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 -

로마서 강해 134강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윤주만목사 2018. 9. 5. 23:07


로마서 13:3절을 보겠습니다. (257)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권세가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왜 권세가 있는가 하면 권세에 굴복을 하게 함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을 하고 있습니다.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는데 믿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다 이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영생을 믿게 하기 위해서 권세에 굴복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권세는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께서 정하셨기 때문에 굴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께 로서 이 권세가 나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대로 은사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 은사자들에게 굴복을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권세들에게 굴복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권세들에게 굴복을 하지 않고 있고 도리어 사람에게 굴복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권세들을 성령을 통해서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해도 그에게 굴복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는 권세에 굴복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권세들입니다

그것을 로마서12장에서 은사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은사에 굴복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은사에 대해서 그리고 권세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알아야 권세에 굴복을 할 수 있는데 모르니까 굴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거스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권세에 굴복하는 것이 어렵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이 아주 쉽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우리 입에 있고 우리 마음에 있어서 누구나 다 권세에 굴복을 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를 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누구라도 할 수 있게 하나님께서는 재능을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그 재능을 모르기 때문에 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다보니까 권세에 굴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권세를 거스리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권세에 굴복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떠한 행위인가를 모르고 하나님의 명을 거스리면서 심판을 자취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얼마나 쉽습니까? 예언을 하는 자가 있어서 복음을 전하면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아서 믿는 것이 권세에 굴복을 하는 일입니다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권세에 굴복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굴복이라고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성경에 기록을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 말씀을 보고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믿지를 않고 육체의 소욕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거스립니까?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육체의 소욕을 행함으로 해서 위에 있는 권세를 거스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의 소욕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의 소욕을 거스리면서 이 둘이 서로 대적을 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에 굴복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이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고 있는 그 문장만 보다보니까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육체의 소욕을 행하면서 권세를 거스리고 있지만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권세를 정하셨는가 하면 권세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권세가 나타남으로 해서 그 말씀을 듣고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12장에서 말씀을 끝내고 다시 13장을 보면서 권세가 전혀 다른 말씀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장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 이 서신을 보냈을 때는 장절이 없었습니다. 장절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모든 첨삭이 되어 있는 것도 없었습니다. 후에 성경을 편찬하는 신학자들이 사람들이 편리하게 볼 수 있게 장절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12장에서 말씀이 끝나고 13장에서 새로운 말씀으로 시작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12장에서는 하나님이 은혜대로 은사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13장에서는 마치 뜬금이 없이 권세라는 단어가 나오다보니까 더욱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연결입니다

모든 성경은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성경은 성경이 서로 인용을 하면서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12장의 말씀을 연결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권세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고 우리는 그 권세에 굴복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권세에 굴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스리면서 하나님의 명을 거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것을 요한복음에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명령은 영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으려면 반드시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을 해야 합니다. 권세들에게 굴복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육체의 소욕에 빠져 하나님께서 정하신 권세를 거스리면서 하나님의 명을 거스리고 있습니다.

심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스리는 사람은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심판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남의 집에 불구경 하듯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시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릴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치안관들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에게만 두려움이 됩니다.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거든, 좋은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그에게서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비유입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말씀이 비유인가 문자 그대로인가를 먼저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분별이 안 되면 성경을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그렇게 다르게 해석을 함으로 해서 권세를 거스리게 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면서 심판을 자취하게 됩니다.

세상의 일입니다

세상에는 관원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관원이 있습니까? 세상에 이성으로 선한 사람들이 잘 살게 하고 있고 악한 사람들을 감시를 해서 그들도 하여금 세상에서 악하게 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관원이 있습니다. 지금 3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선한 일과 악한 일은 세상의 이성적인 판단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경찰관이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치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경찰관을 보아도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은 경찰관이 곁에 지나가기만 해도 왠지 모르게 불안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교회 안에도 관원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관원들은 선한 일에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해서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131절에서 각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각 사람이 권세를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교회 안에 있는 세상에 권원과 같은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하면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을 하면 두려움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권세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권세를 모르는 사람은 전혀 해당이 안 되는 말씀입니다 권세를 알아서 그 권세에 굴복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권세에 굴복을 하는 것은 선한 일을 하는 것이고 권세에 굴복을 하지 않는 것은 악한 일인데 세상에 이치로 따져도 악한 일은 두려움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골로새서1:16절을 보겠습니다. (324)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성경이 어렵습니다.

늘 성경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정말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그 말씀을 제 생각에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글로서 말로서 표현을 한다는 것이 때로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늘 느끼고 있습니다.

권세입니다

이 권세가 누구에게서 왔습니까? 그것을 골로새서에서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고 알 수 있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위에 있는 권세나 이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창조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관원이 누구입니까? 이 세상의 관원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관원이 있습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그 관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나를 치리하고 다스리는 자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선한 일을 하면 그 관원에게 두려움이 없지만 내가 악한 일을 하면 관원에게 두려움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일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영의 일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관원에 대해서 먼저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이성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내가 복음을 알고 있다고 해서 세상의 이성까지 무시해 버려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그 이치를 바로 알아야 성경에서 말씀을 볼 때 복음을 바로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습니다.

그가 누구든지 마찬가지입니다 경찰이냐 선생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관원이라고 하고 있고 선한 일을 하면 두려움이 되지 않지만 악한 일을 하면 두려움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먼저 알고 영의 일을 생각하면 됩니다.

권세들이 있습니다.

그 권세에 굴복을 하는 것은 선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권세에 굴복을 하지 않으면 악한 일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로 따져도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관원이 두려움이 되지 않고 있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관원이 두려움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그것을 골로새서에서는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권세가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선한 일을 하는 것은 권세들에게 굴복을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악한 일을 하는 것은 권세에 거스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권세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가 되고 있습니다. 그 복음에 굴복을 하는 것은 선한 일이고 거스리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권세를 압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내가 선한 일을 하는지 악한 일을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세상의 이치로 따져도 선한 일을 하면 관원에게 두려움이 되지 않고 있고 악한 일을 하면 관원에게 두려움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입니다

이 시대는 선한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권세들이 이 복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권세들에게 굴복을 하는 것이 선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이치를 따라 생각을 해도 두려움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한 일입니다

그것은 권세를 거스리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지를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이치로 따져서 그가 악한 일을 했으면 세상의 관원을 두려워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권세들입니다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권세들을 세우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세우셨는가 하면 예언으로, 섬기는 일로, 가르치는 일로,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일로, 다스리는 일로, 베푸는 일로 해서 각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각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권세에 굴복을 해야 합니다. 왜 굴복을 해야 하는가 하면 그 권세를 다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권세를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은혜대로 우리 성도들에게 은사로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을 통해서 나타남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악한 일을 하면 심판을 받습니다. 이것은 굳이 교회에 나오지 않더라도 이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권세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악한 일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세상의 이치를 따라 관원이 두려움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3장입니다

먼저 권세들을 알아야 합니다. 권세들을 모르면 이 말씀은 도무지 풀리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권세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까지 로마서를 강해를 한다고 하는 그 사람들의 글을 보아도 권세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앞에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깨달아야 뒤에 있는 말씀이 풀어질 수 있습니다. 앞에 있는 말씀을 모르는 상태에서 뒤에 있는 말씀을 보면 마치 소경과 같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앞에 있는 말씀을 모르니까 성경에 첨삭이 되어 있는 제목부터가 그리스도인과 세상 권세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 권세입니까?

지금 사도 바울이 세상 권세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분명히 성경에는 위에 있는 권세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신학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 권세라고 자기들의 이성으로 생각하면서 성경에 첨삭을 해서 모두가 성경을 그렇게 보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것이 풀리지 않으면 재앙입니다 자기 혼자만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자기들 마음대로 첨삭을 해 놓아서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눈을 소경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성경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첨삭이 되어 있는 그 제목을 먼저 보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것도 성경말씀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어느 한 사람의 열심이 성경을 첨삭함으로 해서 후에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눈을 소경이 되게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신학자라고 하는 그 유명한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도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성경을 알 수 있습니까?

사실 제목을 보는 순간 우리는 성경을 풀 수 없게 됩니다. 아니 더 이상 생각할 필요조차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 제목을 보면서 아주 쉽게 그리스도인과 세상 권세를 생각하면서 보면 성경이 문자 그대로 해석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권세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권세에 굴복을 하는 것을 선한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권세들을 거스리는 것을 악한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관원을 비유로 해서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두려움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권세들 자체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다보니까 선한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악한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한 일을 하면 그것을 알고 두려워해야 하는데 교회 안에서 권세들에게 굴복을 하지 않고 있으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상대를 알아야 그 상대를 보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또 만만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한 일을 하면서도 전혀 두려움이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악한 일을 하는 사람도 관원을 두려워하는데 교회 안에서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권세에 굴복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권세들에게 거스리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지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도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욥기42:3절을 보겠습니다. (80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이 세상에서 욥보다 더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산 사람이 없습니다. 욥기에서 그의 고백에서 보아서 알겠지만 그는 정말 자기가 왜 고난을 당해야 하는 줄을 전혀 몰랐습니다. 아니 도리어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정말 욥은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그 정도로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는 제가 굳이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욥기를 통해서 우리가 충분히 알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순전함입니다.

그리고 정직함입니다. 욥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자기보다 하나님을 잘 믿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고 욥을 책망하시자 그가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회개를 하고 있습니까? 자기가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욥은 무지한 자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기전에 욥과 같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욥이 왜 무지합니까? 그는 선한 일이 무엇인가 그리고 악한 일이 무엇인가를 전혀 몰랐습니다. 자기가 행한 악한 일을 가지고 선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겠다고 한 사람입니다

욥이 선한 일을 했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욥보다 더 선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선한 일이 무엇인가 악한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두려움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겠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입니다

그들도 선한 일을 하면 관원을 두려워하지 않고 악한 일을 하면 관원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선한 일이 무엇인가 악한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두려워하지도 않고 회개도 하지 않습니다.

무지합니다.

성경말씀에 대해서 무지한 자가 되면 어떻게 되는 가를 우리는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로마서를 보면서 권세를 세상 권세로 알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정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권세인데 그것을 세상 권세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선한 일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악한 일을 알고 있습니다. 관원의 두려움이 되지 않으려고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악하게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모르면 자기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이 주먹을 날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관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선하게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욥과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을 하면서 권세들에게 굴복을 하지 않고 도리어 거스리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기독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성경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의 육체의 일이 아닙니다. 육체의 일로 보는 순간 그는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13장도 육체의 일로 보느냐 영의 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성경이 풀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보는 성경부터가 첨삭이 되어서 육체의 일로 만들고 있습니다.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무지한 자입니까? 순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았다고 하는 욥이 무지한 자입니다 지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다 욥과 같이 살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선을 모르고 악을 모르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합니다.

모르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알면 자기가 권세들을 거스리면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13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권세들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면 권세를 거스리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권세들을 알고 있으면 세상에서 악을 행하면 관원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돈키호테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돈키호테가 되어 있습니까? 지금 사도 바울은 권세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관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가 선을 행한다고 하면서 세상의 관원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도입니다

이것이 금지가 되어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 가서도 자기가 선한 일을 한다고 하면서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권세에 굴복을 하는 일입니까? 전도는 권세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돈키호테와 같은 일을 하면서 두려워하지 않고 있고 객기를 부리고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있습니까?

영생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행위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무지한 생각인데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닌데도 자기들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면서 억지로 해석을 해서 망하는 길고 가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무지합니까?

사실 그들은 자기들이 선한 일을 한다고 하면서 거의 막무가내로 다른 나라에 가서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선한 일을 하니까 세상 관원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지에서 나온 객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선한 일인지 악한 일인지도 모르니까 그런 객기가 나오고 때로는 참혹한 일이 발생이 되는데도 그것을 도리어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욥과 같이 세상 말로 하나님과 맞장을 뜨자고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관원입니다

세상의 이치를 따라 우리는 그들이 생각하는 선한 일을 하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를 따라 아니 관원이 생각하는 것을 따라 악한 일을 했다면 우리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2:5절을 보겠습니다. (114)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권세입니다

다 하나님께서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권세들을 통해서 각 사람을 굴복하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권세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세를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세상 권세입니까?

우리가 세상 권세를 두려워해야 합니까? 물론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악하게 살지 말고 선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의 사람이 아니라 영의 사람이기 때문에 설령 그들이 우리의 믿음을 핍박을 한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관원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영의 사람이라고 해도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정한 법 안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고 우리가 천국을 사모하면서 살아가는 그것에 있어서는 세상 권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권세를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권세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세상 권세를 두려워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그들이 정해 놓은 법대로 살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이미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권세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왜 두려워해야 하는가 하면 그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육체를 죽이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고 내 영의 생명의 주권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권세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권세에 굴복을 하지 않고 거스리면 어떻게 됩니까?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옥에 던져 넣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권세를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는 권세를 거스리면 지옥에 던져 넣게 되기 때문에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이치입니다

관원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가 정해 놓은 선한 일이 있고 악한 일이 있습니다. 그가 정해 놓은 선한 일을 하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그가 정한 악한 일을 하면 두려워하기 마련입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권세를 하나님이 다 정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권세에 굴복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기 때문에 선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권세를 거스리면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거스리기 때문에 악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권세를 거스리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권세를 거스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을 주님께서 누가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옥에 던지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을 거스리면 당연히 지옥에 던지우는 것 아닙니까? 사도 바울이 지금 교회 안에 있는 각 사람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은사자들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스리면서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두려워합니까?

권세를 거스리면 지옥에 가기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권세를 거스리면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당연히 지옥에 가고 그러면 두려워해야 합니다. 두려워해야 하는데 이 시대는 권세를 모르다보니까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권세를 거스리면서도 자기가 두려워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내가 두려워해야 하는 일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권세를 거스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그것에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권세를 모르다보니까 두려워할 수 없습니다.

너무도 담대합니다.

권세를 거스리면서도 너무도 담대합니다. 악한 일을 하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마치 누구와 같습니까? 욥과 같이 회개를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니까 아니 자기가 권세를 거스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니까 회개를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입니까?

우리는 두려워할 일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죄를 안 짓고 산다면 두려워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성경은 그런 육체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권세를 거스리는 일로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는 그것으로 두려워해야 하는데 권세 자체를 모르다보니까 교회 안에서 객기를 부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옥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지옥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지옥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옥이 있다고 그렇게 강하게 말을 하고 있는 그들이 권세를 거스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옥이 있으면 두려워해야 하는데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그 지옥은 자기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 지옥에 갑니까?

권세를 거스리는 자들이 지옥에 갑니다. 권세를 거스리면서 악한 일을 하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지옥에 갑니다. 그런데도 권세를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말씀이 자기들과는 아무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편14:1절을 보겠습니다. (81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선을 행하라

정말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왜 선을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는 선을 행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선을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은 자기들이 선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선을 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말씀을 하겠습니까?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선을 행하는 자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는 아직 선을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시편이 누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하고 있는 말씀은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저희가 부패했습니다.

진리에서 벗어났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만 부패해서 진리에서 벗어났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예표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했으면 이 시대 기독교인들 역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렇게 부패했어도 자기들은 진리를 따라 행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권세에 굴복을 하는 자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선을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세상 사람과 비교를 해서 선을 행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선을 행하고 있는데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다면 사도 바울은 정말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을 행할지 악을 행할지도 모르는 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입니다 자기들 나름대로 생각하면서 다 선을 행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이 선을 행할 줄도 모르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왜 믿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권세에 굴복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권세에 굴복하지 않을 것을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선을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정하신 권세를 사람들이 거스릴 것을 알기 때문에 선을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남의 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각 사람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이 시대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보고 권세가 무엇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에게 권세들에게 굴복을 하라고 말씀을 하면서 그것이 선을 행하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이 시대 교인들은 선을 행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입니까?

그것은 선이 될 수 없습니다. 아니 악한 일입니다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권세에 굴복을 해서 구원을 받는 그것이 선을 행하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편의 말씀과 같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선을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선을 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내 영혼의 생명이 걸린 문제인데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의 문제라도 이렇게 성경을 보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영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무엇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육체의 생명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는 늘 영원한 생명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권세를 두려워하면서 선을 행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선을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10%만 선을 행해도 하나님께서 성경을 이렇게 기록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자기들의 편리에 따라서 보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선을 행하고 있고 이단이나 아니면 세상 사람들은 선을 행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이 시대 기독교 전체가 권세를 거스리면서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대로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이 예언을 하고 있고 그 예언이 권세라는 말씀입니다 그 권세에 굴복을 하는 것이 선이고 그렇게 선을 행하는 사람을 칭찬한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10:18절을 보겠습니다. (296)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성경이 참 어렵습니다.

늘 성경을 보고 있지만 집중을 해도 당시에는 잘 보이지가 않다가 나중에 보여서 새로 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4절까지 설교를 다 작성하고 보니까 조금 다르게 풀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푼다고 해서 크게 틀리지는 않지만 고쳐야 해서 다시 작성을 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입니다

장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목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성경을 바로 본다는 것이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물론 장절이 있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말씀과 같은 경우에는 장절을 바로 구분을 해야 말씀을 바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절의 말씀입니다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까지 맺음을 했어야 합니다. 뒤에 있는 말씀을 연결을 하다보니까 성경에서 주어를 찾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사실 뒤에 있는 말씀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라는 말씀은 앞에 있는 말씀과 연결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차라리 길더라도 4절에 붙였어야 성경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성경을 편찬을 한다면 3절은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까지 하고 4절의 시작을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부터 했다면 조금 더 쉽게 이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리하면

그러면 이라는 부사와 같은 말입니다 앞 내용이 뒤 내용의 조건이 됨을 나타낼 때 쓰여 앞뒤 문장을 이어 주는 말입니다 주로 명령문이나 청유문 뒤에 쓰인다고 되어 있습니다. 저 역시도 성경을 볼 때 늘 국어를 공부를 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런 부사를 모르면 성경이 풀어지기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하면 이라는 부사가 쓰여 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한 절 안에서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새로 시작하는 절에 써야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3절의 말씀은 절 중간에 그리하면을 써서 성경을 푸는데 있어서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1절에서 3절 마지막까지입니다.

그 말씀에 대해서 그리하면 이라는 부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부터는 사실 주어가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에 있는 각 사람과 또 관원들과는 전혀 다른 주어가 나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붙여서 한 절 안에다 기록을 하다보니까 주어를 모르겠습니다. 아니 주어를 찾을 수 없게 성경에 장절을 붙였습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물론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한글개역성경은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번역을 했습니다. 그가 우리 국어를 잘 알고 번역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어를 바로 알아야 성경이 풀어질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를 알아야 합니까?

그리고 헬라어를 알아야 합니까? 그럼 성경에서 말씀하는 방언의 은사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을 할 때 반드시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을 세워서 그로 하여금 성경을 번역하게 하셨습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배우느라 성경에서 진리를 알 수 있는 시간이 없게 됩니다.

물론 필요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러나 헬라어를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지금 로마서13장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헬라어를 아는 것보다는 국어를 아는 사람이 더 쉽게 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 목사들이 자기 지식을 자랑하느라 헬라어를 배우느라 세월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의 시간은 너무 짧습니다. 제가 다시 20세가 되어서 신학을 공부를 한다 해도 헬라어를 배우는 일에 빠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성경을 한번이라도 더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교인들까지 헬라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의 의가 되어서 성경을 보는 눈이 소경이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칭찬을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리하면 앞에서 말씀한 대로 권세에 굴복을 하면서 선을 행하면 주님께서 칭찬을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칭찬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권세에 굴복을 하면 주님께서 그를 칭찬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칭찬을 받습니까?

구원을 받는 성도가 칭찬을 받습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서 누구에게 칭찬을 받는다 해도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칭찬은 성도에게 있어 무의미하다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이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은사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을 하면 됩니다. 그렇게 굴복을 하는 것은 그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면 주님께서 칭찬을 해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 칭찬을 받아야 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대로 은사자들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은사를 위에 있는 권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권세가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믿음으로 해서 그가 선을 행하면 그가 구원을 받으면 주님께서 칭찬을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선을 행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영생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영생을 얻어야 생명의 부활로 나오고 그런 성도만이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13:4절을 보겠습니다. (257)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은 여러분 각 사람에게 유익을 주려고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나 그대가 나쁜 일을 저지를 때에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는 공연히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나쁜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권세에 굴복하시기 바랍니다.

은사자들을 통해서 복음을 듣는 각 사람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선을 행하면 주님께서 칭찬을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칭찬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칭찬을 해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선을 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선을 이룰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선을 이룬다는 말씀은 생명을 주시겠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선을 이룰 수 없습니다. 특히 자기 선도 못 이루는데 남의 선을 이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오해를 해서 이 시대 목사들은 자기들이 선을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선을 전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복음을 전한다 해도 그것으로 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도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하는 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 이상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되며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악한 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목사들이 착각합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또 거기에 동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라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자기들이 선을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선을 말씀할 때는 거의 대부분이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각 사람에게 선을 이루 수 있습니까?

어느 누구도 각 사람에게 선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하려고 하는 자체가 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에게서 그 권세가 다 창조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전하고 있는 그 복음이 주님으로부터 나왔다는 말씀입니다

듣고 믿으면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선을 이루셨습니다. 선을 이루시고 하나님께서 이 시대 은혜대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은사자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선을 이루신 위에 있는 권세가 나타나고 있고 각 사람은 그 권세에 굴복을 함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12:49절을 보겠습니다. (17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선을 이루는 자니라

성경에서 사자라는 말씀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전적인 뜻은 윗사람의 명령이나 부탁을 받고 심부름을 하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아버지께로부터 들은 것을 너희에게 말한다고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사자입니다

성경에서 사자라는 단어를 몇 가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천사를 말씀할 때도 사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를 말씀할 때도 사자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도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선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사자는 반드시 명령이나 심부름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모든 말씀과 이루신 일들을 다 하나님께서 친히 명령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입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다만 우리 인생이 알아들을 수 있게 아버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과 같은 육체로 오셔서 하나님을 지칭할 때는 아버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주님만 자의로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대로 은사를 받았어도 역시 마찬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자의가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의 이성적 생각이 자의입니다 주님께서도 자의로 하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성경의 문자를 보고 모두가 자의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왜 오셨는가 하면 우리 각 사람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각 사람에게 선을 이루어 주셔서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자로 오셔서 그러니까 선지자로 제사장으로 왕으로 오셔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선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 모든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다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 각 사람이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을 할 수 있게 하시고 그것이 선이 되어서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을 하는 그것이 선을 행하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물론 세상에서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제가 그것을 반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늘 영생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 시대는 영생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말씀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영생을 얻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대해서 알고 믿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으면 됩니다.

은사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으면 됩니다. 그 복음에는 주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이루신 선이 다 있습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듣고 믿으면 선을 행하는 자가 되고 그것을 의롭다 하시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기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가장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는 각 사람에게 선을 이루시는 자로서 다 이루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을 하면 그러니까 복음을 듣고 믿으면 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권세들을 알아야 굴복할 수 있는데 전혀 모르면서도 그저 교회에 나와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종교적인 행위를 보면서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만이 우리 각 사람에게 선을 이루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말로만 오직 예수라고 하고 있지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믿지를 않고 위에 있는 권세를 거스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5:23-24절을 보겠습니다. (341)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구원입니다

우리에게 선을 이루시는 일입니다 그것을 누가 이루시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너무 종교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말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지만 그들이 하는 행위가 그것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종교적인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기들의 구원을 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힘주어서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고 있는 그 행위가 권세를 거스리는 일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그렇게 자기들이 하는 행위가 어떤 의미가 되는 줄을 모르고 평생을 교회 안에서 악한 일만 하다가 사망으로 가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그가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해서 우리 각 사람에게 선을 이루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이미 모든 선은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 권세를 모르니까 성경에서 복음을 모르니까 복음에 굴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생을 얻는 그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에게 확실한 믿음으로 든든히 설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권세로 말미암아 각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그 권세에 굴복을 하지 않고 도리어 거스리면서 하나님의 명령인 영생을 얻는 것을 스스로 마다하고 있습니다.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종교가 되어서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면서도 전혀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를 모르다보니까 악을 행하면서도 도리어 담대하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제가 이 설교를 거의 다시 쓰고 있습니다. 왜 다시 쓰고 있는가 하면 먼저 쓴 것도 사실 크게 잘못 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바르게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다시 쓰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문제 하나가 실족할 수 있기 때문에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성도님들을 위해서 다시 쓰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각 사람의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은사자로서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아주 작은 것 하나를 쉽게 지나치다보면 그것이 마음에 의심이 되고 그것으로 미혹을 받을까 저는 늘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다시 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대로 은사를 받은 자가 성경을 쉽게 보는 순간에 그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조금이라도 변질이 되게 말씀을 전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도 악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에서 이 악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악이 있습니다. 정말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주께서 악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생각도 못하는 일에서 악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악을 행하는 일에 두려움을 가지고 또 악에서 건져달라고 늘 기도를 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악에서 건짐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스스로는 악에서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성경에서 말씀하는 악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한 은사를 받는 우리 역시 늘 악한 일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악에서 주님께서 건져 주셔야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교회 안에서 수많은 악을 행하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늘 악한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이 악을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시편17:13절을 보겠습니다. (813)

여호와여 일어나 저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성경은 구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칼을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 칼을 가지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설령 은사를 받아 위에 있는 권세를 나타내고 있다 해도 구원에 대한 칼을 가질 수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 칼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우리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가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혼을 죽이는 것도 그의 생각이고 영혼을 살리는 것도 그의 생각입니다. 영의 일에 있어서는 우리의 어떤 생각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칼을 가진 자가 은사를 가진 자라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성도님들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칼입니다

육적인 진짜 칼은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도 바울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문제라면 이 칼은 반드시 주님만이 가지실 수 있는 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까닭이 없이 칼을 가지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서 심판을 하시고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행한 대로 칼로 심판을 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복음을 듣고도 악을 행하고 있다면 주님께서 칼로 그를 치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해야 합니다.

누구를 두려워해야 합니까? 영혼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칼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칼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쓰시는 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심판을 하실 때 악을 행한 사람들에게 칼을 쓰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칼이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로 은사를 받아 위에 있는 권세를 전하는 자라고 해도 그것으로 우리가 칼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진노를 하시는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구속을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믿지를 않고 악을 행하고 있다면 주님께서 칼로 그를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는 정말 우리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주를 받아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육체를 십자가에서 드림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 모든 치욕과 수모를 당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믿지를 않습니다.

재능을 다 주셨습니다.

고아도 믿을 수 있습니다. 과부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그네도 믿을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말씀과 같이 이 세상에서 거지 나사로 같은 사람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지만 잃어버린 자로 살아가고 있는 삭게오도 믿을 수 있고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도 믿을 수 있고 사형 집행을 당하는 한편 강도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위에 있는 권세를 거스리면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누가 안 믿고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큰 소리를 치면서 천국은 따 놓았다고 자신만만한 그들이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권세를 거스리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주님입니다

그는 심판의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을 안 드려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왜 칼을 가지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그 칼에 의해서 심판을 받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위에 있는 권세를 거스리면서 행위에 빠져 있는 자기들에게 그 칼이 임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3:12절을 보겠습니다. (380)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선은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위에 있는 권세들을 들어서 믿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권세에 굴복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권세를 거스리는 자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우리의 입에 있고 우리의 마음에 있어서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믿지를 않고 행위에 빠져 권세를 거스리고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도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입니다

그들에게 진노를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정말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악을 행해서 진노를 받는 사람이 적다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말씀을 하겠습니까? 거의 모든 사람이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기 때문에 진노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노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어느 한 사람이 받을 것 같으면 성경에 이렇게까지 굳이 말씀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 중에서 몇 사람이 그렇다면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을 할 때는 악을 행함으로 해서 진노를 받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계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신다고 하면 어느 한 사람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합니까?

우리는 성경에서 분명히 선에 대해서 그리고 악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을 하시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시고 있는가 하면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면서 까지 우리를 위해 선을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