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65강, 이 이방인 외에는

윤주만목사 2019. 5. 22. 06:22


65, 이 이방인 외에는

 

누가복음 17:11~19절을 보면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너무 자주 듣는 설교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사람들이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를 해야 한다면서 이 말씀을 인용을 해서 설교를 아주 많이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마리아 사람과 같이 감사하는 신앙인이 되라고 하면서 감사를 주장하고 싶을 때 이 말씀은 너무도 좋은 말씀입니다

 

성도가 감사하는 것 당연한 일입니다

아니 교회에 나와서 자기가 은혜를 입은 것을 아는 성도라면 감사를 하지 말라고 해도 자원하는 심정으로 감사를 하는 것이 성도들입니다 감사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서 우러나올 때 참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감사[感謝]의 사전적인 뜻은

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 또는 고맙게 여기는 그런 마음을 감사라고 합니다.

이것이 감사입니다 내가 어떤 물질이나 선물을 가지고 주는 것이 아니라 고마워서 인사를 하고 또 고마운 마음을 가지는 그것을 감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감사를 이야기 하는데 있어 물질을 포함시키는 순간 그것은 감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내가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치료에 감사하다고 치료비를 준다면 그것은 감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어떤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도움에 감사를 해서 물질이나 선물을 주는 것은 한 마디로 뇌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감사를 말할 때 꼭 물질을 결부시켜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감사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추운 겨울에 겉옷이 없는 거지에게 겉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지가 그 옷값이 얼마냐고 묻고 돈을 준다고 하면 아마 거지에게 겉옷을 입혀 준 사람의 마음이 상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아니 다시는 그 거지에게 어떤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밥을 대접하기 위해서 집으로 들였는데 그가 밥을 먹고 나서 감사하다고 하면서 밥값을 계산하려 한다면 거지를 도와 준 사람은 오히려 민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것을 당연히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감사를 모르는 아주 나쁜 사람으로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어떤 존재인가를 모르고 거지 주제에 따뜻한 옷을 얻어 입고서 그 옷값이 얼마냐고 하나님께 물으면서 그 옷값을 지불하고 있으며 그것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부자이십니다.

부자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몇 십억을 가지고 있는데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이 있어서 쌀을 사서 보태 주었는데 그것을 받은 사람들이 쌀값을 지물을 하겠다고 한다면 과연 여러분이 다시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습니까?

 

마음으로 감사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사람들이 쌀값을 물어 보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 앞에 와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한다면 그 부자는 또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진심으로 자기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지 정말 감사하다고 하면서 쌀값을 주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사가 아니라 오히려 부자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이든지 물질로 해결을 하려고 하는 신앙인들의 생각이 얼마나 하나님을 모멸하는 가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그는 감사를 하고도 지옥에 가는 불쌍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자기를 멸시하고 모멸감을 주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천국으로 인도하시겠습니까?

 

제가 감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하나님으로 받은 축복에 늘 감사를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 감사로 인하여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수 있기 때문에 축복을 받았으면 그만큼 감사를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누가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또 누가 강제적으로 강요를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 감사입니다

 

어린아이들 같습니다.

아니 어린아이 취급을 하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감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가르친다고 하면서 성경 말씀을 이용을 해서 자기들이 유리한 대로 해석을 해서 은근히 강요를 하고 있다면 그렇게 요구하는 사람이나 또 감사를 하는 사람이나 모두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를 하기 때문에 반드시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성경을 바로 해석을 못하면 죽습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또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은 교회에 나와서 평생 충성을 다 했어도 그는 버림을 받게 됩니다.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미 예수님의 소문이 다 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하는 그런 기적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문둥병자 열 명이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니까 소리를 치면서 자기들을 불쌍히 여겨서 고치 주시기를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치료해 주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만약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 소리를 치면서 자기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치료해 주시면 반드시 자기들이 걸린 문둥병이 고쳐질 것이라고 확신을 했습니다.

 

이 사건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사람과의 만남은 우연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는 것이지 그냥 우연히 예수님께서 이 열 문둥이를 지나쳐 가시다가 만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그뿐 아니라 이용을 당하는 자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용해서도 안 되고 또 이용을 당해서도 안 됩니다 이용을 하는 자도 지옥에 가지만 이용을 당하는 자도 역시 지옥에 간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열 문둥이를 다 고쳐 주셨습니다.

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예수님께서 너희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하니까 이 열 문둥이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사장에게 보이러 가는 중에 자기들의 문둥병이 다 나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만 고친 것이 아니라 열 사람 모두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한 사람과 아홉 사람의 행동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은혜를 따랐고 다른 아홉은 율법을 따라가 갔습니다.

한 사람은 이방인이고 다른 아홉은 유대인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을 분명히 이방인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아홉은 모두 유대인이었다는 말씀입니다

 

나머지 아홉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까?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할 것입니다 마치 그들이 그냥 집으로 들어간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율법이 아주 성행했던 시대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한 말씀을 이해를 해야 합니다.

 

레위기 13-14장은 문둥병에 대한 규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둥병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으며 지금 아홉 명의 유대인 문둥병자는 바로 이 율법의 규례에 따라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 그대로 제사장에게 보이러 갔습니다.

 

레위기 13:3절을 보면

제사장은 그 피부의 병을 진찰할지니 환처의 털이 희어졌고 환처가 피부보다 우묵하여졌으면 이는 문둥병의 환처라 제사장이 진단하여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이요

 

문둥병자의 진단을 누가 합니까?

문둥병이 걸린 것도 제사장이 진단을 하고 또 그가 문둥병에서 나았을 때도 제사장이 진단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둥병이 걸린 사람은 제사장이 진단을 해서 마을에게 격리를 시켰으며 그렇게 살다가 문둥병이 다 나은 사람은 반드시 제사장이 나았다고 해야지만 집에 들어가 살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보고 그가 문둥병이 걸렸으면 부정하다 해서 마을에서 쫓아내서 문둥이들만 사는 곳으로 격리를 시켰습니다. 지금처럼 의사가 있어서 또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어떤 조치를 취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제사장에 의해서 그를 부정하다 하면 그가 따로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레위기 14:19-29절을 보면

또 제사장은 속죄제를 드려 그 부정함을 인하여 정결함을 받으려는 자를 위하여 속죄하고 그 후에 번제 희생을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번제와 소제를 단에 드려 그를 위하여 속죄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정결하리라

 

문둥병이 나았으면 제사장이 그를 살펴보고 나았다고 선언을 해 주면 그는 정결함을 받기 위해서 번제와 소재를 단에 드림으로 해서 그가 정결케 된다는 말씀입니다 문둥병자가 재물이 없으면 힘이 미치는 대로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를 드려서 반드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난 후에야 마을로 들어가 함께 살 수 있습니다.

 

내가 문둥병이 나았어도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마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반드시 제사장에게 가서 진단을 받고 난 후에 제사를 드린 후에야 마을 공동체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규례를 하지 않으면 문둥병이 나았어도 다른 사람과 접촉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율법입니다

나머지 아홉은 이 일을 하러 지금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누가 더 사례를 했겠습니까? 예수님에게 온 사마리아 사람과 제사장에게 간 유대인들 중에 누가 더 감사를 하고 사례를 했겠습니까?

 

제사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자기 문둥병이 다 나은 것을 진단을 받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면 반드시 어린 숫양을 속제로 드려야 합니다. 물론 힘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비둘기를 대신해서 드릴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께 와서 빈손으로 사례를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홉 명의 유대인은 자기 힘에 닫는 대로 어린 숫양을 드렸을 것이고 또 비둘기를 드렸을 것입니다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 사마리아 사람은 바로 돌아왔기 때문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문둥이는 격리 되어 살았습니다.

그 당시 돈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격리 되어 있는 문둥이들에게 마을 사람들이 때가 되면 음식을 근처에 놓고 가면 그것을 먹고 살았습니다. 멀찌감치 사람들이 와서 음식을 놓고 가면 문둥이들이 그것을 가져다가 나눠 먹으면서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산 것이 바로 당시 문둥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제사장에게 가다가 자기가 문둥병이 난 것을 알고 예수님에게 돌아와 사례를 했습니다. 그가 무슨 돈이 있어서 예수님께 사례를 했겠습니까? 사례를 했다는 말씀은 어떤 재물을 드린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감사를 표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물질과 연결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문둥이는 설령 재물이 있었다 해도 사람들이 사는 곳에 갈 수도 없었고 또 재물이 있다 해도 그것으로 무엇을 살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그저 입을 옷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사람이 무슨 돈이 있어서 예수님께 사례를 했겠습니까?

 

그런데도 마치 재물로 사례를 한 것처럼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유대인 아홉은 제사장들에게 가서 병이 나았다는 진단을 받고 난 후에 어린 숫양을 제물로 드리든지 아니면 비둘기를 드리면서 감사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이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개로 취급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설령 사마리아 사람이 문둥병이 나아서 제사장에게 보인다 해도 쫓겨났을 것이 뻔합니다. 정상적인 사람도 함께 제사를 드리는 것을 부정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더구나 문둥병에 걸렸다 나은 사람을 제사장들이 받아주고 그를 위해 제사를 드려 주었겠습니까?

 

사마리아 사람은 갈 곳이 없었습니다.

제사장에게 가 보아야 문전 박대를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가 나은 것을 보고 예수님에게 돌아 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사마리아 사람은 제사장에게 갈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 와서 사례를 한 것이고 유대인들은 율법을 따라 제사장에게 간 것입니다

 

하나는 예수를 찾아올 수밖에 없는 처지였고 나머지 아홉 사람은 율법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 율법에 따라 제사장을 찾아 갔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율법이 있는 사람은 율법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율법과 상관이 없는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를 찾아 올 수 있었습니다.

 

함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열 사람 모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있는 사람들은 그 율법에 따라 행해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오는 것 보다 더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는 사마리아 사람은 율법에서 배척을 받았기 때문에 다시 와서 예수님께 사례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고 말씀 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다 지고 가셨습니다. 모두가 고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열이라는 숫자는 사람의 완전수를 나타내는 수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직도 율법에 속해 아홉 명과 같이 제사장에게 보이려고 가는 사람이 있고 한 사람은 율법을 따라 가려고 해도 율법에 의해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갈 수 없어서 예수님에게 오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모든 사람은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다릅니다.

아직도 아홉은 오직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매임을 받아서 그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가 나음을 받았을 때 아홉은 물질로 감사를 드리려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는 이방인인 이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는 한 사람의 사마리아 사람보다는 아홉의 유대인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은혜를 입고도 주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아 불쌍히 여김을 받고도 아직도 율법을 따라가고 힘쓰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다수를 이루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다 율법에 의해서 행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내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내가 구원을 받았는데도 아직도 율법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율법을 따라 가고 있는 사람이 아홉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려야 하는데 율법에 따라서 감사를 표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다수를 이루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7:15-16절을 보면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사마리아 사람만 왔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올 수 있었던 것은 율법에 의해서 버림을 받았고 또 설령 제사장들에게 가 보아야 문전 박대를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다시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홉은 나은 것을 몰랐겠습니까?

그들도 똑 같이 나은 것을 알았지만 그들에게는 더 급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사장들에게 보이고 제사장의 진단에 따라 정결케 되는 규례를 행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 그리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함께 은혜를 입었지만 율법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그 율법에 의해 자기가 받은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이 문둥병자가 무엇으로 사례를 했습니까?

아무 것도 예수님에게 드릴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마음으로 사례를 하고 감사를 표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이용을 하면서 마치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에게 무슨 물질로 감사를 드린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두가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재물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서 거의 물질과 연관을 시켜서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감사를 하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 배를 채우려고 하는 거짓 선지자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그것에 이용을 당하는 사람도 똑 같이 영적인 범죄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속았습니다.

나중에 가서 그런 말이 안 통합니다.

지혜가 부족하거든 구하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하면 반드시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는데도 율법에 미혹이 되어서 지혜를 구할 생각도 안하다가 나중에 가서 저 사람 때문에 속았다고 해 보아야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교회에 왔다가 버림을 받는 사람들을 향해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속이는 자와 속는 자는 똑 같습니다

물론 속이는 자가 나중에 더 큰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속는 자가 죄가 없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며 이런 말씀을 가지고 이용을 하는 사람들에게 미혹을 당하지 않도록 늘 깨어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율법을 따라간 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은 율법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 다시 와서 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내 안에 율법이 있다면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긍휼을 입고도 하나님께 절대로 영광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이 없어야 합니다.

율법이 있는 자는 긍휼을 입고도 율법을 따라가지만 율법이 없는 이방인은 긍휼을 입고 예수님을 찾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율법이 너무 성행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것이 영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율법이 없는 이방인은 예수님을 다시 찾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문둥병만 낫는 긍휼을 입은 것이 아니라 그 영혼까지도 구원을 받는 영광에 참예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긍휼을 입고도 율법을 따라간 나머지 아홉 사람은 비록 문둥병은 나아 평안한 삶을 살았을지라도 그 영혼은 구원을 받지 못 했습니다.

 

오직 예수께 와야 합니다.

우리는 율법에게로 가면 안 됩니다

교회에 나온 것은 정말 주님으로부터 긍휼을 입은 대단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와서 율법을 따라간다면 그는 교회 안에서 평안한 삶을 살았을지라도 그 영혼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가 누구를 찾고 있는 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와서 평안한 삶을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그 영혼까지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