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2강, 바리새인에게 갔더라
요9장14절,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안식일입니다.
주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날도 안식일입니다. 그 안식일이 무엇인가를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입니까?
이 시대 종교인들이 지키고 있는 주일입니까? 이것들은 다 장래 일의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맞는 것도 아니고 주일이 맞는 것도 아닙니다. 안식일이나 주일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것을 가지고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안식일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대 종교인들이 지키고 있는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잘못입니까?
그것은 장래 일에 그림자입니다. 우리가 그림자를 보고 그것을 실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림자를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림자는 그림자로서 보고 있고 그 그림자는 실체가 나타나면 사라진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안식일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 종교인들이 지키고 있는 주일 문제입니다. 사실 문제가 되고 말 것도 없는데 모두가 소경이 되어서 주님께서 그렇게 반대를 하고 있는데도 안식일을 지키고 있고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날을 지키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어두움에 다니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장래 일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는 것을 순종치 않는 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만찬입니다.
예배를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반대를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그러니까 내 육체의 생명이 죽는 날까지 주의 만찬을 나누어야 하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해야 합니다.
제가 주일을 반대를 합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의 만찬을 먹는 것을 예배를 하는 것을 반대를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아니 주님이 말씀을 하신 대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한 날을 정해서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장래 일의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대 안식일을 지키는 교회가 있고 주일을 지키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 무엇인가 하면 장래 일의 그림자라는 말씀이며 주님께서는 죄를 범하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영적인 죄입니다. 구원을 받지 못하는 죄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하고 있는데도 계속해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일이라는 날, 안식일이라는 날을 지키는 그것 한 가지만으로도 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같고 그들은 유대인들과 같기 때문에 주님을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나는 아닙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런 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은 우리 이방인들의 예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에 따라서 우리 이방인 역시 똑같이 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성경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이 주일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주일이라는 날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주일에 대해서 반대를 하면 그들이 저를 이단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저는 바로 전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종교와 타협을 하는 순간 저 역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주일 왜 지킵니까?
사도 바울이 이렇게 반대를 하고 있는데도 주님께서 유대인들이 당신을 죽이신다는 것을 알고도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의 교리에 포승으로 묶여 있는 사람들에게 이 안식일이 그리고 주일이라는 날이 너무도 중요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교리로 정해졌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것을 버릴 수 없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과 같이 죄를 범하는 일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죄이기 때문에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안식에 들어오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종교에 빠져 안식일을 지키고 있고 주일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입니다.
성경을 보고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까?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는 문제로 유대인들이 주님을 죽이려고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그래도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시고 있습니다. 이 안식일이 주일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이 시대 종교인들이 절대로 주일을 지키지 않을 수 있는데 이미 율법주의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9:15절을 보겠습니다. (신 161쪽)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 어떻게 보게 된 것을 물으니 가로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또다시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그분이 내 눈에 진흙을 바르신 다음에 내가 눈을 씻었더니, 이렇게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안식일입니다.
주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이 안식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 안식일이라는 날에 병자를 고쳐 주심으로 해서 주님이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는 것을 계속해서 나타내시고 있지만 종교에 빠져 있는 유대인들은 생명을 얻기 위해서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물론 안식일은 십계명에도 기록이 되어 있고 율법에도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반포하신 것은 우리 인생들에게 지키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지키심으로 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겠다는 언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반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다 지켜 행하겠다고 하나님과 언약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체질을 너무 잘 알고 계십니다. 율법으로는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을 육체가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라고 하겠습니까?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신다면 하나님은 불의하신 분이 되고 또 이중성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는 율법을 주시고 우리에게 지키라고 하시고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다면 속된 말로 우리 인생들을 창조하시고 가지고 논 것 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너무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하나님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경을 보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몰라서 믿지 못했다고 하고 있고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히브리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성경을 주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빼내 주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주셨습니다. 또 이 시대를 보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머리가 좋은 민족인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인생들의 기준으로는 유대인들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들보다 머리가 나쁜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알겠습니까? 더구나 그들의 성경을 번역을 해서 보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들은 어떻게 해도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성경을 보면서 마치 유대인들은 지혜가 없어서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자기들은 지혜가 있어서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다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유대인들에게 지혜를 더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은 우리의 예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더 지혜가 있는 유대인이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율법주의에 빠진 것을 우리 이방인들이 성경을 보고 경계를 삼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지만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꽤나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본성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이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쉽게 말을 해서 강도짓을 하고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그 역시 법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대답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지식이고 지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문제는 그 성경을 사람의 이성으로는 볼 수 없게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기록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으로는 어느 누구도 이 생명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더라도 이제까지 주님께서 생명에 대해서 계속해서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림자입니다.
율법은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자라는 말씀은 비유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문자를 보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림자에서 의미를 알지 못하니까 그냥 문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다수에 의해서 종교가 되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는 누군가 한번 만들어 놓으면 점점 그 세력이 더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을 해서 사단은 우리 인생들을 사망에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의 이성에 따르는 종교를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은 알아서 그리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왜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이미 주님께서 8장에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영의 일을 모르고 마귀의 자식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면서 너희 아비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종교를 싫어하십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유대교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교리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종교가 되는 순간 율법은 자연스럽게 세워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하다못해 친목회를 만들더라도 정관이라는 법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가 되면 그 법은 점점 더 많아지고 거대해지기 시작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다양성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종교는 하나로 통일을 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로 통일을 하는데 있어서 율법만큼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하고 그래서 유대인들은 종교가 되었고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일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조상 대대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여러 종파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도 그리고 전승에 의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경에서 알고 있듯이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교리가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율법을 지키는 것에 있어서는 같았습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의 종파가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는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다릅니다.
그것으로 종파를 만들고 있습니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부활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우리가 성경에서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여러 종파가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는 같습니다.
그러나 교리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는 대표적으로 칼뱅주의와 알미니안주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같은 것이 있는데 바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는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는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종파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죄를 범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죄의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를 못하고 그저 교회에 나가서 맹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교입니다.
바리새파가 가장 세력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수의 유대인들이 바리새파의 가르침에 따라 갔던 것으로 성경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소경이 눈을 뜬 것을 보고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에게 데리고 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이 주님의 표적으로 밝은 눈으로 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이 사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바리새인들에게 가고 있습니다. 그가 자기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인가를 알고 싶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제가 이 시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기존에 다니고 있는 교회가 있고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우연히 그리스도편지에서 복음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볼 때는 이 말씀이 맞는 것 같은데 확신이 서지 않으니까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를 가르쳤던 종교인들에게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들은 종교인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자기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쉽게 말을 해서 세상 말로 맨붕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능한 사람의 이성을 따라 반대를 하게 되고 그러면 사람들은 그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전에 소경이었던 사람을 바리새인들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전에 소경이었던 사람에게 어떻게 해서 눈을 뜨게 된 것을 물어 보고 있고 전에 소경이었던 사람은 계속해서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9:16절을 보겠습니다. (신 161쪽)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 더러는 말하기를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그는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였고, 더러는 "죄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러한 표징을 행할 수 있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 의견이 갈라졌다.”
바리새파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유대교의 한 종파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유대교를 만들었고 점점 더 종교에 빠져 들어가고 있던 때에 율법이 절정을 이루고 있던 때에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그래서 어두움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빛을 비춰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오셔서 이 세상에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유대인들은 종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종교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이 무엇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방의 종교가 그렇지 않은 것과 같이 보여도 실제 유대교와 같은 상황이 오면 똑같아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도 유대인들이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심으로 여긴다고 말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 까지 했습니다. 자기들도 이사야9장6절의 말씀을 알고 있고 구약에 예언이 되어 있는 말씀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도 요한은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고 나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종교가 되면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들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 남들이 보아도 바리새인들보다 더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 없게 보이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영생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종교에서 지키고 있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을 더 크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왜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종교의 교리가 더 소중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일에 모든 것이 집중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영생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까? 조직신학이라고 하는 책을 보시기 바랍니다. 종교인들이 되기 위해서 신학교를 가면 가장 중요하게 배우는 것이 조직신학이라는 책입니다. 그런데 그 책에서 주님이 말씀을 하시고 있는 생명에 대해서 전혀 언급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종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의 교리에 따라 자기들이 인간적인 지식으로 배운 것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교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그가 하는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영의 일이다보니까 사람의 이성으로 깨달을 수 없고 그래서 종교가 되어 있는 집단은 자기들이 모르는 것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이성적 지식으로 아는 것을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옳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떤 일을 하셨는가 어떤 말씀을 하시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에 소경이었던 사람이 밝은 눈이 되어서 사람들이 데리고 왔지만 그것보다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20:8절을 보겠습니다. (구 113쪽)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히브리서4:3절을 보겠습니다. (신 356쪽)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안식일입니다.
십계명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안식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씀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종교인들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안식일에 행위를 통해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말을 합니다.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안식일이 너무도 중요하고 안식일에 거의 모든 율법을 지키고 있는데 그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그러니까 성경에서 율법에 없는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안식일을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지키고 있는 안식일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고 그 실체가 무엇인가를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 말씀합니다.
이 시대 주일을 지키고 있는 종교의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은 안식일을 안 지킨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이 얼마나 무지한 말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나 주일을 지키는 것이나 한 날을 정해서 지키고 있으면 그것은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날에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림자입니다.
무슨 말씀인가를 모르고 있습니까? 우리가 그림자를 보고 있습니다. 빛을 비추면 어떤 형상에 그림자가 생기게 되어 있고 우리는 그것을 그림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그것이 실제와 같이 보일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림자라는 말씀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의미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형상입니다.
그림자를 통해서 보는 것은 실체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저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안식에 들어가려면 우리에게는 태초에 있는 생명이 있어야 하고 그 생명은 거룩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까?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까? 주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까?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주일이라고 하면서 안식일과 다르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림자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광야에 나와서 안식일을 자기들의 육체로 거룩하게 지킨 것은 그림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장래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안식일을 평생 지켰습니까?
주일을 모태에서부터 지키면서 살았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에게 생명이 있습니까? 도리어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는 유대인들을 보고 죄를 범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면서 죄의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하면서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린 아이들까지 이 십계명을 외우게 하고 있고 다 외운 아이들에게 상을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는 이렇게 그림자를 보고 그것을 자기 육체의 행위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이 안식일을 그러니까 지금 지키고 있는 주일을 장래 일의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자입니다.
그것을 보고 실제라고 우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리새인들은 그림자를 보고 주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면서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셔서 그의 안식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는데 그래서 나면서부터 소경인 우리 인생들을 예표로 해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해서 밝은 눈으로 보게 하셨는데 장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인생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인생의 시간만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시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 인생의 시간과 같이 년과 달과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직선이라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 직선입니다.
거기서 보면 지금 누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까? 구원을 받지 못한 그러니까 태초의 생명을 얻지 못한, 생명의 빛에 비췸을 받지 못한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어떻게 들어가셨는가 하면 휘장 사이로 난 길로 우리를 앞서 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우리 죄인들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창조주가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피조물들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까?
장사 된지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사십일 동안 보이시다가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휘장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그리고 앞서 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에 들어가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안식일을 지키셨습니다.
거룩하게 지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에 빠져 영의 일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은 주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자기들이 그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함으로 해서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영의 일을 깨닫지를 못하니까 성경에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그대로 행하는 자기들이 안식일을 지키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주일을 지킵니까?
그들이 주일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죄를 범하고 있고 죄의 종이 되어서 그의 안식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입니다.
그것의 장래 일이 무엇입니까? 저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장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우리를 안식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빛을 비춰주심으로서 우리가 그의 안식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두움에 다니고 있는 유대인들이 주님을 보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안식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이 없다면 그는 아무리 이 세상에서 자기 육체로 거룩하게 안식일을 지켰다 해도 안식일을 지킨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 시대 안식일을 지키고 주일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그의 안식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자기들의 육체로 지키고 있고 그것을 주님께서는 생명에 있어서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1: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37쪽)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자들입니다. 그리고 모든 판단을 율법에 의해서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일입니다. 자기들의 육체로 지키는 것을 보고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바리새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종교인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다른 바리새인들이 말을 합니다.
그래도 주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일을 좋게 생각을 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어떻게 말을 하고 있습니까?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것을 죄라고 하면서 주님께서 안식일에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것을 죄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죄인입니까?
안식일을 문자 그대로 자기들의 이성에 따라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이 죄인입니까? 그의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이 죄인입니까?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의 안식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전혀 모릅니다.
안식일을 그리고 주일을 지키는 사람들이 그것이 죄인지를 전혀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자기들이 지키는 것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안식에 들어오라고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안식일을 그리고 주일을 지키면서 그것이 범죄가 되어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이 밝은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것을 두둔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누가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주님이 죄인인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죄인으로서 어떻게 그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지만 생명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누가 죄인인가를 전혀 모르고 피차 쟁론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까지 바리새인으로 살면서 율법을 지키고 산 그것을 죄라고 하면서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인입니다.
우리는 누가 죄인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가 바리새인으로 살 때는 알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알지 못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영의 일에 대해서 그리고 생명에 대해서 알지 못한 것이 죄인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경입니다.
주님은 세상의 빛입니다. 그러나 이 생명의 빛을 못 보는 그 자체가 죄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생명을 얻지 못하게 하는 모든 율법의 행위가 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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