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97,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윤주만목사 2019. 6. 8. 08:21


97,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갈라디아서 5:22-26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과유불급 [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지나치는 것은 모자라는 것과 같다는 말의 뜻입니다

할머니가 오랜만에 본 손자를 사랑해서 밥을 퍼 주는데 큰 공기가 넘치도록 퍼 준다면 손자는 그것을 보는 순간 질려서 오히려 밥을 먹기가 부담스러워 집니다.

 

차라리 조금 덜 주는 것이 좋습니다.

덜 주어서 배가 고프면 나가서 무엇을 요기라도 할 수 있지만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 나면 오히려 적게 주는 이만 못 합니다. 아마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한두 번쯤은 해 보았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간증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해서 너무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사로서 사역지에서 격은 일들을 이야기를 하는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받아들이다가 탈이 나서 고생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그 전도사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쥐가 빠져 죽어 있는 물로 밥을 해 주는 것을 억지로 먹었습니다.

 

물론 사역지에서 한 영혼에 대해서 때로는 그런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아야 하는 것은 내 어떤 행위로 그런 사랑을 보임으로서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 율법주의 적 사고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역자도 사람입니다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 하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저도 이제는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서는 제 아들이 물을 마셨던 컵에 물을 마시지 못할 정도로 비위가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제 아들도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어린 나이에도 제가 물을 마시는 컵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가 지금 저를 싫어하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대학을 다니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자기 아빠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먼저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좋아하는데 있어 물론 조건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는 거의 이유가 없습니다. 한번 좋은 감정을 가지면 그가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다 이해를 하고 좋아하고 한번 나쁜 마음을 가지면 그가 나에게 아무리 좋게 대해도 그 마음을 의심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내가 좋아 하는 사람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싫어하는 사람을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나에게 특별한 무엇을 해 주어서 좋아하는 것 보다는 그냥 좋고 그냥 싫은 것입니다 그렇게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갖는 것은 그의 행동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이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기준이 어떤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을 사는 동안 내 안에 축척이 되어 있는 사고 적 기준이 있어서 그 기준에 합당을 하면 그가 나에게 어떻게 대하든 간에 무조건 적으로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세상 사람들이 그를 다 칭찬을 해도 싫어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흉악범을 모두가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가 불쌍한 생각이 들고 오히려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돕고 싶어집니다. 보통의 기준으로 보면 나도 분명히 그를 향해서 손가락질을 해야 하는데 내 안에 있는 사상이 그를 측은하게 여기게 만들고 오히려 그를 감싸 안고 싶어집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오늘은 제가 성령의 열매를 다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 중에서 맨 마지막에 나오는 절제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하고 싶습니다.

 

9가지 성령의 열매는 다 압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고 또 그것이 성도들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이 성령의 열매를 누가 맺는 것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성령의 열매는 내가 맺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맺어 놓으신 열매들입니다 그 열매가 성령을 통해서 우리 성도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을 해서 맺는 열매가 아니라 이미 맺어 놓은 열매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금지할 법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데 그것을 막을 어떠한 법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이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서 나를 통해서 이 성령의 열매들이 나타나는 것을 어는 누구도 금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자기가 맺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9가지 성령의 열매 중에서 한 가지라도 자기가 맺었다고 자신 있게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저를 비난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어떤 사람도 이 열매를 우리 스스로는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열매들을 맺어 주시고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서 우리에게서 나타나고 있다면 말씀입니다

 

맺으라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맺을 수 있는 열매라면 반드시 성경은 우리에게 맺으라고 말씀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맺을 수 없는 열매를 예수님께서 맺어 주시고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는 성도를 통해 나타나게 하시는 그것을 금지할 법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성령의 열매들을 맺어 주시고 난 후에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도들에게서 이 열매들이 나타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실제 성령의 감동을 받는 성도들에게서는 이 열매들이 나타나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역사하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열매에 대해서는 다 잘 압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제가 사랑이 무엇인가 희락이 무엇인가 화평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지 않아도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중학교만 나왔어도 이 단어들의 뜻은 다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절제입니다

성령의 열매 9가지를 말씀을 하면서 맨 마지막에 절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절제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처음에 말씀을 드렸지만 할머니가 손자를 너무 사랑해서 밥을 공기 가득이 쌓아서 퍼 준다고 하면 그것은 절제가 안 된 것입니다

 

절제[節制]

정도에 넘지 아니하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하는 것을 절제라고 합니다.

아이가 밥을 어느 정도 것 먹어야 하는데 사랑한다고 밥을 공기 가득히 쌓아 주는 것은 절제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절제가 안 되면 어떤 결과가 빚어지느냐 하면 아이가 탈이 납니다.

 

절제가 무엇이냐면 내가 50을 하면 되는데 자기 분수에 지나치게 100을 하려고 하면 그것은 절제를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50이라는 은사를 주셨는데 사랑이 좋다 해서 100을 하려고 한다면 그는 절제를 못하는 사람이 되고 오히려 그 사랑으로 인하여 복음이 장해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한국 교회는 절제가 안 됩니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처럼 사랑이 좋다고 하면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 모르고 무조건 사랑을 하려고 합니다. 희락이 좋다고 하면 마치 미친 사람처럼 히죽거리고 있습니다. 화평이 좋다고 하면 물불을 안 가리고 화평을 하려고 애를 씁니다.

 

성령의 8가지 열매는 많이 하면 할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좋다 해도 절제가 안 되는 순간 그것은 폭주하는 기관차가 되어서 큰 사고를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을 하면서 살아야겠지만 그것이 절제가 안 되는 순간 내 사랑을 받는 그 사람은 오히려 부담이 되어서 내가 전하는 복음을 외면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미쳐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더구나 성령의 열매라면 무조건 적으로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절제가 안 되고 오히려 절제를 말하면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겠습니다.

예배가 절제가 안 되고 있습니다. 미국 교회나 서방의 교회들과 우리나라의 교회들과는 예배를 드리는 날이 너무 차이가 납니다. 히브리서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과 같이 하지 말라는 그 말씀 하나만을 보고 그저 목적도 없이 드리는 예배를 많이 드리면 좋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너무 많은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그 시대적 배경을 두고 한 말씀인데도 무조건 모이는 것을 좋아 합니다.

 

그것이 자랑이 될 수 없는데도 마치 그것이 큰 훈장이라도 되는 양 자기들이 하는 행위를 보고 구원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제가 안 되는 그 순간 성령의 모든 열매는 헛것이 된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을 하면 뭐할 것입니까? 절제가 안 되어서 그것을 받는 이웃이 부담이 된다면 그것은 차라리 하지 않느니만 못 합니다. 과유불급입니다

 

충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 이스라엘과 다를 것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도 십자가에 못 박을 그런 충성심에 불타 있습니다. 아마 이 시대에 예수님께서 오셨다면 분명히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든지 아니면 테러를 해서라도 죽였을 것입니다

 

절제가 안 되면 그렇게 하고도 남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시대 왔다면 아마 이단으로 공격을 받고 매장을 했을 것이 뻔합니다. 왜 그런가는 성경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8:13절을 보면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사도 바울은 서신 서에서 율법이 폐해졌음을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는 율법은 죽은 전 남편이라고 말씀을 하고 우리는 이제 새 남편 복음의 남편에서 시집을 왔으니까 율법을 버리고 복음을 따라 살라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에서는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헛될까 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도 바울이 견딜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그렇게 전하면 이 시대 충성심에 불타 있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을 어떻게 하든지 제거하려고 했을 것이 뻔한 일입니다 무조건 충성을 해야 하는데 그 충성하는 것에 대해서 절제를 말씀을 한다고 하면 공격을 받을 것이 뻔합니다.

 

전도에 미쳐 있습니다.

그리고 해외 선교에 미쳐 있습니다.

내가 이런 표현을 쓰니까 마치 제가 전도와 선교를 반대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교회들을 보면 제가 미쳤다고 하는 말이 절대로 틀리지 않습니다. 절제를 하지 못하는 행위는 미친 것입니다

 

절제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에는 성령의 열매뿐만 아니라 예배도, 기도도, 봉사도, 헌신도, 찬양도, 이런 모든 것도 절제를 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인하여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절제를 못하는 모든 행위들은 결국 자기 영혼을 사망으로 빠지게 하고 또 다른 영혼까지 그렇게 만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행위들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와 같습니다.

그런 자동차를 타고 있는 사람의 결말이 어떠하다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질주하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는 결국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에 만듭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성경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하는데 왜 사도 바울은 성령의 열매를 말씀을 하고 난 후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겠습니까?

 

바로 절제를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누구를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까?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모든 것이 바로 내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라고 하니까 마치 영으로 하는 일로 생각하는데 이 모든 열매는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내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열매에 욕심을 부립니다.

그리고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스스로 정욕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이 열매들을 맺기 위해서 교인들이 얼마나 욕심을 부리고 그것을 하기 위해서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것도 정욕입니다

그리고 억지로 하려고 하는 것 역시 욕심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성도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인데 그것을 맺기 위해서 욕심을 부리고 스스로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제가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지 말라는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열매가 너무 좋기 때문에 절제를 하지 못해서 욕심을 부리고 정욕에 사로 잡혀서 교회 안에서 더 많은 열매를 맺으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복음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우리를 통해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절제가 되어야 하며 절제가 되지 않는 순간 욕심과 정욕이 싹트게 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이 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그것에 대해서 욕심을 부리는 순간 죄가 되고 그것이 장성하게 되면 사망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을 보면 절제가 되지 않아서 욕심이 가득하고 또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마저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를 절제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그것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우리에게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야 하지만 그것마저도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기 바랍니다.

 

자기의 의가 되고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그것을 자랑하느라 십자가에 못 박지를 못 합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가 하나라도 나타나면 더 많은 열매를 맺고 싶어서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하고 어떻게 하든지 자랑을 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열매도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나를 통해 나타난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는 그 욕심과 정욕까지도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구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열매를 다 맺었다 해도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절제가 안 되니까 십자가에 못 박지 못 합니다.

절제가 되는 성도는 자기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모든 성령의 열매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자들은 그것을 어떻게 하든지 자랑하려고 합니다.

 

성도를 통해서 반드시 이 열매는 나타납니다.

금지할 법이 없다고 말씀을 하는 것은 성령이 감동을 하시면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막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성도를 통해 행위로 나타나는 이 성령의 열매를 우리는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리고 욕심을 내고 정욕에 빠질 것이 아니라 그것마저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고 은혜를 사모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절제하시기 바랍니다.

나에게서 사랑의 열매가 나타나면 감사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남이 하는 온유의 열매 화평의 열매 또 다른 열매를 맺기 위해서 욕심을 내지 마시고 나를 통해 나타나는 단 한가지의 열매라도 감사를 하고 또 그것을 내 것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열매는 말씀 그대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자가 얼마나 어리석은 자입니까? 그리고 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욕심을 부리고 또 정욕을 이기지 못해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행위들은 그것의 주인이 볼 때 아주 괘씸한 자입니다 내 것으로 알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선물로 나타나게 하신 것임을 아시고 기쁘게 행하시고 그것을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자랑하는 자입니다

남이 귀한 보석을 자기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을 마치 자기 것으로 자랑을 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성령의 열매는 내가 맺은 내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맺으시고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는 열매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우리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성도입니다

이 열매들은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 나타내 주시고 있는 열매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자기 것으로 오해를 하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성령으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육체의 정욕과 욕심에 사로 잡혀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행한 성도는 그것이 성령을 통해 나타난 역사이기 때문에 결코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를 마치 자기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은 한 가지 열매만 나타나도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견디지를 못 합니다.

 

성령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비록 나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지만 그것이 성령의 열매라는 것을 아는 성도는 절대로 내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어리석은 교인들은 이 성령의 열매를 자기 것으로 여기고 욕심과 정욕에 빠져 그 열매를 억지로 맺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맺을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오직 성령께서 감동을 주셔야지만 나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열매입니다 이 열매가 좋다고 하니까 욕심을 부리고 있고 또 자기 정욕을 이기지 못해서 이 열매를 맺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쓰고 있습니다. 그렇게 맺은 열매는 오히려 자기 영혼을 파멸로 가져가고 맙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이 성령의 열매도 헛된 영광입니다

내가 이 모든 열매를 설령 맺으면 무엇 할 것입니까?

내 욕심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지를 못해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이 모든 열매도 헛된 영광이 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을 나쁘다고 하는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성도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이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나 이 열매도 내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헛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맺기 위해 서로 격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교인들 통해 이 열매가 풍성히 나타나면 서로 투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면 이 열매를 마치 구원과 같이 연결을 시키고 있기 때문이며 또 이 열매가 나타나는 사람들이 자랑을 하고 있고 또 교회에서 칭찬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를 통해서 이 성령의 열매가 풍성히 나타나야 하지만 그것이 마치 구원의 열매처럼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을 내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그런 행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거절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를 자기 것으로 알고 또 남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열매를 너무 부러워해서 욕심을 내고 정욕에 사로 잡혀서 그것을 어떻게든 나타내려 하다가는 오히려 자기 영혼을 사망에 빠뜨리게 만들고 또 다른 사람의 영혼까지 불행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절제하시기 바랍니다.

욕심과 정욕에 빠지는 이유는 바로 절제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이만큼 주셨는데 사람이 욕심을 내고 더 많은 열매를 맺으려고 하고 또 정욕을 이기지 못한다면 그는 모든 열매를 풍성히 맺었다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열매가 나타나기를 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반드시 성도가 해야 하는 일은 이 열매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영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풍성히 임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