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16:30-34절을 보면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이 모든 일을 행하니 이는 방자한 음부의 행위라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 네가 누를 모든 길머리에 건축하며 높은 대를 모든 거리에 쌓고도 값을 싫어하니 창기 같지도 않도다 그 지아비 대신에 외인과 사통하여 간음하는 아내로다 사람들은 모든 창기에게 선물을 주거늘 오직 너는 네 모든 정든 자에게 선물을 주며 값을 주어서 사방에서 와서 너와 행음하게 하니 너의 음란함이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함은 행음하려고 너를 따르는 자가 없음이며 또 네가 값을 받지 아니하고 도리어 줌이라 그런즉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인생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영의 일을 이스라엘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이스라엘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그들은 처음부터 우리 이방인들을 위한 예표와 경계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처음부터 버리셨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구원을 하기를 원하셨지만 우리 피조물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정말 성경을 보는 시각부터 바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단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선택하셨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 인생들 전체를 보아야 하는데 마치 인생들은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인생은 자기가 아는 것 까지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 역시 인생이라는 것에 있어서는 똑같다는 것을 말씀을 합니다. 제가 지금 이 시대 종교인들보다 인간적으로 뛰어나서 복음을 깨닫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심으로 해서 성경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성경을 보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제가 다른 인생보다 뛰어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심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도 인생입니다. 그리고 우리 이방인들 역시 인생입니다. 인생들은 차별을 두려고 하고 있고 무엇인가 자기가 특별하다는 말을 듣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인생들 전체를 한 혈통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은 인생은 전체가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리고 지식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뛰어나고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인정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인생이라는 한계 안에서 그렇게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면 요즘 집에서 강아지를 많이 기르고 있는데 어느 강아지는 진짜 사람이 보기에도 너무도 똑똑하고 사람과 유대감과 소통을 하는 것과 같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아지입니다
그 강아지가 우리 인생과 같이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기억을 하고 지식을 습득하고 책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강아지에 비하면 정말 놀라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것 뿐입니다.
그렇다고 사람입니까?
절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인생들 중에서도 여러 가지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는 운동으로 누구는 예술로 누구는 지식으로 누구는 정말 잘 생겨서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릅니까?
그들을 인생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정말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종교 안에만 들어가면 인생들은 자기가 특별한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말씀에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셨다는 문자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르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을 보고 우리는 경계를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육체의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육체를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체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에 있어서는 같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마치 강아지가 정말 똑똑하게 행동을 한다고 해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이 모든 인생은 다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 즉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선을 행하는 자도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의 일이 아닙니다.
육으로 보면 욥과 같은 사람도 있고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살면서 율법으로는 흠이 없다고 한 것과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인생의 육체고 마치 강아지가 특별하게 보이듯이 인생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다시 말씀을 하지만 강아지를 사람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경계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육의 일에 있어서는 이스라엘과 우리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에 있어서는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그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이스라엘을 보고 우리가 경계를 삼아야 하는데 인생들은 자기들의 언어로 기록이 된 성경을 철학적 지식으로 보고 있고 그런 사상이 마치 이스라엘과 다른 것으로 오해를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30.“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이 모든 일을 행하니 이는 방자한 음부의 행위라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가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으면 우리 역시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바벨론이라는 나라는 없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고 저 역시도 알고 있습니다.
포로입니다
그런데 무슨 뜬금없이 포로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이스라엘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저도 이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부정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제가 이상한 이야기를 합니까?
다시 말씀을 하지만 이스라엘의 육의 일을 보고 우리의 영의 일을 경계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육으로만 보면 우리는 포로가 아니고 이스라엘과 전혀 다른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다르다고 하면 그 사람은 성경을 볼 필요도 없고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무슨 말씀을 하는가를 전혀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도 역시 자기들은 특별한 민족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에스겔16장 시작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말씀이 맞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가나안에서 태어났습니까? 물론 애굽에서 인도를 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온 사람들의 후손들은 가나안에 났습니다. 그러나 네 아비가 아모리 사람이고 네 어미가 헷 사람이라고 하는 말씀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십니까?
우리가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시는가 하는 것을 상고를 해서 모르면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비유입니다
실제가 아니라 영적으로 그렇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주를 받은 가나안 사람과 같이 이스라엘도 역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비유로 해기 위해서 위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 사람이라고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가나안에 있는 족속은 다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을 생각하셔서 그들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셨는데 그들은 저주를 받은 아모리 사람과 그리고 헷 사람과 같이 되었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합니까?
그렇게 실제 이스라엘의 육체를 보고 영의 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그는 소경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또 이 말씀이 단지 이스라엘에게만 하는 말씀이 아니라 이방의 종교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경계를 삼고 지혜를 구하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철학적 지식입니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철학적으로 더 뛰어나면 날수록 더욱 그렇게 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이 와서 경계로 말씀을 해도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듣지를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5:19절을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나라이기도 하지만 교회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는 이스라엘은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예루살렘이 왜 멸망을 당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이 모든 일을 행하니
이미 앞에서 다 말씀을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이 설교 한편에서 말씀을 하기 에는 너무도 많은 말씀을 해야 합니다. 16장을 시작하면서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 사람이라고 하는 말씀에서 그들이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주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일을 비유로 해서 그러니까 그들이 율법의 행위를 함으로 해서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육체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보낸 것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와서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을 보고 이 편지를 보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켰다는 것을 에스겔16장을 시작하면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그들의 아비가 아모리 사람과 같이 그리고 그들의 어미가 헷 사람과 같이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습니까?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 날에 교회라는 건물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다 육체로 하는 일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의 종교인들은 자기들의 종교 안에서 교리로 정해서 하는 일은 육체로 하면서도 육체의 일이 아니라고 하고 있고 율법이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뭐 어쩔 수 없습니다.
자기들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것을 아무리 말씀을 해도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평생을 율법을 지키면서 주님의 말씀과 같이 주여 주여 하면서 불법만 행하다가 음부로 내려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것을 의지를 하면서 종교는 교리를 만들어서 주일도 육체로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하고 있고 그 주일에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고 헌금을 하고 전도를 하고 하는 행위들을 육체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데는 더 이상 논쟁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일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하는 일이 음행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인생들이 육체로 하는 일이 음행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이 아무리 자기들의 종교의 교리에 따라 철학적 지식으로 아니라고 해도 성경이 그렇다고 말씀을 하면 저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입니다
방자한 음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일을 증거를 받아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인생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문자를 아는 것으로 육체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에스겔 선지자는 이는 방자한 음부의 행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까?
인생의 철학적 지식입니까? 어느 것을 따른다는 것을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방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도 주일이라는 날에 그리고 여러 가지 날과 절기를 지키면서 그 날에 자기들의 육체로 온갖 음행의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육체의 일이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육체의 일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하면서 서로 칭찬도 하고 간증도 하면서 그 일에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음행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육체적으로 관계를 갖는 것을 음행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 정도는 초등학생 고학년만 되도 다 아는 것입니다. 신학을 7년 이상 공부를 하고 성경을 수십 번 읽었다고 하는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더 이상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들의 눈은 소경이 되어서 이런 말씀들이 보이지가 않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까지 종교 안에서 자기들이 육체로 하는 행위를 하는 것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는데 그것이 음행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들은 세상 말로 맨붕에 빠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입니다
그들이 율법주의에 빠져 육체의 일을 하는 것을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음행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라는 교회를 비유로 해서 음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일부의 사람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전체가 이스라엘이라는 교회 전체가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성경은 이미 이스라엘을 경계로 해서 이방의 교회를 음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음부가 되었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육체로 주일이라는 날에 온갖 행위를 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아마도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종교는 더욱 더 육체의 일을 많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6:13절을 보면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예루살렘입니다
그들은 지금 이 시대 교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이 모든 일을 행하니 이는 방자한 음부의 행위라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하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합니다.
육체적으로 약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믿음이 무엇인지 그 기초도 모르면서 자기들이 믿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믿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믿음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영의 생명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우리 인생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말씀이고 그 일을 믿는다는 것은 보통 담대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입니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상태에서 믿는다고 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에게 율법을 지키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왜 그리 약하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받아 믿는다는 것이 이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종교를 만들고 그 안에서 의식적인 행위를 하고 있고 그것을 보면서 스스로 믿음이 있는 것으로 안위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그렇게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왜 그렇게 약하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답게
구원을 받은 성도를 남자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깨어 굳게 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하는 사람들은 율법의 행위를 하게 되어 있고 그것을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네가 이 모든 일을 행하니 이는 방자한 음부의 행위라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하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아니 율법대로 살고 있습니까? 그것이 사람의 철학적 지식에는 강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굳게 서 있는 성도가 볼 때는 그것은 너무도 약한 인생들의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진리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철학적 지식입니다. 그 차이가 이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령이 오셔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깨어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철학적 지식에 따라 육체로 종교적인 의식을 하고 있고 그것을 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자기들이 강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 육의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을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인생들의 한계는 자기들의 언어적 지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자기들의 언어로 성경에서 보고 아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다 육체로 의식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31.“네가 누를 모든 길머리에 건축하며 높은 대를 모든 거리에 쌓고도 값을 싫어하니 창기 같지도 않도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네가 길 머리마다 높은 단을 만들어 놓고, 길거리마다 누각을 세워 놓고, 몸을 팔면서도, 네가 화대를 받지 않으니, 너는 창녀와 같지도 않구나!”
비유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행위를 했습니다. 그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산당을 만들어 놓고 또 지금으로 하면 교회라는 건물을 지어 놓고 또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형상을 만들어 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는 것들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행위입니다.
네가 길머리마다 높은 단을 만들어 놓고, 길거리마다 누각을 세워 놓고, 몸을 팔면서도, 네가 화대를 받지 않으니, 너는 창녀와 같지도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세상의 창녀는 자기 몸을 팔아서 돈을 벌기라도 하지만 영적으로 음행을 하면 몸도 빼앗기고 영혼까지도 빼앗긴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입니다
정말 얼마나 많은 십자가가 세워져 있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교회 간판이 세워져 있습니까? 그것 뿐 아니라 길거리 마다 전도를 한다고 하면서 온갖 행위를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아니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행위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입니다
내가 육체로 하는 모든 행위입니다. 그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세상의 창기 같으면 화대라도 받는데 너희는 화대도 받지 못하는 영적인 창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창기보다도 더 불쌍하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인생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스스로가 가장 지혜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세상의 창기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얼마나 대단하게 자부심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육체의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그것이 인생이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정말 이런 비유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상고를 하고 깨닫고 있다면 다시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거대한 종교 안에 들어가는 순간 소자가 되어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끌려가면서도 세상 창기보다도 못한 일을 하면서도 자기가 지혜롭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32.“그 지아비 대신에 외인과 사통하여 간음하는 아내로다”
로마서7:3-4절을 보면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아내입니다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교회를 비유로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지아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비유로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남편과 아내에 대해서 내가 교회와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이 이제 죽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히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음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있고 그 날에 자기들의 육체로 온갖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자기들이 육체로 그런 행위를 하면서도 그것이 율법이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간음한 아내입니다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라는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방의 교회 역시 간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자기들이 어떻게 간음을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육체로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하는 행위를 율법이 아니라고 하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구원의 문제입니다
영의 일을 깨닫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종교 안에서 간음하는 행위만 하다가 음부로 내려가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예표로 해서 그들이 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바벨론이라는 율법의 포로가 되어 있으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인생들에게는 없습니다.
33.“사람들은 모든 창기에게 선물을 주거늘 오직 너는 네 모든 정든 자에게 선물을 주며 값을 주어서 사방에서 와서 너와 행음하게 하니”
창기입니다
세상의 창기는 자기가 돈을 받으면서 행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하면 자기가 돈을 주면서 행음을 하게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정곡을 찌르는가를 다시 깨닫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자기들의 교회를 그리고 종교를 전하기 위해서 거리로 나와서 별의 별짓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열심으로 돈을 내서 여러 가지 선물을 만들어서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주고 있고 그 일을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자기들의 종교와 교회를 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정말 이 시대를 보면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 들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 창기는 그래도 자기들이 몸을 주고 선물을 받기라도 하지만 종교 안에서 자기들이 육체로 행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돈을 주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종교입니다
얼마나 잘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인생들은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 성경을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아니 이스라엘은 창기 짓을 했어도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하면서 더욱 육체의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34.“너의 음란함이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함은 행음하려고 너를 따르는 자가 없음이며 또 네가 값을 받지 아니하고 도리어 줌이라 그런즉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하니라”
우리나라입니다
한 때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미주의 선진국들이 돈을 가지고 와서 구제를 했습니다. 그들의 교회가 복음을 전한다는 미명 아래서 정말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다른 여인과 같이 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돈을 주면서 그 일에 얼마나 열심을 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종교 역시 마찬가지로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자기들의 종교의 교리를 전하고 있고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이 세상의 창기보다도 못한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는 대단한 자존감을 가지고 육체의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음부입니다
그리고 창기입니다. 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그러니까 육체로 일을 하는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육체의 일을 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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