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1,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요한복음11:22절을 보겠습니다. (신165쪽)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병든 나사로입니다
주님께서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보낸 사람으로부터 그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로 가시지 않고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이틀을 더 유하시다가 유대로 가자고 하시면서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잠들었다고 말씀을 하시니까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밝히 말씀을 하시면서 나사로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로 가시니까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나흘입니다
한글개역성경 번역에서는 나사로가 죽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을 하기 위해서 이미 라는 부사를 써서 죽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했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한글개역성경은 히브리어나 헬라어보다 더 우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식을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자기의 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언어학자들이 한글에 대한 우수성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한글의 어휘력과 표현력은 어느 언어 보다 우수하다는 것은 학자들이 공통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데 있어서 성경에서 진리를 아는데 있어서 한글보다 더 뛰어난 언어는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대대로 히브리어를 사용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성경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저는 언어도 성경을 아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보내주셔도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부족하다면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데 있어서 그만큼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글은 좋은 언어고 우리는 한글을 통해서 영의 일에 대해서 의미를 알아 가는데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가난한 자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가난한 자는 물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11장을 보아서 알겠지만 베다니라는 마을 자체가 문둥이가 살고 있는 마을이라면 얼마나 빈민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주님을 영접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생명을 얻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많이 배웠겠습니까? 그들이 지식이 많이 있겠습니까? 도리어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지식이 있고 세상 적으로는 많이 배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누구를 찾아 오셨는가를 성경에서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입니다
자기들이 알고 있는 세상초등학문으로 그 알량한 지식으로 마치 성경을 알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지식으로 성경을 알 수 있었다면 유대인들 중에 바리새인들이 가장 먼저 주님을 영접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인생들은 너무 잘난 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행위로, 지식으로 잘난 것을 나타내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다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의 종교 역시 이제까지의 사람들이 교리로 만들어 놓은 것을 자기들이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마치 대단하게 성경을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대백과사전입니다
성경보다 더 두꺼운 책이 8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안다고 해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까? 제가 그 책을 물론 가끔 보고는 있지만 성경을 푸는데 있어서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의미입니다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비유로 기록이 되어 있고 그 문자를 보고 그것에 대한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문자로 보고 있고 또 자기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뜻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런 것으로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의미를 아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병든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우리는 혈과 육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만약에 연세가 많은 부모가 죽는다면 그렇게 슬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인생은 누구나 늙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형제입니다
그리고 자식입니다 부모가 죽는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거의 경험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나 자식이 죽는 것은 아직 그렇게 오래 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슬플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베다니입니다
빈민촌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바리새인들로부터 죄인으로 판단을 받고 살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셨고 마르다가 영접을 함으로 해서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누가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이 다시 유대로 와서 베다니로 오시니까 마르다가 나와서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가 하는 말이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을 주의 깊게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하고 늘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그저 쉽게 보고 있고 지금 마르다가 주님을 만나면서 하는 말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왜 오셨습니까?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제 뒤에서 주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하는 마르다지만 그녀는 아직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모르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입니다
이 세상에서 표적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오셨습니까? 병자를 고쳐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까? 이 시대 어느 교회들을 보면 교회가 아니라 마치 병원을 하는 것과 같이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마치 만병통치약을 먹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르다입니다.
그녀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바로 알았다면 주님을 보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합니까?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오라비 생명에 대해서 주님께 물었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아직 마르다와 마리아는 영의 생명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나는 주님께서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줄 압니다."”
육체입니다
사도 바울이 땅엣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위엣 것을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면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르다 입니다
주님을 만나고 나서 그녀가 하는 말이 무엇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나사로의 육체는 땅엣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지만 아직까지는 영의 생명에 대해서 모르고 있고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인생은 한번 죽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그러니까 죽지 않는 태초의 생명을 주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우리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아 주님께 자기 오라비의 육체가 죽은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말은 유대인들의 생각과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종교인들의 생각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일을 모르니까 마르다는 주님께 무엇을 구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요한일서5: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93쪽)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하나님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입니다. 유대인들도 그렇고 이방인들도 역시 하나님을 그렇게 알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맞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에 있어서는 저도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긍휼이 많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법대로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우리가 성경을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시면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노아의 홍수를 일으키셔서 사람들이 죄악에 관영을 하니까 노아 가족을 남기고 모든 호흡이 있는 것을 멸하셨습니다.
바벨탑을 쌓습니다.
그런 인생들에게 하감을 하시고 바벨탑을 무너뜨리시고 언어를 혼잡케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가 타락을 하자 불과 유황으로 그 성을 멸하시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할 때 그들을 당시 가장 강대국인 애굽에서 인도를 하시고 홍해를 가르고 건너게 하셨습니다.
한나 입니다
그가 기도를 하니까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에 의해서 위협을 받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물리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있는 이스라엘을 다시 본토로 돌아올 수 있게 역사를 하셨습니다.
다니엘입니다
사자의 굴속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풀무 불에 던져졌는데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이가 있어서 그들이 그슬린 흔적도 없이 그 속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제가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다는 것을 성경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신약시대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수많은 표적들을 나타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이제 하늘에 올라가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이런 표적과 기사를 성경에서 다 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이 오시니까 표적을 보여 달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로서 오신 자이고 하나님이시라면 표적을 보여 주셔야 할 것 아니냐고 하면서 그 표적을 보고 우리가 믿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방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말씀들을 성경에서 보면서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하면 이 시대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고 있고 실제 어느 교회에서는 그런 표적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을 마치 무슨 도깨비 방망이를 하나 얻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성령을 받은 것으로 은사를 이야기를 하면서 도깨비 방망이를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면서 교회 안에서 그것을 마음껏 휘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의 다 그렇습니다.
지금 마르다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가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까? 물론 지금 주님이 아직 살아계시는 동안이고 성경이 다 기록이 안 되어 있는 때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 있고 영의 생명에 대한 모든 말씀을 다 기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을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이 말씀들 외에 더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표적과 이적과 기사는 다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실제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물론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그것을 비유로 해서 우리에게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이 말씀이 성경에 많이 기록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도 구하라고 말씀을 하시고 있고 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대도 무엇이든지 구하면 얻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구해보지 않았습니까? 저 역시 종교인으로 살 때는 정말 많이 구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제가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주시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이 말씀을 하면 사람들은 제가 믿음이 부족을 해서 받지 못했다고 말할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믿음이 부족했습니까?
저는 정말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면서 구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까지 해 보았는가 하면 제가 사업에 실패를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원을 전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 수중에 있는 돈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남은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거금입니다
그 돈을 다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정말 간절히 기도를 하면서 아니 며칠을 밤을 세워가면서 기도를 하면서 제가 하고 있는 사업이 다시 일으켜 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더 이상 제게 돈이 들어올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게 있는 돈을 다 드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제가 그렇게 어리석었습니다.
그 후에 제가 금전적으로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가는 상상도 못할 정도라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제가 구하는 것에 대해서 무엇이든지가 아니라 명확하게 구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들어 주시지를 않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드릴 정도라면 어떠한 마음을 가졌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이 믿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제가 구하면 하나님께서 들어 주신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 모든 것을 다 걸고 하나님께 며칠을 밤을 세워가면서 그것도 금식을 하면서 까지 기도를 했습니다. 제가 믿음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이 말하는 그런 믿음은 저 역시도 충분히 있었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무엇이든지
얼마나 듣기에 좋은 말씀입니까? 제가 나쁜 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 위해서 아니 제가 조금 알고 있는 복음을 전하면서 살겠다고 하면서 제 목숨을 걸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그렇게 기도를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더 비참하게 저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 제 어리석음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이제는 깨닫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마치 도깨비 방망이를 얻은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무모한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모르면 어떻게 되는가를 저는 처절하게 제 몸으로 실제 겪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거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내가 구하면 진심으로 믿고 구하면 구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들어주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어리석음에 많은 사람들이 빠져 있고 종교는 그런 사람들의 이성적 생각을 이용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에 대해서 이제까지 계속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생명에 대해서는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들어 주십니다.
그 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들어 주고 싶어도 들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무엇이든지가 무엇입니까?
사도 요한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신 그 생명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는 바로 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 믿고 있습니다.
종교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도 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것은 주고 싶어도 하나님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이 모든 것을 주시고 다스리라고 하셨지만 아담은 사단과의 싸움에서 지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사단의 것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남의 것을 우리에게 주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마르다는 남의 것을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은 생명입니다. 어느 생명인가 하면 예수 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10장에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르다의 말입니다
그 말이 지금 맞는 말입니까? 절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주님께서 나사로를 살려 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다의 말과 같이 이제라도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주신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비유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는 것은 영의 일에 있어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생을 어떻게 얻는 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제자들로 생명에 대해서 믿게 하기 위해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 것도 주시지 않습니다.
무엇만 주십니까? 생명만 주십니다. 그리고 생명에 관해서만 관여를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그것도 성경에 다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보고 그 안에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생명을 얻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안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6:32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태복음7:7절을 보겠습니다. (신 10쪽)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르다가 믿음이 있습니까?
그녀는 아직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영의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녀가 주님께서 오신 목적을 알았다면 지금 주님께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여 내 오라비를 구원해 달라고 그에게 주님의 생명을 얻게 해 달라고 구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주님이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고 이제라도 주님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실 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내가 무엇을 구해야 하는 줄을 이제는 바로 알고 있습니다.
내 형제가 죽었습니까?
물론 주님이 이제는 안 계시기 때문에 그를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는 내 가족과 내 형제를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주님께 정말 이 생명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우리 성도들의 기도를 비유로 해서 금대접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금은 생명을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지기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시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재물입니다. 이 둘이 무엇인지를 이 시대 어느 누구도 깨닫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말씀을 하고 있고 재물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의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말씀을 합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행위는 그것을 잘 지키고자 하는 것은 다 이방인들이 그러니까 믿지 않은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그것들은 너희 천부께서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우리로 그 영의 일을 믿게 하심으로 해서 거룩함을 얻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내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배설물과 같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마르다가 말을 하고 있는 것도 누가 구하는 것인가 하면 믿음이 없는 사람이 구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시고 있습니다.
마태복음7장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무엇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반드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은 생명입니다. 그분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해도 남의 것을 우리에게 주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강도짓을 해서 빼앗아서 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마르다가 그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르다만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생명만을 주실 수 있는데 마르다는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더구나 마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을 하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물론 생명의 말씀을 하루 듣는다고 해서 다 깨달을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르다 입니다
그 오라비가 병이 들어서 죽었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제가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제가 누나하고 12살 차이가 나고 형하고는 9살 차이가 났습니다. 그런데 두 분 다 50살이 되는 해에 죽었습니다.
저도 그때는 그랬습니다.
제가 38살 되는 해에 누나가 죽었습니다. 그때의 심정은 지금 마르다가 주님께 말을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를 하고도 남습니다. 저라도 주님이 곁에 계셨다면 마르다와 같이 이야기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인생들의 감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정말 제 가지를 꺾어서 본성을 거스리는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이시지 않았다면 저는 아직까지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그저 종교인으로 살다가 마치 소가 푸주로 끌려가는 것과 같이 잠언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미련한 소년과 같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저 역시도 인생의 죽음이라는 것이 슬펐지만 이제는 생명에 대해서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이라는 것이 내 자식에게도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정말 기도를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무엇이든지를 주시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외에 어떤 것도 우리에게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만약에 그 외에 다른 것을 주실 것 같았으면 초기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육체의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모르면 어떻게 되는가를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위엣 것을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땅엣 것을 생각을 하고 그것을 정욕 적으로 쓰려고 구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을 구해서 얻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실 줄 압니까?
그런 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제 뒤에서 마리아도 역시 주님께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르다 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와 나사로입니다. 그들은 당시 바리새인들이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바리새인들과 같이 의인들에 의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이 실제 주님을 영접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생명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양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그들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나사로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자기 오라비가 죽어 장사 지내고 난 후에 주님을 만나고 나서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무엇을 주시는 가를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병든 나사로가 죽어서 장사를 지내 무덤에 있는 것을 다시 살리시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생명이라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 마르다와 같은 생각에 빠져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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