지자입니다.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주님께서 이제 십자가를 지시고 장사 지내고 영으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심으로서 이 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딸 시온입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을 비유로 해서 우리 성도들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누구나 다 깨닫고 있습니다. 딸 시온이라고 말씀을 한다고 해서 마치 실제 예루살렘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고 이제 신약에 와서는 우리 성도들의 모임을 교회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딸 시온에 대해서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해산의 수고를 다시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이렇게 여자로 비유로 해서 그리고 우리 성도가 생명을 얻는 일을 마치 아들을 낳는 것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인생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면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것을 바알로 비유로 해서 말씀하고 있고 이제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비유로 해서 율법의 포로가 되어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상징입니다.
그래서 이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오래 전에 사라졌지만 성경에서는 요한계시록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가 다시 생겨난다는 말씀이 아니라 바로 율법을 지키는 종교를 비유로 해서 바벨론으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모세의 율법을 보면 마치 함무라비 법전과 같이 지키려고 하고 있고 그것이 포로가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철학적 지식입니다.
그것에 포로가 되면 인생은 성경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다 율법의 포로가 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종교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서 그 일을 이루시는데 그럼으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고 계십니까?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수입니다.
율법은 원수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원수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을 영적으로 비유로 해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인생들의 철학적 지식이 그렇게 다 포로가 되어 있으니까 주님께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속량하시고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딸입니다.
그 말씀이 의미를 하고 있는 뜻을 우리는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그저 요한복음의 말씀을 보고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이 응하는 것으로만 보아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을 수도 없고 믿음으로 역사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을 강해를 하면서 계속해서 성경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성경이 응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 에스겔 선지자, 이사야 선지자, 스바냐 선지자, 시편의 말씀, 모세의 율법 그리고 미가 선지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일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바벨론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종교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가 선지자의 말씀이 응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결과로 생명을 얻어 아들의 명분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딸 시온입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있는 우리 인생들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3절에서 말씀을 했지만 주님께서는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초막절을 이루신다는 것을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하실 때 유대인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유대인들도 모르고 있고 이 시대 성경을 보고 있는 이방인들 역시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면 초막절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증거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 나라를 믿을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오셔서 이루시고 계시고 있고 그것을 선지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삼위일체라는 교리에 포승으로 묶여 있는 사람은 절대로 이 영의 일에 대해서 증거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도 긍휼히 여길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고 그들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15절의 말씀입니다.
누구라도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성경을 보고 아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믿음에 대해서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밀입니다.
그래서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이 비밀이라는 단어의 뜻도 모르고 그저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자기들이 마치 비밀을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이단들은 사람들을 미혹할 수 있는 말로 이상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들이 비밀을 알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의 비밀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자만이 이 비밀을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지 못하면 그는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고 그것을 포로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조차 인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2:16절을 보겠습니다. (신 168쪽)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인 줄 생각났더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에는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으나,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뒤에야, 이것이 예수를 두고 기록한 것이며, 또 사람들도 그에게 그렇게 대하였다는 것을 회상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오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인생의 이성으로는 영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다는 것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종교성입니다.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자기들과 같은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어서 성경도 아들이라고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그 성경의 문자를 보고 진짜 사람들과 같이 아버지와 아들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나친 열심입니다.
그리고 지나친 신앙심입니다. 그것이 도리어 인생들이 성경을 보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고 우리는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한 성경을 보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서 믿으면 됩니다. 그런데 그저 인생의 언어로 아는 성경을 보고 자기들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의 일이기 때문에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이 알아들을 수 있게 비유와 예표 등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는 안 되니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입니다.
성경은 성령을 받는 일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유월절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절기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유월절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인생의 언어로 알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어떻게 오시는 지도 전혀 모르면서 그저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성령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꽤나 지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의 일을 내세의 일을 인생의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없어서 우리 언어로 표현이 안 되기 때문에 비유로 예표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의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을 보면 우리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들도 사람이고 우리 역시 사람입니다. 그들이 지혜가 있으면 우리 역시 지혜가 있고 그들이 생각하는 사고가 있으면 우리 역시 그렇습니다. 다만 다르다면 시대가 변화를 해서 문명이 발달을 한 것 외에는 성경을 보는 인생들은 이제까지 모든 사람들이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그가 6000년 전에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2000년 전에 사람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혜나 지식과 그리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지식과 지혜가 차이가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인생의 철학이 아니라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상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류의 사상이 꽃을 피운 때가 헬라 시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문명의 발달과 과학의 발달로 더 많은 것을 이 시대가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때 사람들보다 우리가 지혜나 지식이 더 많다고 어느 누구도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들은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마치 지금 이 시대가 제일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도리어 아담의 지혜를 우리는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900년 이상을 살려면 그 지혜는 지금 100년을 사는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도리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그가 무엇을 믿었습니까? 생명에 대해서 믿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믿었습니다. 그는 이상 중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하늘의 뭇 별들을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로 알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누가 그것을 믿고 있습니까?
물론 시대가 다릅니다.
그리고 언어도 다릅니다. 그러다보니까 당시에는 학문을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 한계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에게 교육의 평등성이 주어지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불과 200여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혜나 지식은 인생은 다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도리어 책이 없고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하는 그 시대 사람들이 더 머리가 좋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 역사를 보아도 2000년에 학문이 얼마나 발달을 했는가를 역사적으로도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의 하버드입니까?
당시 알렉산드리아에는 그보다 더한 사람들이 학문에 전념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도 학문적으로 뛰어난 문명이 존재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런 자료들이 전쟁으로 인하여 다 소실이 되었고 그것이 인류에게는 발전을 하는데 있어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역사가들은 알고 있습니다.
인생은 다 같습니다.
성경이 다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경으로 채택이 되었습니다. 그때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사상이나 지금 이 시대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사상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때 정립한 교리를 아직까지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 종교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했습니다.
종교가 되고 1000년을 넘게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만이 성경을 볼 수 있었고 모든 교리가 그때 정립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철저하게 인생의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았고 그런 그들이 모세의 율법을 함무라비 법전과 같이 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의 역사만 해도 2000년이 넘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도 모세의 율법을 보고 자기들이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종교 역시 1000년을 넘게 성경을 자기들만이 보았고 이스라엘과 같이 모세의 율법을 보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신명기29:4절을 보겠습니다. (구 308쪽)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애굽으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으로 보내시고 400년이 흐른 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을 하신 그대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시고 광야를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은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믿어 천국에 가는 과정을 예표와 비유로서 보여 주신 일입니다.
장정만 60만 명입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20세 이상의 남자를 계수를 했고 60만 명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디안으로 도망을 가 있는 모세를 부르시고 네 동족에게로 돌아가서 내 백성을 인도하라는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을 인도를 해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광야라는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광야입니다.
교회를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은 천국을 모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성경을 보고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이 그것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 모르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데는 아무리 많은 사람이 이동을 한다고 해도 몇 달이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인도를 하시고 있고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알겠지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시고 그들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를 하셨습니다.
40년이 걸렸습니다.
물론 다 비유와 예표입니다. 우리 인생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팔십년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20세부터 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간을 40년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60이 넘으면 이제 기억력도 떨어지고 또 이미 사고도 굳어져 더 이상 인생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입니다.
이제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출애굽기를 통해서 애굽에서 나오고 성막을 짓게 하시고 있고 레위기와 민수기와 신명기를 통해서 율법을 반포를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막입니다
성전은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세에게 모형으로 보여 주시고 그 장막의 식양과 기구의 식양대로 지으라고 말씀을 하셔서 모세가 그대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레위기에서 제사 제도를 정하시고 또 절기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민수기와 신명기를 통해서 율법을 반포를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 무엇입니까?
우리는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반포를 하신 율법과 그리고 성막을 짓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가르쳐 주시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비유로 해서 보여주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반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할 때는 애굽에서 나온 1세대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죽고 20세 이하의 사람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모형을 알지 못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영의 일을 비유적으로 모세를 통해서 반포를 하시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것을 비유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문자 그대로 지켰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성막입니다.
그리고 율법입니다. 그것을 보고 그 말씀이 의미를 하고 있는 뜻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모세가 반포를 한 그대로 자기들의 육체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것이 의미를 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몰라 믿지 않아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을 자기들의 손으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반포를 하고 있는 율법을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막을 보고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지 못했고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일을 전혀 알지 못 했습니다. 알지 못하니까 믿을 수 없었고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저희가 믿지 아니함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알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손으로 지은 성막을 보고도 몰랐고 모세가 반포를 하고 있는 율법의 의미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광야에서 다 죽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여호수아와 이방인을 대표하는 갈렙만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왜 몰랐습니까?
신명기 마지막에서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는 2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막을 보고 율법을 보고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성막을 짓게 하시고 율법을 반포하신 것에 대해서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주지 않았습니까?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우리 이방인들의 예표와 경계가 된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라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다 죽었습니다. 왜 죽었는가 하면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시지 않음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을 수 없었고 그런 그들은 믿을 수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이방인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라 이방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입니다
누가 깨닫고 있고 보고 있고 듣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사람이 있지만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막을 보고도 저의 육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보고도 그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지도 않고 죄를 깨닫지도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믿습니까?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지도 않았는데 자기들이 안다고 말을 하고 있고 자기들의 이성으로 언어를 아는 것을 가지고 종교의 교리로 만들어 놓고 그 교리를 배우는 것으로 자기들이 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광야 생활입니다.
그들이 깨닫지를 못해서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인 줄 생각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냥 생각이 나서 나중에 깨달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제자들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보이신 후에 몇 날을 기다리라고 말씀을 하시고 난 후에 오순절이 임하매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심으로서 이 일을 깨달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이 생각이 났다는 말씀입니다.
후에 생각이 났습니다.
그냥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생각이 났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서 제자들이 진리로 인도함을 받음으로 이 일이 생각이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이 났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주님께서 이루신 것을 생각이 났다는 말씀이며 그것은 주님께서 만왕의 왕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신데 그분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을 이루신 것을 생각이 났다는 말씀입니다.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누구에 대해서 기록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왕으로 오시는 예언의 말씀이고 그 예언이 성취가 되었다는 것이 생각이 나게 되었고 그럼으로 해서 시온의 딸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었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신명기에서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도 믿지 않았고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역시 그 세대 사람들이 죽자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신명기의 말씀을 보고 그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은 성령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종교는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그 성령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한다고 하면서 창조주와 피조물이 인격적으로 교제를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4:26절을 보겠습니다. (신 173쪽)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누가복음11:13절을 보겠습니다. (신 112쪽)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제자들입니다.
처음에는 이 일을 깨닫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깨닫지를 못했는가 하면 그들은 아직 성령을 받지 않아서 그가 진리로 인도하시지를 않았고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일을 보고도 도무지 무슨 일을 하시는 줄을 알 수 없었습니다.
주님입니다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먹이시고 있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삼년 반 동안 제자들과 함께 다니시면서 계속해서 유월절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전에는 성령이 그들에게 오시지 않아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을 수 없어서 깨달을 수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요한복음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누가 이 생명에 대해서 깨닫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생명에 대해서 깨닫지도 못하고 있는 그들이 그저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한다고 하는 것으로 자기들에게 성령이 오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삼위일체를 믿고 있습니다. 당연히 삼위일체를 믿으니까 자기들에게 성령이 오셨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믿는데 안 오셨다면 그 믿음이라는 것이 거짓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성령이 오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14장에서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당연히 성령이 내 안에 오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반드시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셔야 받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영광을 받으신 후에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과 같이 몇 날을 기다리다가 오순절이 임하매 성령이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당연히 성령이 오십니까? 그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몇 날을 기다리다가 주님의 약속과 같이 오순절이 임하매 성령이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오심으로서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이 그리고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이 스바냐 선지자의 말씀이 미가 선지자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을 수 있고 사도 요한은 생각이 났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받습니까? 아니 삼위일체를 믿어서 당연히 성령이 오셨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도 14장에서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무조건 다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누가복음입니다.
성령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구하라 주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구하지도 않는데 그냥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습니까?
구하지도 않았는데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령이 오셔야 성경 말씀을 보고 그 말씀에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지금 제자들이 후에 성령을 받은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