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2,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누가복음15:7절을 보겠습니다. (신 121쪽)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병든 나사로입니다
그가 죽어 무덤에 있은지 나흘이 되었고 그는 죽어 벌써 냄새가 난다고 마르다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무덤을 열라고 하시고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고 말씀을 하시면서 그 무덤을 열고 나사로를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 일입니다
에스겔서에 있는 말씀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는 더욱 주님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하시는 분이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내가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이 시대 인생들의 지식으로 만든 삼위일체를 믿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도 증거를 하지 않는 것을 자기들이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성경을 볼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육의 일입니다
그것은 다 영의 일을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신 일이고 또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믿게 되었고 나사로에게 생명을 주심으로 해서 영광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봅니다.
우리는 이런 의미를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의미는 전혀 못 보고 그저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의 생각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으로 우리를 믿게 하실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지금 서울 하늘에 천사들을 보내서 표적을 나타내셔서 믿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다 이루신 것을 성경에서 알아감으로 해서 그러니까 진리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음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 안에 생명을 얻게 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세상입니다
죽은 나사로가 그것도 무덤에 있은지 나흘이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나기 시작을 하는 나사로가 살았습니다. 인간적으로도 기쁜 일이고 더구나 주님이 사랑하시는 마르다와 마리아에게는 너무도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육체의 일을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계속 말씀합니다.
우리 병이 치료가 되면 뭐 합니까? 설령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면 뭐 합니까? 우리 육체에서 그런 일이 있다 해도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병이 들었으면 영생을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이 시대 종교인들은 샤머니즘에 빠져 자기 병을 어떻게 하든지 고침을 받으려고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럴 시간이 있습니까?
그 시간에 차라리 주님께 은혜를 구하고 자기 생명에 대해서 구한다면 혹시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겨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왜 믿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생명을 모르니까 더욱 육체에 집착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고 그 육체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 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실제 성경에 있는 사건은 물론 다 육체로 하고 있다는 것을 제가 부인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절대로 부인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서 우리는 영의 일을 알아서 영생을 얻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 사건에는 다 메타포가 있고 그것을 알 수 있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고 그렇기에 우리는 반드시 성령을 받기를 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병든 나사로입니다
실제 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적인 병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그들이 영적인 병으로 뼈가 말라 무덤에 있는 것과 같은 영적인 상태를 비유로 해서 나사로의 병든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인간적으로도 너무도 기쁜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영적인 일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는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기쁜 마음에 바르다와 마리아가 잔치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인입니다
병든 것을 주님께서는 죄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고침을 받고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누가복음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사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병이 들어 죽어 무덤에 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무덤을 열고 그를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죄인인 나사로가 회개를 하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산 것을 기뻐해서 잔치를 하고 있지만 이 모든 일은 영의 일을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나사로의 병입니다
그것은 죄인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다 나사로와 같이 영적으로 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르러 이 세상에 오셔서 그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다시 말씀을 해서 생명 얻는 회개를 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11장4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그것은 기뻐할 일이고 잔치를 할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실제 마르다와 마리아가 주님을 위해서 잔치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입니다
교회 안에서 인간적으로 기쁜 일이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 교회마다 거의 다 잔치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기쁩니까?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나사로의 사건은 비유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비유의 말씀을 모르고 사도 바울의 말씀만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늘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영적인 일입니다
지금 나사로는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에스겔서에의 말씀과 같이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고 내 신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을 고토에 거하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누가복음의 말씀과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 나사로가 산 것을 가지고 잔치를 하지만 예수를 위하여 잔치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무덤에 있던 나사로를 그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고 그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고 고토에 거하게 하신 것을 잔치를 하는 것을 비유로 해서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인입니다
그 죄인이 회개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사로가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죄인이 회개를 하고 구원을 받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고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이 말씀을 보고 그 의미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으면 됩니다. 이제는 물론 죽은 자가 사는 일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회 안에서 자기들의 육체적으로 기쁜 일이 있다고 해서 잔치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사입니다
그 잔치를 하는 것을 제가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좋은 일이 있는 것으로 잔치를 하는 것은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영적인 일로 자기가 영적으로 어떤 체험을 하는 것으로 잔치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살아갑니까?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면 됩니다. 그들이 기뻐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즐거워하고 그들이 울면 같이 울면 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일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이 개입을 하신 것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잔치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잔치를 합니다.
그것은 죄인 하나가 회개를 하면 기뻐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주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병이 들어 죽어 무덤에 있는 나사로를 주님이 살리시고 그를 나오게 하심으로 해서 그가 주님의 양으로 생명을 얻은 것을 잔치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3:21절을 보겠습니다. (신 403쪽)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병든 나사로입니다
그가 죽어 무덤이 있은지 나흘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를 주님께서 무덤을 열고 다시 살려 나오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렇게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에스겔서를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주님은 에스겔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는 영적인 상태에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고 그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을 해 주셨습니다.
비유입니다
실제 일이지만 그것은 영적인 일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생명에 대해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산 것만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사로입니다
그가 죽어서 무덤에 있는데 그냥 그 무덤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육체가 무덤에서 나와서 다시 산 것으로만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그가 주님의 양으로 생명을 얻은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이 없을지라도 에스겔서에서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덤에서 나온 자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무덤을 열고 거기서 나오게 한 자입니다. 그에게 내 신을 준다는 말씀은 생명을 준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를 고토에 거하게 하신다는 말씀은 그가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사로의 사건입니다
요한복음만을 보면 절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의 뜻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서를 함께 보면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알 수 있고 나사로가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는 태동할 때부터 성경을 인용을 하는 것을 반대를 해서 사람들이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지 않고 있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비유입니다
그 사건의 문자를 보면 절대로 성경을 풀 수 없습니다. 지금 나사로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11장부터 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병은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있은지 나흘이 되어 벌써 냄새가 나는 것을 주님께서 그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신 것은 나사로를 주님의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입니다
우리 죄인이 구원을 받는 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루신 구속의 일로 영광을 얻으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아무리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모든 일을 이루셨다고 해도 주님의 양이 없다면 주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영광입니다
그것까지 주님이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사로를 통해서 그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남으로 해서 그 누이들이 주님을 위해서 잔치를 하고 있다는 것은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예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 잔치입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잔치를 하는데 있어서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자 중에 있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구원을 받은 자에게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기는 자가 되어서 성령이 일곱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과 같이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는 말씀과 같이 함께 앉아야 합니다.
그것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그것을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헬라어로는 이 앉은 자가 전혀 다른 단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그 의미가 같으면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성경을 봅니까?
단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의미가 중요하다는 것을 늘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전혀 다른 단어라 해도 실제 그 의미가 같은 말씀들이 성경에는 너무도 많이 있고 우리는 그 의미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서 믿음으로 해서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종교는 종교인이 되기 위해서 신학교를 가면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단어의 뜻을 아는데 시간을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인이 되기 위해서 신학교에서 거의 그 시간으로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무의미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것을 자기가 조금 아는 것으로 설교 때마다 히브리어 한 마디 그리고 헬라어 한 마디를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 단어의 뜻이 가지고 있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왜 다시 살리셨습니까? 마르다가 슬퍼하고 마리아가 우는 것을 불쌍해서 그를 살려 주셨습니까?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인간적인 교류가 있어서 그것을 생각하면서 나사로를 살려 주셨습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겨우 그런 일입니까?
그 일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을 지으시고 우리 인생들의 체질까지 아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깟 일을 하시기 위해서 우리 인생들과 같이 감성에 빠져서 일을 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신 목적을 10장에서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생명이라는 것을 모르니까 겨우 육체의 생명을 살리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주님과 함께 앉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계신 곳이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나사로를 통해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겨우 나사로의 육체를 살리신 것으로 그와 함께 앉아 있으신 것이 아니라 나사로는 주님께서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고 그에게 생명을 얻게 하셨기 때문에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고토에 함께 거하시는 것을 의미적으로 보여주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잔치를 하면서 앉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이 부활을 해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예를 해서 주님이 보좌에 앉는 것과 같이 우리도 함께 그 보좌에 앉게 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도 다 환상을 말씀을 한 것이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보좌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실제 보좌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왕의 보좌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감히 우리 같은 사람은 한번 앉아 보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그런 보좌라고 저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입니다
하늘의 형상을 입습니다. 우리가 입는 하늘의 형상이 어떤지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 그렇게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생각을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2:3절을 보겠습니다. (신 167쪽)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
유월절 엿새 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유월절에 십자가에서 운명을 하시는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사건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시고 이제 거의 모든 사역을 다 이루시고 며칠 남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 일입니다
그러고 나서 주님이 유월절 예비일에 제자들과 만찬을 드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 후에 이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고 나서 아버지께서 주님에게 주신 자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시고 나서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십자가형을 선고 받고 십자가를 지시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계시는 일입니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유월절 엿새 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유월절 엿새 전에 주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그 집으로 가셔서 마르다와 마리아가 베풀어 주는 잔치를 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냥 기록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이 말씀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고 심지어는 자기도 마리아와 같이 주님께 순전한 나드 한 근을 부어 드리는 것과 같이 하겠다고 하면서 종교 안에서 열심을 내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세가 율법에서 그리고 여러 선지자의 말씀에서 증거를 하고 있고 그 일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 믿음이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고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영의 일을 모르니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고 믿음이 없으니까 성경에서 증거를 하는 일을 알지 못하니까 실상이 될 수도 없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증거가 되지도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는 목적입니다
바로 이렇게 먼저 성령을 받은 사람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그것이 유월절이 되고 있고 그렇게 유월절이 지나면 오순절이 오게 되고 성령이 각 개인에게 오심으로 해서 들었던 말씀들이 이제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초적인 것도 모르니까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인생으로는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종교에 더욱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마리아입니다
그저 향유를 주님의 발에 붓고 있습니까? 자기 오라비 나사로를 살려 주신 일이 너무도 감사해서 지극히 비싼 순전한 나드 한근을 아까워하지 않고 잔치를 하면서 주님의 발에 붓고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서 그렇게 도움을 받으면 마리아와 같은 심정으로 지극히 비싼 나드 한 근을 주님의 발에 붓는 심정으로 무엇인가를 드려야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월절 엿새 전입니다
이제 예비일에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을 하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사 지내시고 죽은지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일에 대해서 마리아가 영의 일을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그대로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실제 일입니다
그 육의 일을 통해서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말씀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가 11장에서도 충분히 증거를 받았습니다. 바로 그렇게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야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하고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순전한 나드 한 근을 주님의 발을 붓는 일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12장3절부터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성경은 메타포입니다. 우리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고 그 언어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에서 하나님의 뜻을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이루시는 일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성경입니다
이방의 종교에 의해서 편찬이 된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교리에 따라 성경도 편찬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교리에 합리적이면 그것을 구약 성경에서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니까 모세의 율법에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에 예언이 되어 있지만 자기들의 교리 문제로 성경을 인용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11장입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시편의 말씀과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이 응하는 것을 우리가 증거를 받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에서는 전혀 인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역시 12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마리아가 주님께 향유를 붓는 일을 그저 지금 이 사건으로 보기 때문에 성경에서 인용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더구나 제사법이 폐해졌다고 하는 그들로서는 인용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30:34-36절을 보겠습니다. (구 130쪽)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을 취하고 그 향품을 유향에 섞되 각기 동일한 중수로 하고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 그 향 얼마를 곱게 찧어 내가 너와 만날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라 이 향은 너희에게 지극히 거룩하니라”
성전입니다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이미 성막론에 대해서 해석을 해서 올려 드렸습니다. 물론 예전에 해석한 말씀이라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하겠지만, 그 해석만으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는 제사법에 폐하여 졌다고 하면서 주님의 몸인 성막에 대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일에 대해서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인생들의 일을 통해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향품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향품입니다
누가 이 향품을 만들어서 회막 안 증거궤 안에 두어야 합니까? 실상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이 만들어서 대제사장이 들어갈 수 있는 속죄소 앞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출애굽기를 보면 너무도 쉽게 알 수 있고 그 향품의 의미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성전입니다
실상은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이기 때문에 그 성전에 이 향품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헤롯 성전에 출애굽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향품을 만들어서 두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철저한 율법주의자이고 우리가 앞에서 보아서 알겠지만 성경의 문자를 아는 그대로 행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향을 두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입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예언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성전에 대해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전이 하늘에 있는 모형과 그림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입니다
모형과 그림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보이는 것을 폐하시고 이제 마리아를 통해서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있는 향을 주님의 발에 붓게 하심으로 해서 출애굽기의 말씀이 응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향품을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는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을 취하고 그 향품을 유향에 섞되 각기 동일한 중수로 하고 그것으로 향을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이것은 실제가 아니라 하늘에 있는 모형과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향품 역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소합향
때죽 나무 과에서 추출물 또는 몰약 수지를 소합향이라고 합니다. 소합향은 성경에 딱 한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몰약의 수지라면 많이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찌 되었든 소합향은 때죽 나무에서 추출했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깨어나게 하는 향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말 합니다
나감향
바다에서 나는 조개 일종의 연체동물의 껍질에서 추출을 해서 향을 만드는데 이것을 태울 때는 쏘는 듯한 향기가 난다고 합니다. 지금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만들라고 하신 이 향품 역시 하늘의 모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풍자향
갈색을 띤 점성 액체로서 지중해 연안에 다년생 초본 식물인 페룰라 갈바니풀루아 라고 하는 식물의 수지를 풍자향이라고 합니다. 이 향은 혼합을 해서 사용을 하면 그 향기가 오래 동안 머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를 생각하면 안 되고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 가지 향을 유향에 섞어서 사용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향의 의미가 하나는 깨어나게 하는 향기고 또 하나는 쏘는 듯한 향기고 또 하나는 그 향기가 오래 동안 머물게 한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를 연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향품을 어디서 사용을 하는가 하면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향입니다
유향이 의미를 하는 것을 레위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매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향은 정결하다는 것을 의미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 향품의 의미를 깨달으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주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동방박사가 가지고 온 예물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유향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동방박사가 세 가지 예물을 가지고 왔는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세 가지 예물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을 취하고 그 향품을 유향에 섞되 각기 동일한 중수로 하고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대로 변경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법대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법에 따라 우리를 구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대로입니다
그 향품이 헤롯 성전의 속죄소 앞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이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는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 일을 다 이루셨다는 것을 증거를 하기 위해서 마리아를 통해서 주님의 발에 순전한 나드 한근을 붓게 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입니다
내가 너와 만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은 다 하늘의 있는 모형과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이제 휘장 안으로 들어가셨다는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내가 너와 만난다는 말씀은 바로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증거궤가 있는 곳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를 하고 있다는 것을 히브리서의 말씀을 보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향품은 어디에 있는가 하면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 향품과 같은 향기가 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합향입니다
이미 앞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깨어나게 하는 향기라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이 세상에 살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의 생명이 거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잠자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오실 때 깨어난다는 표현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감향
쏘는 듯한 향기가 난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사망의 쏘는 것을 의미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서는 다시 죽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를 하고 있습니다. 증거궤 앞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를 하고 있고 이 향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에서는 어떻게 되는가를 향기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풍자향
오래 머문다는 의미를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면 영원히 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이 향품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향기로 해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향입니다
정결함을 의미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거룩하신 곳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표현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입니다 다 이런 그림자를 통해서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금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은 하나님의 선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중수에 따라 섞어서 향품을 만들어서 증거궤 앞에 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그 증거궤 앞은 우리가 가는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휘장 안입니다
증거궤 앞에 놓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향은 너희에게 지극히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어 부활을 해서 가는 하나님 나라는 지극히 거룩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고 우리 성도는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그것이 실상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마리아를 통해서 순전한 나드 한근을 붓게 하는 일로 율법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가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순전한 이라는 헬라어의 단어는 신실한, 믿을만한(Artem.), 순수한, 진짜의, 섞인 것이 없는 등의 뜻이 있고 그 단어에서 보듯이 주님께서 이루신 일을 우리가 믿어 영생을 얻는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행위를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보고 종교 안에서 여자들은 이 마리아와 같은 행위를 하고 싶어 하고 있고 종교인들은 은근히 감성적으로 말을 하고 있고 그런 자기들의 행위를 하면서 마치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우리 성도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고 그 믿음이 실상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성경이 어떻게 응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그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좋게 보이려고 하다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대표입니다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이제 성전에 있는 향품과 같이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는 일을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그저 자기 지식으로 성경을 보니까 모세의 율법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떻게 완전케 하시는 줄도 모르고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고 있고 도리어 더 악한 일이 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마리아입니다
지금 자기 오라비 나사로의 육체가 다시 산 것을 감사해서 잔치를 하고 있고 지극히 비싼 향유 순전한 나드 한근을 주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있습니까? 거의 모든 종교인들이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조장합니다.
성경을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합리화를 시키고 종교성에 빠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 인생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가장 악한 일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합리화를 시키면서 그것을 행위로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이어서 말씀을 하겠지만 지금 이 일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신 일을 이루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증거를 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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